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미국의 오만한 ‘미사일 세일’

(사진/`패트리어트 구매 압력'을 공언하고 한국에 온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

미국이 한-미 공동방위체제를 빌미로 한물간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우리나 라에 팔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미국의 고질적인 대한 무기구매 압력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무기구 매 압력은 단순한 협조차원이 아니라 강요하는 수준이어서 한-미간에 새 로운 외교적 마찰로 번지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돈 갖고도 상품을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약자의 설움을 곱씹어야 하는 처지다.

“서두르면 협상에서 밀린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우리나라에 강매하려는 미국의 기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94년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미국의 장기적이고 은 밀한 계획이었으며 그동안 미국의 압력은 부단히 계속돼 왔다. 그동안 잠 잠하던 미국의 압력이 다시금 노골화된 것은 최근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 관의 한국방문을 앞뒤로 해서다.

코언 장관은 한국방문 직전 미국에서 한 발언으로 `‘패트리어트 갈등’ 을 예고했다. 그는 지난 4월4일 미국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방 문기간 동안 한국 정부가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을 구매하지 않도록 압 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동일한 기능의 러시 아제 방공용 미사일 구입을 방해함으로써 한국이 반드시 패트리어트 미사 일을 구매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미국민에게 한 것이었다.

9일 방한한 코언 장관은 김동진 국방장관과의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예 상대로 패트리어트 미사일 구매문제를 거론했다. “연합전력 강화와 전투 력 발휘를 위해서는 상호운용성이 중요하다”고 에둘러 패트리어트 구매 를 요구했다. 한국 내의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해 구체적인 무기이름을 거 론하지 않았으나 그 의미는 분명했다.

미국이 최근 들어 다시금 패트리어트 미사일 판매에 혈안이 된 이유는 무 엇일까. 우리 국방부의 중기군사전략목표기획서(VSOP)에 따르면 97년 말 까지는 새로운 방공무기체계의 기종을 확정짓도록 하고 있다. 세계 무기 시장에 나와 있는 미국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나 아니면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인 S-300PMU 혹은 S-300V 가운데 하나를 올해 안에 최종 선택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무기 쓰레기장’인가

현재 우리 정부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구매와 관련해 미국에 확답을 주지 는 않고 있다. 김동진 국방장관도 코언 미 국방장관의 사실상 패트리어트 미사일 구매요청에 대해 “현재 우리나라는 해외조달무기의 80% 이상을 미국에서 들여오고 있다”며 “그러나 무기도입은 상호운영성 외에 기타 조건(성능·가격)도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본격적인 구매 협상을 고려해 원론적인 답변으로 받아넘긴 셈이다.

미국의 패트리어트 구매압력은 지난 94년으로 올라간다. 미국은 한국쪽이 계속 꺼려왔는데도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94년부터 주한 미군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당시 북한의 핵무기개발로 긴장이 고조되던 한반도 상황에서 북한의 로동1호 미사일과 스커드B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 기 위해서는 요격미사일인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었다.

국방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오산 등 주요 주한 미군기지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50여기가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국방전문가들은 미국이 패트리어트의 주한 미군 배치를 강행한 것은 결국 이 구형제품을 한국에 강매하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였다. 과 거 사례를 보더라도 주한 미군 보유 무기의 종착역은 한국군으로의 판매 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97년에 방어무기체계의 기종을 확정짓 는다는 것을 알고 미리 대한 판매의 중간다리로 주한 미군에의 배치라는 간접방식을 택한 것이다. 94년 당시 미국은 국방장관까지 보내 한국에 패 트리어트 구매를 강권했다. 물론 그때도 국방부쪽은 확답을 피하는 방식 으로 그들의 요구를 피했다.

미국의 패트리어트 구매압력은 미 군수산업체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군수산업과 2인3각의 관계인 미 국방성은 가장 강 력한 그리고 효과적인 무기세일즈맨 구실을 해왔다. 걸프전에서 그 효과 가 수준이하로 판명나자 미국은 일찌감치 방공미사일체계에서 레이션사의 패트리어트를 폐기하고 차세대 요격미사일로 로럴사가 개발한 `‘ERINT’ (Extended Range Interceptor)를 선정해놓고 있었다. 그 대신 버려지는 무기의 처리장으로 ‘만만한’ 한국을 찍은 것이다.

또한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주한 미군 배치와 구매압력은 미국이 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에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사일 기지 확보를 위 해 한반도에 패트리어트를 배치하고 한국에 구매를 강요하고 있다는 해석 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구매압력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 좀더 두고보자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집요 하게 요청하면 “같은 조건이면 미국쪽 미사일을 사주겠다”는 말로 피해 가고 있는 것이다. 패트리어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데다 기술이전 가격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이 제시하는 조건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국방부의 ‘반박논리’ 개발

한국은 지난해 11월1일부터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 M)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 구매와 관련한 정부의 공식입장을 전달했다고 한 국방전문가가 말했다. 코언 미 국방장관과 김동진 국방장관과의 이번 회담에서도 정부는 그때의 입장을 되풀이 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21>이 단독입수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구매와 관련한 국방부의 대책보고서에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한- 미간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러시아 무기구입문제)’이라는 제목의 이 대 책보고서는 미국이 패트리어트 미사일 구매를 요청할 것에 대비한 우리 정부의 대응책과 반박논리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주한 미군 주둔의 필요성과 한-미 연합방위체제, 양 국간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러시아 무기체계 도입 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논리로 우리 정부를 설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한-미 안보협력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을 고려해 미국 무기체계를 우선적으로 구매해왔다는 점 △지 난 90년부터 96년까지 해외무기구매액의 약 84%가 미국 무기체계라는 사 실 △96년도 무역적자가 2백6억달러에 이르고 그중 56% 이상인 1백16억달 러가 미국과의 무역적자라는 점을 들어 미국쪽의 이해를 촉구한다는 논리 를 제시했다. 또 이 보고서에서 국방부가 대응논리의 하나로 “한국 내 국회 및 언론에서는 무기구매선 다변화 등 여러 가지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임을 내세웠다. 미국이 의회의 압력을 내세워 우리나라에 미 국제 무기 구매를 강요하는 데 대해 국방부도 국내여론을 내세워 맞대응 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구체적인 구매조건과 관련해서는 “한국군이 필요로 하는 무 기는 첨단고가장비 위주이므로 국방부는 예산획득 및 효율적 사용방안을 강구중이며, 그 방법으로 성능과 가격, 기술이전, 후속 군수지원 등에 유 리한 조건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그럼 에도 한-미 안보협력여건을 고려해 한국 정부는 앞으로도 성능과 가격, 기술이전 등에서 제3국 장비와 현저한 차이가 없는 한 미국 무기체계를 우선 고려할 것”이라며 “이러한 한국 정부의 대미 협력 의지에 비춰 미 국쪽도 이에 상응하는 협조지원이 있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무기구매 ‘주권회복’을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러시아제보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고 기술이전 등 에서 불리한 점 등도 우리 정부가 선뜻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선택하지 못 하는 한 이유이다. 물론 무기체계 결정에는 가격뿐 아니라 기존의 다른 무기체계와의 조화 및 호환성 등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된 방공미사일의 경우 모두 자족적인 기능을 갖기 때문에 특별히 호 환성 등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방부가 패트 리어트와 러시아제 미사일을 놓게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의 대 부분 한-미간의 역학관계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한편 우리 정치권에서도 새로운 방공무기체계의 기종확정계획을 당분간 미룰 것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다. 야권의 경우 현 정부가 정권말에 무 리해가면서까지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기종의 무기를 확정짓는 것은 아 무런 실익도 없고 오해만 살 우려가 있다는 태도이다. 다음 정권에 맡겨 야 무기구매 협상과정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 다.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은 “패트리어트 미사일 구매문제는 당연히 다 음 정권에 맡겨서 처리하도록 해야할 것”이라며 “서두르다보면 미국과 의 협상에서 밀리고 온갖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 문제는 이제 무기구매 과정에서의 `‘주권회복’ 문제 로 비화되고 있다. 그 책임은 물론 물건을 팔면서도 구매자의 선택권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미국쪽의 태도에 있다할 것이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