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고뇌하는 한 미술교사의 고백

충남 서천중학교 미술교사인 김인규(35)씨는 지난해 스승의 날, 3만원짜 리 상품권을 받았다. 평소 돈봉투나 선물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돌려 주는 그였지만, 그땐 그러지 못했다. 상품권을 들고온 이가 마침 학생이 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갈등에 빠졌다. 이걸 돌려줘야 하나, 받아야 하나. 그는 그런 성가신 갈등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캔버스에 상품권을 달랑 붙여 놓 고, 옆에는 이런 글을 적었다.

“스승의 날 나는 이것을 받았다. 남들은 돈봉투도 받는다는데 나는 이것 을 쓸 수가 없다. 뇌물인지 선물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는 이것을 돌려줄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그는 분명히 화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그가 나에게 준 것이기는 하지만, 만일 뇌물이라면 나의 소유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도 없는 것이다. 고민 끝에 그냥 이렇게 놓고 구경만 하기로 했다. 현명 한 선택은 아닐지 몰라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이전에도 비슷한 갈등을 겪었다. 가게에 들렀는데, 학부모인 가게주 인이 무작정 선물을 안겼다. 정색을 하고 되돌려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결국 집에까지 선물을 들고 왔지만,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뇌물과 선물의 차이를 분별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주는 이가 선물 이라고 해도, 받는 이가 부담을 느낀다면 이미 선물이 아닌 거죠. 교사로 서 가장 뜻깊고 유일한 선물은 학부모의 신뢰와 애정이라고 생각하곤 합 니다.”

그는 이런 생각이 결코 거창한 게 아니라고 믿는다. 대단한 결심이 필요 한 것도 아니다. 그저 교사로서 직분에 충실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충실 히 지킬 뿐이라고 한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촌지가 끼어들면 둘 사 이의 관계가 왜곡됩니다. 학부모는 부담없이 학교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 교사 역시 사심없이 학부모를 맞을 수 있어야 하는데, 촌지는 그걸 방 해합니다.”

그는 돈봉투에 대해 엄격하다. 현금뿐만 아니라 3만~10만원 정도의 물건 이나 상품권도 돈봉투로 여긴다. 자모회나 학부모회에서 제공하는 각종 회식 또한 마찬가지다. 값이 얼마 나가지 않는다고 쉽게 마음의 표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교기념일에 교사 전체가 소풍을 갔는데, 학부모 로부터 1백만원의 찬조금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견이 꽤 많았죠. 대부분 그것을 마음의 표 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안타까웠죠.”

그런 분위기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는 “교사가 학부모의 촌지를 거부하는 것에는 피해가 따른다”고 말한다. 대다수 학부모들은 촌지를 멀리 하는 교사를 멀리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시 교육 은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