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브라질의 왜곡된 기초교육 체계

(사진/브라질의 높은 문맹률은 국가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다. 저소득층 자녀들은 진학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려 범죄에 무방비 상태다.)

브라질 상파울루시에서 파출부로 일하고 있는 마리아 실바(여·44)는 요 즘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끼니 문제가 아니다. 여섯아이 중 유독 공부에 재능을 보이고 있는 둘째딸 실비아가 이번에도 또 고등학교에 들 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비아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유달리 병약해 가계를 돕지 못하지만, 낙제 한번 없이 중학교를 졸업했다. 마리아와 남 편 호드리고(46)는 실비아가 원한다면 계속 공부하도록 놔두기로 결정했 었다.

그러나 불행은 지난해 실비아가 공립고등학교 추첨에서 떨어지면서 찾아 왔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 공립고등학교 진학자들 은 추첨으로 당락을 결정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실비아는 슬픔 으로 지난 1년을 보냈다. 마리아는 그런 딸에게 이번에는 꼭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그 전해보다 경쟁이 더욱 심해진 탓인지 결과는 또 ‘탈락’이었다. 그렇다고 하루 끼니가 걱정되는 처지 에 고액의 사립학교에 보낼 수는 없다. 다시 1년을 절망 속에 보낼 마리 아를 생각해 주인 아줌마를 비롯해 주위에 아는 사람에게 하소연하며 도 와달라고 사정도 해봤다. 하지만 역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중상층 위주의 교육에 빈곤 악순환

브라질에서 해마다 고교 입시철이 되면 실비아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 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브라질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 수준은 매우 낮다. 가톨릭 국가라는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무지의 탓으로 대부분의 저소득층들은 자녀가 많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8~9세 정 도가 되면 돈벌이를 해 어느 정도 가계를 돕는다. 아니 적어도 제 입에는 풀칠을 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그다지 큰 걱정을 안 한다. 필연적으로 저 소득층 자녀의 진학률은 낮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자식들을 교육시켰던 한국의 부모들과는 대조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낮은 교육수준의 첫째 원인은 정부의 왜곡된 정책에 있다는 게 중 론이다. 전통적으로 브라질 교육정책은 중상 계층에 치중돼 있어 대다수 의 저소득층은 소외돼왔다. 따라서 사회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고 빈곤 의 악순환은 거듭 되풀이되고 있다. 또 노동자들의 낮은 교육수준으로 브 라질 국제경쟁력의 장래는 어둡다는 지적도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초 브라질의 명문대인 상파울루 주립대학교(USP)는 ‘남미국 가들의 국제경쟁력’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브라 질의 저명한 알바로 지니 교수(경제학)는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경제 적으로 성공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높은 교육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 는 이어 “물론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조 현 정부는 물가지수를 연 10% 대로 붙잡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브라질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니 교수의 지적은 현재 15세 이상 브라질 인구 중 약 5분의 1에 해당하 는 2천만명이 문맹인 현실을 고려한다면 그 의미가 좀더 명확해진다. 또 같은 나이의 브라질 사람들 중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고 려하면 ‘저교육자’들은 약 6천만명으로 증가한다. 브라질의 학교교육은 1급과정(초등 4년, 중등 4년), 2급과정(고등 3년)과 대학과정(4년)으로 분류돼 있다.

브라질의 이런 ‘저교육 현상’은 낮은 졸업률 탓도 큰데 1급학교 과정 입학생 중 55%가 졸업을 못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연구에 의하면, 현 추세대로 나갈 경우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만 7세 어린이 1백명 중 2008년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수는 5명에 불과하게 된 다.

사립학교 다닌 상류층이 국립대 독차지

낮은 취학·졸업률뿐 아니라 높은 낙제율도 심각한 교육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입학생의 55%인 1급과정 졸업생 중 정규기간 내(8년)에 학점을 이 수하는 학생은 겨우 3%에 불과한 실정이다. 브라질 정부는 이러한 낙제로 소비되는 금액을 연간 10억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또 학생들의 수준도 다 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2년 미국의 ‘교육평가서비스’가 평가한 20개국의 공립학교 13세 어린이들의 수학과 과학 성적 조사에서 브라질은 각각 37, 53점을 획득해 끝에서 두번째인 1 9위를 차지했다.

알바로 지니 교수는 “고학력 노동자를 많이 가진 국가는 생산성이 증대 되고, 고부가가치의 첨단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또 급격하게 변화돼가는 현 사회에서도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실업률을 감소시킨다”고 지적 한다. 그는 이와 함께 “‘고학력 노동자’는 부의 지나친 편중도 억제하 며, 균형있는 사회발전에도 이바지한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의 교육수준 정도가 한 나라의 경제·사회발전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의 교육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4.6%(80억달러)를 차지한다. 이 는 절대 예산액 기준으로 볼 때, 다른 개도국보다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 다. 그러나 이 예산 중 3분의 2(49억달러)가 대학교육에 치중돼 있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브라질 내에서 ‘일류대학’ 들은 주로 등록금이 무료인 주립·연방대학이다. 사립대학들은 대부분 질 이 낮을 뿐 아니라 고가의 등록금을 학생들로부터 받아내고 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무료인 주립·연방대학 입학생들은 주로 중상류층 자녀들이다 . 왜냐하면, 이들은 좋은 교육환경의 사립중·고등학교에서 우수한 교사 로부터 양질의 교육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브라질 최고의 명문을 자랑하는 상파울루 주립대학의 경우 지난해 신입생 중 66%가 사립 학교 출신이었다.

파울로 헤나토 소자 교육부 장관은 “공립학교의 수준이 낮은 가장 주요 한 근원은 교사들에 기인한다”면서 “전체 초·중등 교사 1백30만명 중 무려 44.5%가 전문교사 양성과정(고등학교에 해당)을 통해 충원돼 수준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립명문인 반데이란 치 학교의 교장 마우로 살레스 아기아르는 “낮은 월급이 공립학교 교사 들의 열의를 저하시키는 첫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유명사립학교의 교사들 월급이 3천달러인 데 반해 공립학교 교사들은 6분의 1인 5백달러( 상파울루주)에 불과하니 성의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는 것이 다.

부유층 이익 대변에 급급한 국회의원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리고 국가는 전체국 민들의 균형있는 복지를 위해서 소수 상류층보다는 대다수 서민층에 중점 을 두어야 하고, 대학교육 육성도 어느 정도 국민들의 기초교육이 다져진 뒤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브라질의 현실을 보면 정반대로 정책이 시행되 고 있다. 현 행정부가 의욕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상정해도 제대로 통과되기기 힘들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속한 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기회가 부족한 대 다수 저소득층들은 빈곤한 삶을 대물림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 때는 부 패한 우파 국회의원들이 금권선거를 자행하고 ‘무지한’ 국민들은 이들 에게 몰표를 던진다. 한마디로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나 시장 개방에 따른 자유경쟁체제와 더불어 양식있는 좌파 정치인들 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브라질도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베르치 상파울루주 교육국 국장보는 “기초교육에 대한 집중적 지원을 주내용으로 하는 예산변경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라면서 “교육정책의 방 향전환을 위해 정부가 모든 정치적 역량을 다하고 있으므로 바람직한 결 과가 나올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표명한다.

상파울루=김학유 통신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