문화시대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화성침공'

감독 팀버튼/출연 잭 니콜슨, 글렌 클로즈

김정룡/ 영화평론가

이 영화는 미로를 닮았다. 입구도, 출구도, 안내판도 없는 좁은 길이 구 불거리며 이어져 있고, 새로운 골목은 언제나 중심에서 멀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설계돼 있다. 길 모퉁이엔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밟고 나 면 아주 기분이 불쾌해지는 신종 지뢰가 곳곳에 묻혀 있다.

`화성침공'에 쏟아지는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말도 안 되는 엉망진 창의 SF실패작’이라는 비난에서 ‘팀 버튼 특유의 영화적인 영화’라는 찬사까지. 확실히 `화성침공'은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예전 영화에서 처럼 권력, 편견, 소외에 대한 우화적 탐구는 여전하지만 감독은 음산한 환상, 캐릭터 내면의 복합적인 징후라는 고유의 모티브 자리에 노골적인 스펙터클과 명백한 선악의 구도를 앉혀 놓았다. 파편화하고 상호간의 적 실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펼쳐지는 이야기 구조는 그의 영화를 잘 아 는 마니아들까지도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족하다. 그러나 `화성침공'은 부 인할 수 없는 팀 버튼 영화다. 그의 주제는 변함없이 그리고 분명하게 스 며있다. 주류 남성성, 이른바 마초에 대한 조롱과 지도자·지배자·기성 세대에 대한 불만, 회의는 전면에 드러나 있다. 소외된 이들에게 바치는 애정까지도.

5분 뒤에 지구가 망할지라도 부동산을 팔아 먹으려고 기를 쓰다 압사당하 는 카지노의 대부, 불퇴전의 용맹을 과시하지만 화성인의 공격이 시작되 자 앞장서 항복하는 리치의 형, 위기의 순간 평화에 관한 한심한 일장 연 설을 늘어놓지만 결과는 무기력한 죽음일 뿐인 대통령, 아무런 분석도 예 측도 하지 못한 채 점잔만 떨어대다 목이 잘리는 과학자, 애완견과 몸이 바뀌는 언론인, 미디어의 환상담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다 떼죽음을 당하 는 히피….

에드워드 가위손은 너무 착하다. 배트맨은 홀홀단신이다. 팽귄맨에겐 제 약이 너무 많다. 위에 나열한 거의 모든 지배적(히피도?) 인간 유형을 거 세하려면 천상 외계인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좀더 극악하고 자유스 럽고 파괴적인 악당이 등장해야 하는 것이다. 화성인은 그래서 지구로 온 다. 평화를 말하면서 총을 꺼내는 그들의 외모는 상징적이다. 고릴라 코, 해골의 이, 뇌 그 자체인 머리, 드라큐라 외투가 말해주듯 공포 영화의 전형적 인물인 악마이면서 그것의 만화적 축소판이다. 교활한 팜므 파탈 이면서 표리부동한 벌레이고 장난끼로 가득 찬 악동이다.

악동을 물리치는 건 팀 버튼 영화가 항상 그렇듯이 사회의 변방에 있는 이들이다. 학교라는 ‘체제’를 저주하는 말썽꾸러기 10대, 유약하다고 비난받던 착한 리치, 누구도 반기지 않는 병든 할머니, 가난한 흑인. 여 기서 흑인은 마초가 아니다. ‘전직’ 권투 선수이고 지금은 관광객들과 기념 사진이나 찍는 게 고작인 초라한 이혼남일 뿐이다.

물론 의문은 남는다. 감독은 왜 구닥다리 팝송에 그런 엄청난 힘을 부여 했을까. 팀 버튼은 이성으로 상징되는 모든 거대 담론을 거부하려 한 것 같다. 영화의 핵심 전략이 ‘어이없음’, ‘엉뚱함’인 까닭은 이것이다. 첨단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1950~60년대의 어설픈 특수효과를 재현 한 것도 같은 이치다(이것이 저 썰렁한 프롤로그와 몇몇 에피소드의 빈곤 한 상상력마저 감추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이건 저항의 다른 표현 인가? 글쎄, 나는 `화성침공'이 상당히 안전한 파괴의 놀이처럼 보인다. 눈과 귀로 씹는 풍선껌, 팀 버튼이 만든 1백4분짜리 테마 파크. 힐난만은 아니다. 어차피 대중영화니까. 다만 소수 집단에 대한 배려와 가족의 복 원이라는 설정이 감독의 세계관과 메이저 스튜디오의 주문이 만난 지점이 라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또 이러한 파괴 공법, 저항의 유희는 상품 메커니즘 바깥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