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참회한 교사, 살아난 교육

“돈봉투를 훌훌 털어버리니 날아갈 듯 시원합니다.”

지난 3월17일 촌지 거부를 선언한 광주 서산초등학교 교사들은 요즘 심사 가 후련하다. 이젠 학부모를 만나도 동료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아이 들에게도 부끄럽지 않다. 선생님의 참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뿌듯하다. 이곳저곳에서 격려 전화가 걸려오고, 술자리 같은 모임에 나가도 바라보 는 눈길이 곱다.

교사들은 이런 안팎의 반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평지풍파를 일으키냐며 불평하던 다른 학교 동료 들도 점차 응원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의 호응에 힘이 솟는다 . 아직도 더러 촌지를 내미는 학부모들이 있지만, 사정을 알려주면 기꺼 이 고개를 숙인다. 교사들은 ‘받는 손’이 없으면 ‘주는 손’도 사라지 게 마련이라고 믿는다.

교사들의 선언은 상당한 산고를 거쳤다. 54개 학급에 학생이 2천9백여명, 교사가 64명에 이르는 이 학교는 지난해 부교재 채택을 둘러싼 비리가 불 거지면서 홍역을 치렀다. 결국 4학년 교사 8명이 무더기 징계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학교는 무거운 분위기에 싸였다. 징계를 당한 교사 8명은 새학기가 열리면서 학교를 떠나야 했다.

몇몇 교사들이 학교 분위기를 바꾸자고 나섰다. 땅에 떨어진 교사의 신뢰 를 되찾기 위해 자정선언을 내자며 처진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나 뜻을 모으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새로 전근해온 교사들은 정서가 사뭇 달 랐다. 일부에선 면피성 행동이라며 순수한 의도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학 교 밖 동료들의 눈총도 따가웠다. 자정선언 발표는 차일피일 늦춰졌다. 교사 64명 전원의 동의를 받는 데만 훌쩍 2주일이 지나갔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쳤기에 교사들의 자정의지는 높다. 교사들은 이번 선 언이 교육을 바로세우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다. “불신받고 있는 교단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 학부모들이 제공하는 어떠한 금 품과 향응도 거부합니다. 또한 부교재 채택이나 학습지 알선에도 일절 개 입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교사들은 이런 의지가 퇴색하지 않도록 이중의 잠금장치를 걸었다. 우선 자정결의를 담은 각서를 개인별로 교장에게 제출했다. 학교는 이어 학부 모와 출판사, 문구점 등에 교직원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 이런 결의가 지 켜질 수 있게끔 적극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선언을 추진했던 교사 최동철(51)씨는 “촌지거부선언은 시작에 불과하다 ”고 말한다. “앞으로 또다시 불신과 의혹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재연된 다면 교사로서 얼굴을 들 수 없을 겁니다. 돈봉투 추방은 교육 이전에 교 사로서 바로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광주=안관옥 기자/ 한겨레 사회2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