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천국의 문 신도 집단 자살… 영생 찾아 지구를 떠나다

(사진/미 샌디에이고 경찰과 의료진이 "헤일-봅 혜성이 가져다줄 영생을 믿고 집단자살한" 젊은 컴퓨터 전문가들의 주검을 트럭에 옮기고 있다.)

지난 3월26일(현지시각) 미국 샌디에이고 근처 랜초 산타페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집단자살사건이 일어나 미국 사회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이날 오후 샌디에이고 지방경찰은 익명의 전화제보를 받고 랜초 산타페의 한 호화주택을 찾았다. 집으로 들어간 경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모두 39 구의 주검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검은색 바지에 테니스화 차림으로 반듯 하게 누워 있었고, 마치 여행을 떠나려는 듯 여행가방과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은 모두 보랏빛 삼각천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사망자 대부분 컴퓨터 전문가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어린 나 이’로 여자가 21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경찰은 또 이들이 모두 ‘하이어 소스’(Higher Source)라는 인터넷 웹제작 회사에 속한 컴퓨터 전문가들 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진정제와 사과주스를 섞어 마셨으며, 적어 도 세 그룹으로 나눠 3일간 차례로 자살을 결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1차 15명, 2차 15명, 3차 9명으로 나뉜 각 그룹은 앞 그룹의 주검에 보랏빛 천을 덮어주는 등 뒤처리를 해줬다는 것이다.

이번 집단자살 사건은 지난 3월22일의 캐나다 퀘벡에서 ‘태양사원’ 신 봉자들의 집단자살이 일어난 직후 벌어져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미국 사회를 정작 놀라게 한 것은 ‘집단자살’ 그 자체가 아니라 ‘사이 버세대’인 이들의 자살동기였다.

“우리들은 인류보다 뛰어난 존재들을 따라 곧 지구를 떠날 것입니다. 당 신들은 우리를 가족적 가치를 위협하는 위험한 종파라고 여기겠지만, 우 린 아무 것도 숨길 게 없습니다.”

이들의 지도자로 알려진 애플화이트(66)는 ‘거사’를 수행하기 직전 자 신들의 심정 등을 담은 비디오테이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번 ‘선택 ’이 ‘지구를 떠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이어 소스의 이전 회 원에게 우송된 이 비디오테이프에 비친 이들은 죽음을 앞둔 이들답지 않 게 하나같이 밝고 기쁜 표정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죽음이 아니 라 또다른 생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 여신도는 비디 오에서 “우리는 강요에 의해 이 길을 택한 게 아니다”면서 “나는 이런 선택을 하게 돼 정말 행복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들이 만든 웹사이트 ‘천국의 문’( http://www.heavensgate.com)에는 이들의 이런 ‘기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잘 드러나 있다. 이 사이트 에는 이들이 지난 4월1일 지구에 최근접했던 헤일-봅 혜성을 ‘영생’의 열쇠로 믿은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이 사이트에서 “헤일-봅 혜성의 접근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오던 ‘표식’이다. 천국의 문 신도 들에게 구원은 헤일-봅 혜성 뒤에 숨어 있는 우주선을 통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이제 지구에서의 학습기간은 끝나가고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진화단계도 졸업할 때가 됐다. 이런 사실은 인류보다 상층의 진화단계에 있는 우리 원로가 가르쳐줬다”고 적고 있다. 즉 이들은 스스로 인류보다 높은 생물의 후예라고 믿고, 그 ‘진화’가 이번 헤일-봅 혜성을 계기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헤일-봅 혜성을 뒤따르는 우주 선’은 텍사스의 한 천문학자에 의해 주장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혜성 주변의 한 별을 잘못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었다.

사이버세대를 ‘영생’으로 이끈 비밀은?

미국 언론이 특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들 ‘컴퓨터 세대’ 엘리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천국의 문’의 교리다. 기독교에다 유에프오, 인간보다 높은 단계의 세계 등을 섞어 놓은 이 교리가 특히 과학의 최첨 단에 서 있던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데 미국 언론은 놀라움을 보 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종교문제 전문가인 웨스트몬트대학 로널드 엔로스 교수는 이 번 사건이 “현대적·과학적 성격의 새로운 사교집단의 출현”이라고 진 단하고 있다.

물론 과학과 종말론의 만남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1910년 헬리혜 성이 지구에 접근했을 때도 헬리혜성이 지구를 통과할 때 남긴 유독가스 가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해 자살자가 잇따 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과학이 ‘두려움’이 아니고 ‘영생에 대한 믿음’을 통해 신봉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우려를 높이고 있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