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벚꽃따라 맛따라

4월은 봄기운이 절정을 이루는 달이다. 4월의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제 주도와 남해안으로부터 벚꽃이 일시에 피어난다. 4월 중순이면 벚꽃은 전 국을 꽃구름으로 뒤덮는다. 그러다 5월로 접어들면 산록마다 산벚꽃이 피 어나, 초록빛 산허리에 점점이 떠가는 하얀 솜사탕을 수놓는다.

벚꽃은 한반도 봄을 맞이하는 우리꽃

벚꽃은 이처럼 우리 강토에 깊이 뿌리내리고, 우리의 봄을 어느 꽃보다 절절하게 알려주는 토종꽃이다. 그런데 어쩌다 일본인 학자에 의해 학계 에 보고됐고, 그들의 국민꽃으로 추앙된 게 화근이 되어 정작 제땅에서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해 4월 <꽃길따라…>에 도갑사 꽃길을 오르는 여인들의 사진을 실었 더니 이것을 본 독자가 편지를 통해 ‘불쾌한 벚꽃길’ ‘왜 우리가 일본 의 국화를 놓고 축제를 해야 하는가’라고 유감을 전해왔다. 일본인들의 만행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에 바로 답을 보내고 싶 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제 늦게나마 분명하게 벚꽃은 우리꽃임을 알려 주고 싶다.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것으로 우리 것이 아닌 게 없다. 그들은 우리가 전 해주었거나 아니면 노략질한 것을 자기들의 문화로 삼았기에 이같은 오해 는 종종 일 수 있다. 이런 오해로 수백년된 벚꽃나무들을 모두 베어내 불 살라버린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이 제일의 국보로 여기는 문화 재가 모두 사찰과 불상들인데, 그 원류인 백제의 불상들을 모조리 부숴버 릴 수는 없는 일이다. 강진만의 도요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도공들을 붙 잡아다가,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다도문화를 이루었다고 해서 도자기를 다 깨부술 수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베푼 자의 입장에서 여유와 긍지를 가 져야 한다. 그것들이 모두 우리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그들의 오만을 누그러뜨릴 만한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사견이기는 하지만 벚꽃만 해도 당시 승려들의 왕래가 그런 대로 가능했 던 때여서 일본에 전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 스님이 일본에 가면서 절 마당에 나 있는 왕벚꽃 유목 한 그루를 들고 가 수발하던 집 마당에 심어준 것이 자라 꽃을 피웠고, 이 꽃을 처음 본 일본인 학자 마쓰무라가 학계에 보고했던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이것이 학계 보고로는 처음이 어서, 그 학명이 ‘푸루누스 에도엔시스 마쓰무라’로 기록된 것이다. 그 때가 1901년이고 에도는 지금의 도쿄다. 그러나 도쿄의 한 정원에서 왕벚 꽃이 발견된 이후, 일본에서는 아직껏 왕벚꽃의 자생지를 찾아내지 못하 고 있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랜 옛날부터 왕벚꽃나무가 약재와 활을 만 드는 궁재(弓材)로 이용됐다. 1908년에는 프랑스의 신부인 에밀 타케가 제주도 한라산 남쪽 기슭에서 왕벚꽃을 채집해 독일 식물학자인 괴네 교 수에게 보낸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 1923년에는 비슷한 장소에서 일본인 학자 이시도야가 2백50년된 왕벚꽃나무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사실도 전해오고 있다.

효종 북벌을 위해 벚꽃 심기도

실록에도 효종(1619~59)이 북벌을 계획하여 우이동과 정릉 일대에 벚꽃나 무를 대대적으로 심게 했다는 기록과 함께 왕벚꽃의 자생지로 알려진 곳 만 해도 10여군데에 이른다.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미국인들이 벚꽃을 ‘일본 벚꽃’(Japanese Cherry)으로 부르는 것에 항 의하여, 미 의회에 진정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다만 학자들이 이같은 근거를 찾아내도 학계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독 도가 엄연한 우리 땅이듯, 벚꽃도 우리꽃임에 틀림없다.

전국에 걸쳐 있는 벚꽃 명소에서는 이 봄에도 어김없이 화사한 꽃잎이 막 피어나고 있다. 하루쯤 시간을 내 꽃잎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 둘러앉아 얼굴에 얹히는 꽃잎에 취해보자. 그러면서 이 꽃이 왜 우리꽃인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벚꽃의 명소들은 대부분 벚꽃의 자생지에 해당한다. 제주는 물론 하동 쌍 계사 계곡과 화엄사, 합천 해인사 계곡, 대흥사(대둔사)의 장춘계곡, 남 해 해안도로, 경주 불국사공원, 강릉 경포대 일대, 김제 금산사와 전주~ 군산 국도 등이 벚꽃으로 이름을 얻은 곳이다. 서울의 어린이 대공원과 워커힐 호텔쪽도 가볼 만하다.

1. 제주벚꽃과 성게국

(사진/제주의 왕벚꽃. 3월말부터 피기 시작해 4월 초면 절정을 이룬다. 봄철 제주의 명물인 성게국. 고소한 맛이 일품인 영양식이다.)

제주공항에 내려 KAL호텔로 들어가는 1km 구간의 전농로 벚꽃길은 3월 말 부터 4월 첫주에 절정을 이룬다. 30~40년생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제주도 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벚꽃길로 알려져 축제가 펼쳐진다.

이때쯤 제주항에는 옥돔과 함께 계절의 별미인 성게가 등장해 그 유명한 제주 성게국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성게국은 성게의 알을 넣고 끓이는 미 역국으로, 맛이 고소할 뿐더러 영양식으로도 그만이다.

성게국으로 가장 오랜 집은 신제주의 KBS건물 뒤쪽 장춘식당(064-42-8556 )을 꼽는다. 신제주에서 8km쯤 떨어진 서원농원(064-99-7101)에서는 숙박 을 겸해 가정식으로 소담하게 끓여낸 성게국을 맛볼 수 있다.

2. 남해 벚꽃길과 회

남해는 경남 남해안에 떠 있는 섬으로 거제 다음가는 큰 섬이다. 충무공 의 전적지로 더 알려진 섬이지만, 섬 안의 금산과 보리암은 조선왕조 태 조의 개국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들러볼 만한 유적이 많고, 해 산물과 농산물이 고루 나는 풍요로운 섬이다.

섬으로 들어가는 노량대교를 중심으로 터널을 이룬 벚꽃은 4월 첫주에서 둘째 주에 절정을 이룬다. 특히 교량 아래 충렬사에서 해안으로 돌아가는 해안 일주도로의 벚꽃은 장관이다. 또 노량포구를 중심으로 단지를 이루 고 있는 횟집촌에서는 참돔을 비롯한 각종 횟감이 성시를 이루어 부산을 비롯한 경남 남해안과 대구를 비롯한 영호남 일대에서 손꼽히는 봄철 나 들이길에 든다. 서울에서는 7~8시간 잡아야 하는 다소 먼 거리다.

3. 쌍계사 벚꽃과 참게탕

(사진/화사하게 피어나 봄을 만끽하는 쌍계사 계곡의 벚꽃. 민물 참게탕. 재첩국과 함께 봄철 입맛을 돋우는 섬진강 별미다.)

벚꽃은 예부터 절 근처에 많이 심었던 것 같다. 그중 잘 알려진 곳의 하 나가 쌍계사 계곡이다. 하동포구에서부터 이어져 오르는 이곳 벚꽃길은 화계장터에서 절까지 5km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대부분 1백년 가까운 고 목들이어서 벚꽃이 더욱 운치있다. 해마다 4월5일을 기해 축제가 열리고, 전국에서 사진작가를 비롯해 많은 인파가 몰려 꽃나들이를 즐긴다.

이맘때면 남해고속도로에서 화계장터에 이르는 섬진강변의 매운탕집들은 하나같이 재첩국 개시를 알리는 현수막을 내건다. 섬진강 참게를 전문으 로 하는 음식점들도 문전성시를 이루어 맛과 벚꽃의 향연이 절정을 이룬 다.

4. 강릉 경포대의 벚꽃

강릉 경포대의 벚꽃은 동해안에서는 첫손 꼽힐 만한 경관을 이룬다. 벚꽃 과 함께 어우러지는 경포호의 물빛과 해수욕장, 그리고 오죽헌과 선교장 같은 문화유적이 봄나들이 장소로 이만한 데가 드물 만큼 완벽하다.

사계절 인파가 몰리는 경포대 해수욕장의 흰 모래사장과 시원하게 밀려오 는 파도가 좋고, 구름처럼 피어난 벚꽃 사이로 내려다보는 경포호의 파란 물빛 또한 상쾌하다. 죽림 사이로 은은한 매화향이 스며나는 오죽헌 뜰에 도 봄의 색다른 운치가 넘쳐난다. 해수욕장을 따라 이어지는 횟집촌의 싱 싱한 횟감들도 어느 철에 비해 유독 싱싱해 보인다.

대중교통편인 기차와 버스가 알맞게 이어져 주말에 하루쯤 묵어올 마음으 로 떠나면 서울에서도 크게 무리가 없다.

5. 불국사 벚꽃공원과 쌈밥

(사진/불국사 벚꽃공원. 구름같이 피어난 벚꽃이 한줄기 바람에 눈처럼 날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대능원 앞 삼포쌈밥집의 쌈밥.)

벚꽃은 보기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다르다. 일시에 활짝 피어나 꽃구름처 럼 화사한 모습에 감탄하는 이가 있고, 눈발이 날리듯 일시에 하얗게 떨 어져 내리는 모습에 감동하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절 입구에 심어진 벚 꽃을 보며 스님들은 후자에 더 마음이 쏠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경주 불국사의 벚꽃공원은 이런 모습을 만끽하라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애 초부터 빼곡하게 심어놓은 나무들이 말 그대로 꽃구름을 이루고, 4월 중 순을 넘어서면서갑작스런 한줄기 바람에 하얗게 쏟아져내리는 꽃잎이 마 치 눈보라를 연상케 할 만큼 어지럽다.

경주는 이곳말고도 시내에서 분황사를 거쳐 보문단지에 이르는 길과, 보 문단지 안의 가로수가 모두 30년 넘는 벚꽃 가로수로 꾸며져 있다. 경주 박물관 앞에서 경주역에 이르는 길도 벚꽃이 터널을 이룰 정도로 무성해, 4월의 경주는 말 그대로 벚꽃으로 가득하다.

이미 전국에 알려진 터여서 주말에 갈 계획이라면 1주일 전쯤 차표와 방 을 예약해두어야 한다. 경주 나들이길의 색다른 맛을 즐기려면 시내 노동 동 원풍식당(0561-771-4433)과 삼포쌈밥(0561-749-5776)에서 쌈밥을 청한 다. 햇미역과 함께 맛깔스런 온갖 쌈감이 오른다. 어린이들을 동반했을 때는, 40여년된 황남빵집(0561-773-8800)도 들러볼 만하다.

6. 금산사 벚꽃과 산채정식

(사진/금산사 벚꽃. 절 마당을 온통 하얀 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일범식당의 산채정식. 상 가득한 봄나물에서 봄 냄새가 넘친다.)

벚꽃의 화사함은 해묵은 기왓골에 맞물리면 그 맛이 더욱 깊다. 전북 김 제의 금산사 벚꽃은 그런 면에서 첫손 꼽을 만하다. 이곳 벚꽃나무들은 모두 고목이어서 더욱 운치가 있다. 그러나 왠지 그 많던 벚꽃나무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이제는 몇 안 남았다. 그래도 절 마당 한가운데 하얗게 핀 벚꽃은 그런 대로 색다른 맛이 난다.

금산사는 서울에서도 하룻길로 다녀올 수 있어 주말 나들이길로도 적합하 다.

절 앞 주차장에서 절까지 걸어오르는 숲길이 맑고 청량할 뿐더러, 상가의 토속음식점들도 봄나물 향기로 가득해, 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