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우리맛 기행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면천 두견주

(사진/면천 두견주는 술맛이 달고 뒤끝이 깨끗화다.)

봄이면 진달래가 온 강산을 빨갛게 물들인다. 진달래는 멀리 백두산 산록 에서 제주 한라산 오름에 이르기까지 지천으로 피어난다. 가냘픈 나뭇가 지는 척박한 바위산이나 습한 응달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고, 그 맑고 청 초한 꽃 분위기는 봄의 요정 같다.

진달래는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국 화를 진달래로 했어야 할 걸 그랬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국민화나 민 족화 정도로 하나쯤 더 정한다면 단연 진달래라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이 들도 종종 있다. 이같은 정서는 소월의 시 한구절만 인용해도 쉽게 납득 이 간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이처럼 진달래는 별 설명 없이도 곧 우리의 마음 그 자체인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뿐만 아니라 진달래는 참꽃이라 하여 한참 만발했을 때는 그대 로 따서 먹기도 했다. 약으로 쓰거나, 화채나 화전을 만들고, 술을 빚어 계절을 음미하기도 했다.

이것이 한 지방의 토속주로 뿌리내려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곳이 있다. 바 로 충남 면천의 진달래술인 두견주(杜鵑酒)다. 두견주는 그 유래가 천년 가까운 고려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로 오랜 세월 동안 전해오며 애 주가들의 아낌을 받아온 고유의 명주다.

면천(沔川)읍성은 충남 당진에서 덕산온천으로 이어지는 중간쯤, 해발 20 0~300m급 야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세를 이룬 아미산 자락에 고즈넉이 들어앉아 있다. 이름 그대로 맑은 물이 넘쳐흐르는 고장으로, 가득히 넘 쳐흐를 면(沔)자를 써 면천이라 불린다. 비록 야산이지만 송림이 무성해 생기가 넘치고, 이른 봄이면 양지바른 산허리마다 곱게 피어나는 진달래 가 유별나다. 이곳 사람들은 옛부터 이 진달래를 따다가 꽃술을 빚어 먹 었다.

그 주법도 독특하다. 다른 고장의 여느 과일주나 꽃술처럼 꽃잎을 그냥 술에 띄워 우려내는 것이 아니고, 확실한 주방(酒方)에 따라 정교하게 이 뤄진다. 음력 정월이면 꽃술용 누룩을 준비해 밑술을 빚어놓고, 진달래가 만개할 때 그 밑술에다 꽃잎과 술밥을 다시 비벼넣는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그뒤 삼칠일이 지나면 심지불을 술독에 넣어 완전히 익은 것을 확인한 연후에 비로소 먹는다. 그래서 누룩과 담그는 집안의 환경에 따라 술맛도 조금씩 다른 것이 특색이었고, 보존기간도 6개월을 넘기지 않았다 .

더욱 신비한 것은 이 술의 비법이 한 효심어린 소녀의 정성에서 비롯했다 는 것이다. 전설의 주인공은 고려왕조 개국공신 복지겸(卜智謙)의 열입곱 살 난 딸로, 복지겸이 면천땅을 봉읍(封邑)으로 받아 면천읍성에 내려왔 으나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했다. 이때 그 딸이 아미산 승가암 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드리던 중 신령이 나타나 일러준 대로 술을 담가 아버지에게 봉양해 병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술에 들어가 는 꽃은 아미산 것을 쓰고, 술빚는 물도 면천마을의 안샘물로 빚는다.

이후 두견주는 면천지방의 약용주로 뿌리를 내렸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면천읍성이 서해안 문물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더욱 명성을 날렸다. 두 견주는 면천 조창의 세곡과 조공품에 실려 궁중은 물론 서울 장안에까지 올라가 애주가의 사랑을 받았다.

그 기록이 `산림경제'(山林經濟)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경도잡지'( 京都雜誌) `규합총서'(閨閤叢書) 등에 남아 맛과 제조법까지 자세히 전해 오고 있다. 술 맛은 달아 입에 붙고, 빛깔은 맑고, 혀끝을 톡 쏘는 쌉쌀 한 기운에 기분좋게 취하면서 뒤끝이 깨끗하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 한두잔쯤 장복하면 잠이 잘 오고 웬만한 해소와 사지의 저림증세, 하체 신경의 마비현상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순수한 발효주로 진해작용 탁월

두견주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식량정책으로 곡주제조가 금지되면서 명 맥이 잠시 끊긴 적도 있었지만, 88올림픽을 계기로 재현됐다. 이제는 무 형문화재 86호로 지정됐고, 전국 농협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면천두견주(0457-356-6555) 주인이며 기능보유자인 박승규(64)씨에 따르 면 두견주는 특히 우리와 친근한 참꽃인 진달래꽃으로 담근 술이라는 점 에서 순 한국술이다. 또한 진달래술은 누룩과 찹쌀, 멥쌀 그리고 진달래 로 만드는 순수한 발효주로, ‘아자라인’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진해 효능이 뛰어나다. 여기에 찹쌀에 풍부한 미네랄 등으로 약효와 영양가가 그만이다.

그러나 술 도수가 19~20도로 좀 독한 편이어서 약용으로는 세잔을 넘기지 말라는 금기가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