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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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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늘과 바다는 미국에 맡기고, 한국은 육군만 키우면 되는가. 미국은 기형화된 국방구조를 강요하고 있다.)
군사력 강화를 둘러싼 한-미간의 마찰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한-미간에 현안으로 등장한 패트리어트 미사일문제는 지극히 작은 한 실 례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간의 이런 마찰은 지난 90년 12월13일 남북합 의서 채택 뒤 한국군 내부에서 해·공군력 강화를 통해 ‘자주국방’을 실현하려는‘신국방정책’이 추진되면서부터 계속돼왔던 것이다.
“군사적 독립 좌시할 수 없다”
당시 국방부는 북한을 주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20세기 말에는 남북이 공 존하고 오히려 세계 3위의 막강한 방위비를 투입하며 군사대국으로 치닫 는 일본과 4백만 대군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 ‘잠재적 적국’ 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주변국에 대 응할 수 있는 전력을 기르는 새로운 국방전략 수립을 추진했다. 지상군 위주의 방어전략에서 전략적 기동성 및 전자전 능력을 갖춘 3군 통합의 공세전력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2천년까지 79조원의 전력증강 사업비 를 투자해 해·공군의 구성비를 높이는 게 그 핵심 내용이었다.
당연히 공군력과 해군력 강화는 이 계획의 골자를 이루는 것이었다. 우선 당시 5 대 5인 육군 대 해·공군의 예산비율을 97년까지 4 대 6으로 강화 하기로 했다. 공군분야에서 ‘전천후 정밀폭격 능력’과 ‘방공무기 제압 기 확보’를 목적으로 F-16 전투기 1백20기를 도입하고, 여기에 걸프전 당시 이라크 방공망을 교란·파괴해 전자전의 신기원을 기록한 대레이더 작전기인 F-4G의 도입까지 계획했다. 해군의 경우 상륙작전 능력을 강화 하고 필요에 따라 해상봉쇄작전까지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P-3C 대잠초계기를 확보하고 독일과 합작생산으로 잠수함 7척을 들여오기 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이런 움직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한국의 해· 공군력 강화 전략은 곧 한국이 자신들의 ‘군사적 예속’상태에서 벗어나 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국의 사양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잃는 것이었다.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신국방정책을 좌절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늘어졌다.
미국의 요구는 간단명료했다. 비교우위론에 따라 한국의 하늘과 바다는 미군이 맡고 한국은 땅만 맡는 이른바 ‘역할 분담론’을 강요한 것이다. 91년 미 합참의장은 제12차 한미군사위원회회의에서 한국군의 전력증강은 북한의 지상군을 괴멸시키기 위한 지상전력 위주로 진행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독일로부터 잠수함을 구입하겠다는 한국의 계획에 대한 불만표시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92년 13차 한미군사위원회 뒤부터는 더욱 노골적인 방법으로 한국 의 해·공군 강화방침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합사령관은 미군의 조기지원이 불가능한 지상군 전력증강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스커드 미사 일 방어를 위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북한의 포병전력에 대응하기 위한 대 포병 레이더 및 야전포병전술 도입, 한국 기갑여단의 증강, 육군 헬기 확 보 등을 국방부에 요구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이런 지상군 전력강화 요구는 한국이 추진하고 있던 신국방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한국쪽의 반응은 아주 미온적이었다 . 미국의 반대에도 93년 6월 독일로부터 1천2백t급 ‘장보고함’을 도입 했고, 94년 5월에는 국내기술로 건조한 ‘이천함’을 취역시키는 등 해상 전력을 강화했다. 또 전투기 도입과 한국형 구축함 사업을 진행시켰다.
‘카지크 수정안’의 노골적 의도
결국 미국은 한국의 이런 움직임을 좌절시키 위해 더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93년 중반부터 미국내 언론 매체들을 통해 ‘한반도 전쟁 발발 시 3주 만에 한-미 연합군 패배’등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유포하기 시작 한 것이다. 또 93년 12월7일에는 게리 럭 주한 미군사령관이 합참의장에 게 서신을 보내 “한국군 화력지원 및 대포병전능력, 중무장 전투헬기 확 보, 야간작전 능력 보완” 등을 권고하는 직접적인 압력행사도 병행했다. 그리고 94년에는 미국의 전쟁정보팀이 서울로 들어와 전쟁위기감을 고취 하는 데 열을 올렸다.
미국은 이런 노력을 통해 결국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미국이 일방 적으로 만들어낸 전쟁위기설 속에서 국방부는 해· 공군을 거의 배제한 채 94년 3월27~31일 사이에 육군위주로 중기국방계획을 변경해 지상군 강 화용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긴급조정 3천억원을 편성한 것이다. 당시 이 조치는 결재서류를 들고 다니기도 벅찬 13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대통령 재가까지 마칠 정도로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실제 이 예산은 91년부터 미 국이 구매를 강요해온 대포병 레이더, 코브라 헬기용 야간사격 통제장비, 155mm포탄 사거리 연장탄 등을 구매하는 데 사용됐다.
한국의 해·공군력 강화를 막으려는 미국의 압력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94년 6월9일 미 하원에서 통과된 ‘카지크 수정안’ 이었다. “북한이 매년 40억달러의 국방비를 지출하는데 비해 한국은 1백 20억달러의 국방비를 지출함에도 한국의 전력증강계획은 핵심적인 지상군 전력의 취약점을 보완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이 수정안은 “ 한국은 방 위비의 상당 부분을 전용해 지상방어 임무 수행에 중요하지 않은 잠수함, 구축함, 신형 항공기 및 기타 장비 획득에 투자해왔다”고 밝혔다. 이 수 정안은 더욱이 미 대통령이 한국군에 “대포병 능력, 탄도미사일 및 대량 파괴 무기에 대한 방어, 한-미 연합군 군수 및 의료지원 전술능력 등 지 상전력 증강을 촉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어 미국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 인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미국이 동북아의 세력균형자로서의 구실을 계속 하는 동안 한국이 대북방위를 넘어선 지역안보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미국의 이런 계속되는 압력으로 해군의 구성비가 90년 19%에서 93년 22% 까지 증가하고, 20%를 밑돌던 공군도 25%로 개선되던 추세는 94년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해군과 공군의 구성비가 각각 2%와 0.4%씩 감소한 것이다.
신국방노선, 아직 포기는 안 해
특히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를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한-미 연합 작전계획 5027’을 통해 한국의 해·공군은 전쟁 발발부터 미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적 공백을 메우는 데 필요한 초기대응 전력 수준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하지만 한국도 매년 해·공군력 중심의 첨단방어 능력 증강에 주력하겠다 는 노선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올 예산에도 1백대 이상의 장거리전투기와 신형구축함, 조기경보기를 구입하려는 계획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한-미 통합전력극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 이 해·공군력 강화를 억제하면서 한국군을 한-미 연합전력의 수직분업구 조 속에 계속 붙잡아 놓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물론 이 의도 속엔 미국의 한물간 지상군 무기를 한국쪽에 팔아넘기려는 의지도 포함돼 있다.
신승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