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윤도현밴드와 황신혜밴드의 두가지 전술

(사진/록음악과 가요의 도식적인 구분에 의문을 제기한 윤도현밴드(오른쪽)와 황신혜밴드(왼쪽)는 `한국적 록'의 탄생을 예감케한다.)

신현준/ 대중음악평론가

하도 충격적인 일이 많은 세상이라서 어지간한 충격에는 면역이 된 상태 지만, 지난 주 모방송국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록 Top 10’이라 는 차트가 신설되었다는 소식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물론 ‘아, 드디 어 록의 영향력이 주류 가요계까지’하면서 화색으로 반기기보다는 ‘웃 기고 있네’라고 비아냥거리는 게 ‘록 팬’의 반응일 것이다. 시나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곡은 ‘가요에 투항한 록’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는 록음악(혹은 다른 ‘진지한’ 음악)과 ‘가요’를 구분한 다. 그래서 어떤 록 뮤지션이 가요풍의 음악을 발표하면 ‘맛이 갔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두 밴드의 음반은 이런 구분이 타당한지 의 문을 제기한다. 당사자는 윤도현밴드와 황신혜밴드라는, 블루스나 재즈에 어울릴 만한 고전적 이름을 가진 두 ‘록 밴드’이다.

힘있는 코러스에 스민 진지한 성찰

윤도현밴드는 그 이름처럼 윤도현이라는 ‘솔로 가수’가 주축이 되어 결 성된 밴드다. 앨범에는 ‘계약조건 때문에’ `윤도현2'라는 이름으로 나 왔지만, 음악의 질은 분명 세션맨을 적당히 기용하여 만든 것이 아니다. 멤버들의 ‘출신성분’도 다양해서 쉽게 조화가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점만 보더라도 프론트맨인 윤도현이나 밴드를 전체적으로 지휘하는 강 호정의 품성은 대단해 보인다. 여섯 명의 대식솔을 거느린 이 밴드는 레 코딩이나 공연 끝나고 소요될 밥값과 술값만 해도 장난이 아닐 듯하다.

그럼 음악은?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윤밴드의 음악에서는 80년대 민중가 요의 영향을 느낄 수 있고, 따라서 장난기는 전혀 없다. 그 영향은 단지 가사의 내용이나 음악이 전달하는 정서 측면에 그치지 않는다. 민중가요 역시 ‘가요’인 것은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코러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따라서 ‘히트’한 민중가요들은 지금도 기억나는 코러스를 가지 고 있다. 물론 윤밴드의 음악을 민중가요라는 ‘협애한’ 전통의 후예로 못박을 수는 없다. 기타의 음색이나 주법, 그리고 후박(Backbeat)이 강조 되면서 때로 ‘펑키’ 혹은 ‘셔플’하게 변주되는 드럼 패턴은 전형적인 록 밴드의 음악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은 좀더 ‘정통적’인 다른 밴 드보다 가요팬들의 귀에 잘 들릴 것 같다. 왜일까.

아마도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민중가요처럼 ‘짧고 힘있는’ 코러스가 있 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하게 외치는 “지나온 날들 그 기나긴 꿈이 오오 …”(`긴 여행')라든가, 힘있게 질러대는 “내 인생은 하루살이”(`하루 살이'), 거친 래핑 뒤에 내뱉는 “음…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살기… 위 하여”, 부드럽게 속삭이는 “꿈꾸는 소녀야 별들아”(`꿈꾸는 소녀') 등 .

이 코러스들은 잘 들리면서도 상업적 가요처럼 작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별로 주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음악이 감상적으로 흐른다 싶을 때도 그 감상은 ‘진솔한 감정의 우직한 표현’ 속에 용해된다(이때 속으 로 ‘참 요즘 보기드문 듬직한 젊은이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황신혜밴드는 각각 미술가와 건축가인 김형태와 조윤석이라는 유쾌한 30 대 남자 두명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황밴드’에는 황신혜라는 프론트 맨이 없다. 이들의 기지는 작명 솜씨에 그치는 않는다. 이들은 음반을 내 기 전부터 각종 ‘해프닝’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나의 뇌리에 선 명히 남은 실례는 PC통신에 올라온 “황신혜밴드 데뷔 앨범, 1천만장 한 정 발매!”라는 김형태 본인의 글귀다.

괴상하게 쥐어짜는 목소리로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짬 뽕'), “닭대가리가 될까? 뱀머리가 될까”(`닭대가리') 등의 ‘말도 안 되는’ 가사를 형편없는 악기 실력과 곁들여 연주한 음악을 들으면서 ‘ 재미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님과 함께'의 리메이크나 뽕짝 디스코로 편곡한 `짬뽕'의 ‘관광버스 버전’을 들으면 기가 막힐 지경이 다.

그런데 그 재미 역시도 ‘겉보기와는 달리’ 코러스를 잘 만드는, 아니 잘 들리게 하는 특유의 ‘가창력’ 때문인 듯하다. 아마도 그 능력은 70 년대 그룹 사운드의 ‘캠퍼스 가요’의 숨겨진 미학, 즉 어리석어 보이지 만 진지한 표현의 미학을 ‘진지하게’ 성찰한 산물인 듯하다. 그런 의미 에서 그들의 장난은 ‘장난이 아니다’. 숨은 트랙(Hidden Track)인 99번 (!)에서 전자음향의 실험은 이런 판단을 굳히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뮤지션답지 않게’ 자신들의 미학이 패러디와 키치 라는 둥 ‘평론가나 해야 될’ 말을 미리 해버렸다거나, 패러디나 키치라 는 전략이 도대체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가짜인지를 헷갈리게 만든다 는 시비는 거두고 싶다. 이런 말이야말로 ‘평론가적’ 태도이고, 그런 시비는 그들의 장난기에 놀아날 것 같다.

야심찬 도전, 적어도 판정승은 했다

‘평범한’ 가요팬들은 록음악이 낯설다고 말한다. 그 낯설음은 일차적으 로 악기의 음색이나 보컬의 창법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닐지 도 모른다. 한국의 록음악 중에서 재미있는 ‘노래’가 많지 않다. 노래 의 차원을 넘어 사운드를 감상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뭔가 귀 에 쏙 꽂히지 않는 곡조를 계속 듣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결론. ‘한국적 록’의 탄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근데 그게 뭐지? ‘한국적인 것(국민성?)’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지론이고, 그런 점에서 한국적 록이라는 용어 를 피해 왔다. 그렇지만 그런 건 있다. 어떤 거. 가요라는 이름의 ‘국적 불명의 한국음악’이 아무리 짜증나더라도 그 ‘전통’을 피하는 게 아니 라 맞붙어 대결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 점에서 오늘의 도전자들의 전적은 적어도 판정승 이상이다.

근데 짜증 하나 더. 박노해의 시를 가사로 붙인 윤밴드의 `이 땅에 살기 위하여'가 방송부적합 판정을 받았단다. 아! 짜증과 싸우는 짜증나는 싸 움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