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전문화 추구하는 문예지 봇물

(사진/문예지 시장이 차별성과 전문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잡지들의 대거 등장으로 춘추 전국시대를 맞았다.)

문예지 창간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올봄에만 이미 5종이 창간됐고 현재 창간을 준비중인 것도 3~4종에 이른다. 매년 문예지들이 창간됐다가 사라 지기도 하지만 이번 문예지 출간 붐은 나름대로 뚜렷한 차별성과 전문화 를 추구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선 문학전문지로는 계간 `세계의 문학'을 펴내고 있는 민음사가 새로 창간한 비평전문지 `포에티카'와 본격 문학물 출판을 시도하고 있는 김영 사의 문학무크지 `새로운'을 비롯해 범우사의 계간 `한국문학평론'과 도 서출판 이수의 `21세기문학'이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나왔다. 또 고급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사회과학 전문지 `현대사상'(민음사)도 계간으로 창간됐다.

이밖에 월간 `문학사상'을 내고 있는 문학사상사가 단행본과 잡지를 결합 한 이른바 ‘북커진’(Book+Magazine) 형태로 문학과 문화비평을 주로 하 는 무크지 창간을 준비중이며, 도서출판 열림원은 문학과 페미니즘을 접 목한 문예지 창간 작업을 하고 있다. 해냄출판사는 인문학 중심의 전문 계간지를 낼 계획이며, 동문선은 유럽의 사상과 문화 조류를 최대한 신속 하게 독자들에게 알린다는 의도 아래 프랑스의 대표적 문학월간지 `마가 징 리테레르' 한국어판을 `세계사상'이란 이름으로 여름호부터 계간으로 낼 예정이다.

현재 국내 문예지는 약 1백여종. 이 가운데 `창작과비평' `문학과 사회' `세계의 문학' `실천문학' `상상' `문학동네' `문학정신' `작가세계 ` `동서문학' `한국문학' `소설과 사상' `버전업' `이다' `내일을 여는 작가' 등이 할거하고 있는 계간지(무크, 격월간 포함) 시장이 새 문예지들의 대거 등장으로 백가쟁명의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후발주자인 최근 창간지들이 기존 계간지 시장의 틈새를 비집고 자기 영 역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은 일종의 ‘구별짓기’이다. 기존의 백화점식 문학 계간지가 이제 어느 정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 아래 차별성을 뚜렷이 갖춘 특화된 문예지를 표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강상희 차창룡 김종욱 김연수 송경아 등 20대 후반 전후의 젊은 시인 소 설가 문학평론가를 편집동인으로 한 `새로운'은 64년생에서부터 75년생에 이르는 문단의 최연소 문학인을 중심으로 책을 꾸려가겠다는 ‘연령 차별 화’를 내세우고 있다. `새로운'은 제목 그대로 “지배담론체계로서의 문 학의 죽음”을 선언하고, 한국문학의 대안을 젊은 문학인들의 작업에서 찾는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를 주간으로 한 `한국문학평론'은 “한국문단의 동인 지화, 그룹화를 지양하고 각종 유파에 대해 공정한 평가와 기회를 제공한 다”는 ‘무계파주의’를 내세웠다. 전직 부총리 출신의 소설가 김준성씨 가 창간한 `21세기문학'은 서강대 이태동 교수를 주간으로 “광고없는 순 문예지”를 지향하고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아직 기존 계간지의 틀을 크 게 벗어나지 않는 편집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학평론가 권성우 우찬제 이광호씨를 편집위원으로 한 `포에티카'는 “ 비평이론과 현장 비평만을 다루는 비평전문지로서 다양한 문화적 주제들 을 적극적으로 소화함으로써 비평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문화 지평을 넓힌다”고 창간 취지를 밝혔다.

한편 `현대사상'은 대중문화의 지배적 영향에 맞서 지식인 문화의 공론화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식인 문화와 현실 사이의 조화로운 소통공 간”을 표방하며, 인문적 취향의 고급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

대중문화의 확산 속에서 인문학과 문학의 위기가 운위되는 한편에서 이같 은 문학지와 인문사회과학 전문지의 대거 등장은 일단 우리 문화가 다양 한 분화를 통해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 다. 그러나 문예지 시장의 경쟁격화, 문단의 그룹화나 출판사 중심의 동 인지화 경향 강화, 필자 부족으로 인한 전반적인 질적 저하 등을 우려하 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학사상사의 조황록 편집장은 “새로운 출판 분 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한 필자가 확보돼야 어느 정도 성 공을 점칠 수 있다. 현재의 문예지 창간 붐은 장기적으로 필진 확보를 위 한 출판사 영업전략의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열림원 정은숙 편집장은 “상대적으로 필진 확보가 어려운 신예 문예지로 서는 기존 필자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고, 필진 개발과 자체 기획 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