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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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4월27일 제 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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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사동의 얼굴로 불리는 고서점 통문관의 이동호씨.)
인사동엔 대를 잇는 가게들이 많다. 그것 또한 인사동다운 것임에 틀립없 다. 이들 가게 중 대표적인 곳은 인사동 초입의 고서점 통문관이다.
사람이 발디딜 공간도 없을 만큼 누렇게 바랜 옛 책들이 빽빽하게 들어찼 지만 바로 그 곰팡내 나는 책냄새는 바로 인사동의 향이다. 통문관은 193 4년 첫문을 열었다. 17세 때부터 서점 점원으로 책과 인연을 맺었던 산기 이겸로(89)씨가 주인이다. 그의 우리 책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고서점 주 인의 그것 이상이었다. 그는 해방 이후 일인 학자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책 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통문관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월인석보>, <월 인천강지곡> 원본, 상해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 등 국보급 고서들 이 그의 손을 거쳐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또 퇴계문집 중간 당시 현황을 기록한 1백50년 전 일기가 폐지 형태로 버려진 것을 발견, 스프레이로 물 을 뿌리고 다림질해 복구해 내기도 했다.
국보급 고서들도 통문관 들렀다
그는 이런 점을 인정받아 94년 서울정도 6백년을 맞아 ‘서울을 만들어온 사람들’에 세종대왕, 황영조 등과 함께 뽑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96 년 4월 둘째 아들 동호(59)씨에게 통문관 운영을 맡겼지만 지금도 이틀에 하루꼴로 이곳에 들른다. 현재의 통문관 주인인 이씨는 “문을 열지만 이 제 누가 옛책을 찾나요. 과거엔 지금은 작고한 분들이 많이 찾았는데”라 면서 달관의 미소를 지었지만 인사동의 얼굴인 통문관은 벌써 다음 세기 를 준비하고 있다.
인사동 입구에 통문관이 있다면 중심엔 고가구 전문점 ‘통인가게’가 우 뚝 솟아 있다. 1924년 처음 종로구 통인동에서 문을 열어 ‘통인가게’라 고 이름지은 이곳은 60년대에 지금의 인사동 자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 고 있다. 예전 한옥이었던 ‘통인가게’는 이젠 6층 빌딩으로 변모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가게’다. 1층과 2층은 생활공예품, 3층은 되살림가구( 고가구), 4층은 고미술품 판매장, 5층은 고미술 전시실, 지하 1층은 공예 화랑 등으로 꾸며져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정환씨를 이어 아들 김완 규(46)씨가 경영을 맡고 있다. 그는 사업수완을 발휘, 가업을 잇는 것 외 에도 ‘통인 익스프레스’라는 새로운 사업체를 만들기도 했다.
현존 최고(最古)필방인 구하산방의 역사는 올해로 82년이다. 1915년 일본 인에 의해 서울역 부근에 처음 세워졌던 구하산방은 이후 충무로, 명동 등으로 이사를 다니다 해방 이후 구하산방에서 점원으로 일했던 홍기대(7 5)씨가 인수했고 60년대에 인사동으로 들어왔다. 구하산방은 이후 홍씨의 조카, 사촌동생 등 친척들의 손을 거쳤고 지금은 홍씨의 사촌인 홍수희(4 8)씨가 운영하고 있다.
화랑으로는 ‘동산방’이 2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다. 인사동 중심골목에 서 약간 비껴간 곳에 위치한 동산방은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80년 가 을 민족민중 미술운동을 촉발시킨 ‘현실과 발언’ 동인전을 연 곳이기도 하다. 동산방의 창시자는 박주환(67) 초대 화랑협회 회장이다. 고향인 당 진서 초등학교만 마친 뒤 서울로 올라와 표구상 종업원으로 일했던 박씨 의 꿈은 한국 제일의 표구상이었다. 74년 동산방을 연 그는 오랜 경험 탓 에 초창기부터 한국화 분야에 강세를 보여 지금도 많은 한국화가들이 동 산방에서 전시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정도다. 이제 동산방 화랑은 아들 우홍(45)씨가 맡고 있다. 아들 우홍씨는 또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부회 장으로 인사동을 되살리는 데에도 큰 힘을 쏟고 있다.
현존 최고의 필방… 반세기 전통 수두룩
마지막으로 인사동에서 길을 물을 때 항상 중심이 되는 곳이 있다. 수도 약국이다. 지난 46년 임명용(77)씨에 의해 문을 연 수도약국은 지금은 셋 째 아들 준석(41)씨가 운영하고 있다. 임씨는 지난 83년부터 자신의 일을 도왔던 수도약국을 아들에게 완전히 맡긴 뒤 수도약국 위쪽에 조그마한 ‘수도약방’을 또 세워 운영하고 있다. 인사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 준석씨는 “과거 고급주택가 지역이었던 이곳이 상권지역으로 바뀌어갔지 만 아직도 인사동 인심은 괜찮다”면서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외에도 많은 인사동의 가게들이 지금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아무쪼록 외국에서만 볼 수 있었던 1백년, 2백년의 전통가게들이 이 인사동에서 면 면히 이어져, 쉼없는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곳을 지켜나가는 곳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