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야당 “적의 불행은 나의 불행”

(사진/검찰에 소환되는 국민회의 김상현 지도위 의장(왼쪽)과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오른쪽). 한보사건에 관련된 야당 정치인들이 대부분 중진이라는 점에서 야권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적의 불행은 당연히 아군의 행복이다. 여권의 파열상을 바라보는 야당 의 시선은 그러나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우려도 적지않은 것이다. 그 불 똥이 언제 야당에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권 내에서 벌어지는 집권 민주계와 이회창 대표쪽 사이의 첨예 한 대립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로 따지기에는 너무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도 침묵만…

야권의 우려는 무엇보다도 여권 분란이 한보와 관련된 여야 정치인들을 검찰이 소환하는 과정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검찰 소환대상에는 야당의 중진정치인들도 대거 포함됐고 수뇌부와 관련된 소 문도 계속 나오고 있다.

신한국당 안의 민주계와 이회창 대표간의 싸움이 구정치인과 새로운 정치 세력간의 갈등으로 비쳐지는 것도 야당으로서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한보사건에 관련된 야당 정치인들의 대부분이 중진이라는 점에서 야권 역 시 언제 돌발사태가 발생할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이 에 따라 국민회의나 자민련은 말할 필요도 없고, 3김 정치의 청산을 주장 하는 민주당 역시 신한국당 내분에 의외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국민회의 비주류의 대표격인 김상현 지도위의장과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 민주당 이중재 고문 등이 모두 한보와 관련해 소환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김대중 총재를 수행해 미국을 방문했던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방미중 국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상황에 대해 김 총재도 우려하는 빛이 역력했다” 고 전했다. 김 총재의 다른 측근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여 권 내의 갈등은 야당에도 유리할 것이 없다”며 “여권 갈등의 출발이 기 본적으로 정치자금수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야당에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자금수사를 둘러싼 여권의 분란은 당연히 `‘구정치인과 새로운 정치 세력’간의 갈등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야권의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여권 내의 분란이 전면적인 정치판 물갈이 논의로 비화될 경우 가 장 큰 타격을 받는 쪽은 오히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 두 야당 총재이기 때문이다. 물갈이란 바로 두 야당 총재와 김영 삼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3김정치의 청산을 의미한다.

김대중 총재에게는 평소 까다로운 존재인 김상현 지도위 의장이 한보에 연루된 것도 주류쪽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야당의 수뇌부가 12월 대선을 앞두고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제3후보론'이다. 김 의장은 좋 든 싫든 주류쪽의 입장에서 제3후보론의 등장을 억제하는 구실을 해왔다.

정계개편 촉발되면 어쩌나

설사 신한국당 내분이 민주계의 이탈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야당에 반드시 유리한 정치적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민주계의 이탈은 정 계개편을 촉발할 것이다. 이미 두김이 확고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국 민회의와 자민련으로서는 불확실한 정계개편이 반가울 리 없다. 개편 회 오리 속에서 두 김씨의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부메랑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야당 일각에는 여권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인 한보리스트 수사가 결 국 한보사건의 진상은폐와 김현철씨를 살리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YS(김영삼 대통령)가 아들(김현철)을 살리려 고 정치권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수서사건 때도 결국 몸체인 청와대 를 보호하기 위해 검찰은 정치권에 흘러간 푼돈만을 까뒤집었다. 그 결과 여권 수뇌부는 비리의혹을 피하는 한편 정치권 물갈이론이 급격히 대두하 는 따위의 부수적인 효과까지 거뒀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