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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4월10일 제 152호 한겨레21

김수한 국회의장 내각제 개헌 언급 등으로 구설수

(사진/김수한 국회의장(왼쪽)이 청와대를 찾아 내각제 개헌론을 건의하는 등 입법부 수장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요즘 김수한 국회의장이 이상하다. 국회의장이 정작 있어야 할 곳보다는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모습을 자주 나타내 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각제 개헌 등 권력구조 변경문제를 반공개리에 언급 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의장이라고 입에 반창고 붙일 수 없다”

먼저 김 의장은 지난 3월24일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을 만나 “정가의 흐 름”이라며 내각제 개헌론을 ‘건의’(본인은 건의가 아니라 전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 리나라도 이제 3백, 5백t급의 배가 아니라 몇십만t의 큰 유조선이 된 만 큼 권력이 한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은 부담스러워진 측면이 있다”며 “권 력구조 개편논의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전달할 필요를 느꼈을 뿐이다”라 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회의장이라고 입에 늘 반창고를 붙이고 다닐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시중의 여론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는 항변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최소한 두가지 이상의 문제점이 내포돼 있다는 지적이다 .

첫째는 형식의 문제다. 국회의장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 를 대표하는 입법부 수장이다. 그만큼 그의 움직임에는 합당한 의전이 필 요한데도 김 의장이 이를 지키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서울 출신 4선의원은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만날 때는 공개적이고 대 등한 대좌를 가져야지 ‘몰래’ 청와대에 불려들어가는 따위의 비밀 회동 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 청와대 회동은 내각제 개헌 문제가 보도되기 전에는 만남 자 체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이번 외에도 그동안 한 달에 한두번씩은 김 의장이 청와대로 김 대통령을 찾아가서 만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번째는 개헌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을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그러한 여론이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 하고 있다면 대통령에게 ‘밀실 `보고’를 할 게 아니라 먼저 국회에서 공개리에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신한국당 한 재선의원은 이와 관련해 “헌법상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무엇 을 토론하고 협의하는 협력 관계가 아니라 상호 견제하는 관계에 있다” 며 “내각제 문제를 의장이 대통령에게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15대 국회 초반기 의장으로 선출되고 난 직후인 지난해 9월에는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언론인터 뷰를 통해 “5년 단임제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으며 5년 안에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며 “최소한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것이 바 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중임제 소신이 불과 6개월 만에 내각제로 바뀌게 된 데 대한 김 의장의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각종 민주계 모임에 김 의장이 꼬박꼬박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민주계 출신인 김 의장은 민주계 좌장인 최형우 고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난 뒤 민주계 중진의원 모임을 사실상 주도 했다. 김 의장은 김명윤 고문과 신상우 김덕룡 서석재 서청원 의원 등과 함께 국회의장실에서 두차례 만나 민주계의 재건과 단합을 깊이있게 논의 했다.


의장실이 민주계 사랑방이냐

민주계 중진들의 의장실 회동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민정계 한 의원은 “신성한 국회의장실이 언제부터 특정 계파의 사랑방으로 바뀌었느냐”고 비아냥댔으며, 민주계 한 초선의원도 “국회의장이 의장실에서 계파 모임을 주선하는 것은 모양 이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김 의장은 일단 앞으로 의장실에서는 그런 모임을 갖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구본태 비서실장은 “의장실 바깥에서 이 뤄지는 계파 모임 등은 정치인으로서 개인적인 활동에 속하는 것 아니냐 ”고 반문했다. 국회의장이기에 앞서 민주계 소속 정치인이라고 시사한 것이다.

과거 야당대변인 시절 달변과 성실성 때문에 명대변인 반열에 올랐던 김 의장은 자신의 마지막 정치적 포부는 국회의 위상을 높인 명국회의장으로 의정사에 기록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의장은 지금이라도 자신 의 언행을 곰곰이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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