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티코 아주머니’에 감동한 정진아씨

정진아(29)씨는 ‘`티코 아주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번지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3월 초였을까. 무슨 일 때문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늦잠을 잤다 . 마음도 몸도 몹시 바빴다. 회사생활 6개월도 채 안 된 새내기 사원인지 라 초조함은 더했다.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남산 자락에 있는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10분은 걸어야 한다. 뛰어가고 싶었 지만, 경사가 급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종종걸음으로 10m 정도를 내려갔을 때였다. 연자주색 티코가 끼익 하더니 옆에 서는 거였다. 퉁퉁한 40대 아주머니가 차창 너머로 말했다. “같이 타고 가시죠.”

처음에는 망설였다고 한다. 느닷없는 친절이 괜히 수상했다. 아무리 `나 이든 여자라지만 여기는 서울 아닌가. 하지만 급했다. 주저주저하며 앞자 리에 탄 그에게 티코 아주머니는 “이 근처에서 장판과 도배일을 한다” 며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묻지를 못했다고 한 다. 차를 타고 내려오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데다, 물어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냥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말씨가 너무 푸근했어요. 지각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하루종일 기분이 좋더라구요. 하지만 그게 다였어요. 서울에서 보기 드문 인심 정도로만 생각한 거죠. 그 아주머니와 또다시 인연의 끈이 닿을 줄은 몰랐어요.”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퇴근 뒤 시장에 들러 찬거 리를 사들고 터벅터벅 오르막길을 걷는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30대 초 반의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저번 비오는 날 티코로 태워다 주신 분이시 죠?” “…….” “감기 걸린 아기를 안고 내려가는데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소아과 병원까지 태워 주셨잖아요.” “…….”

정씨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처음 듣는 사연. 그 러나 정씨는 금방 짐작이 갔다. 아주머니는 정씨를 ‘티코 아주머니’로 착각한 거였다. 둘다 몸집이 통통했기 때문일 게다. 정씨는 자신도 ‘티 코 아주머니’에게 신세를 진 사연을 아주머니에게 들려주었다. “빚쟁이 동지감이라고나 할까요. 서로 쑥스러워 하면서도 너무나 반갑더라구요. 지각했던 날보다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용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