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화폭을 도량 삼아 ‘수행정진’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풍경’에 들어서면 동자승의 맑은 웃음을 만난다 . 몸은 그림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벌써 자유로움을 깨친 듯하다. 보면 볼수록 평안하다. `눈빛' `그리울 때면' `별이 빛나는 밤에' `엄마가 너 무너무 보고 싶던 날'. 그림제목에서도 산 속 깊숙이 자리잡은 절집의 한 가로운 정경이 풍긴다.

원성(25) 스님. 동자승 그림을 그린 이다.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2학 년에 재학중이고, 어느덧 출가한 지 10년째다. 독실한 불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동성고 2학년 때 귀의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출가였다고 한다. 수락산 학림사 도원스님을 모셨고, 합천 해인사에서 수행했다. “ 동자승은 구도의 세계에 나선 순수한 영혼을 상징합니다. 어려서부터 절 에서 자란 저에게 적합한 표현대상이지요.”

고교생 때 교복을 디자인했을 정도로 그의 재능은 일찍부터 빛났다. 수행 의 힘든 나날 속에서도 떼기 힘든 세속의 끈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 그리기는 또다른 수행이었다.

그의 그림은 기법과 양식면에서 새롭다. 먹물과 붓으로 그려내는 전통선 화의 무거움은 찾아볼 수 없다. 유화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색깔에, 일러 스트까지 가미된 그림은 산뜻하고, 화사하다. 지난 95년 백상기념관에서 가진 첫 전시회는 1만5천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호응을 받았다. 그때 천주교의 신부, 수녀 1천여명도 전시장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따로 미술공부를 한 적은 없다. 일러스트도 짬짬이 독학한 게 전부 다. 그의 수행이 깊이를 더해가는 만큼 그림도 깊어졌을 뿐이다. 그는 지 금 아시아나항공 사외보의 일러스트도 맡고 있다.

그의 수행에는 사회복지학도다운 소망도 함께 들어 있다. 지난 94년 조계 종 사태 때 종단개혁의 깃발 아래 선 것도 그 때문이다. “참선, 수행만 이 불교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림만이 저의 전부도 아니고요. 이 세상엔 자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소외된 대중들과 함께 하는 스님이자 화가이며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문의: 02- 723-3375)

김상준/ 자유기고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