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검찰 내부도 난리

“검사동일체 원칙이 실종됐다.” 한보 재수사와 김현철씨 비리의혹수사 를 두고 일선 검사들이 하는 말이다. 검찰 수뇌부와 일선 검사들의 생각 이 통일되지 않고, 구체적인 수사방침을 놓고도 적잖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정치권에 일대 파란을 몰고오긴 했지만 정작 수사 마무리 방향을 놓고 검찰 역시 작은 난리를 겪고있는 셈이다.

진행중인 검찰 수사는 크게 다섯갈래다. △은행장 △한이헌·이석채·박 재윤씨 △정치인 △김현철씨, 그리고 마지막 종착역인 대선자금이다. 이 중 검찰 수뇌부와 일선 검사들의 의견이 합치하는 대목은 단 하나. “아 직은 대선자금을 수사할 때가 아니다”는 것이다.

일선 검사들은 2~3명의 은행장을 업무상배임 혐의로 처벌하고, 한이헌· 이석채·박재윤씨 중 한두명에게 업무상배임의 공범혐의를 적용해 형사처 벌한다는 입장을 일찌감치 정리했다.

하지만 4월초에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검찰 수뇌부는 마냥 형사처벌 결정 을 미루고 있다. 경제관료들과 금융계에서 “그런 식으로 처벌하려면 모 두 다 잡아가야 할 것”이라는 거센 반발에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 대의 뜻도 형사처벌 불가쪽으로 모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뇌부와 일선 검사들 사이의 견해차이는 정치인 수사 과정에서 좀 더 커졌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인 공개 소환조사 방침을 처음 밝혔던 4 월9일 오후 검찰총장실 분위기가 심각했다”고 전했다. 심재륜 중수부장 이 정치인 전원을 공개 소환조사하자고 주장했으나, 김기수 검찰총장이 난색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이틀 뒤인 11일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형사처벌 대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사 분 위기를 냉각시키는 발언을 했다.

일선 검사들의 수장격인 심재륜 대검 중수부장은 사석에서 “고군분투하 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또 “경제논리, 정치논리 때문에 수사가 진통 을 겪고 있다”고 언론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심 중수부장의 그러한 어법은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만의 뜻을 우회적 으로 전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현철씨 수사가 지지부진한 데도 검찰 수뇌부의 `‘원모심려’(遠謀深慮 )가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시 간이 문제일 뿐 현철씨를 잡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수 뇌부는 “현철이를 처벌하느니 차라리 대통령이 하야시켜라”는 김영삼 대통령 주변의 강경 분위기를 충실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 고위관계자가 사석에서 “현철이를 구속하면 정권이 붕괴되지 않겠느냐”라며 처벌 불가론을 거듭 유도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 다.

심재륜 중수부장팀이 음모설을 앞세운 정치권력이라는 바깥의 적뿐 아니 라, 검찰 수뇌부의 `‘뒷다리 잡기’까지 이겨내고 김현철씨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현대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