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조선족 산재자의 봄은 오는가

중국 조선족 초청 사기사건 피해자의 고소를 지난해 45일 동안 접수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피해자들의 격분은 그대로이며 사그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갖은 고생을 한 대가로 중국에서 숱한 빚에 시달리고, 가정이 박살나는 아픔을 겪으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날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미몽에 잠겼다가 악몽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눈앞 의 참혹한 현실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던 그들이다.

지금도 장밋빛 꿈을 간직하고 한국으로 간 연수생·노무자들은 온갖 산업 재해와 사기사건에 무기력하기만 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현실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의 대책이 지극히 미온적이라는 데 있다. `K BS' 사회교육방송을 통해 가끔가다 한국 시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전해 듣고 위로를 받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이다. 중국 동포들이 사기사건 에 당한 돈이 16억 인민폐로 알려졌는데 이는 2백만 동포가 두달 동안 밥 도 안 먹고 무조건 벌기만 했을 때 모을 수 있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사 기범들이 횡령한 돈으로 사치스런 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 동포들은 그야 말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조선족 피해자 최민수씨는 15일간의 관광비자로 한국에 갔다가 비행기값 을 벌겠다며 일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손가락 네개가 끊어져 ‘잘린 마 음’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연길시의 최태호씨는 건축현장에서 일하다 1 0층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져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왔지만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한국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이들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치료비를 댈 능력도 없거니와 동냥으로 자녀들 교육을 시키는 그들은 몸과 마음 모두가 ‘산 재’를 당해 마음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런 문제를 제대로 해 결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피해자들의 상처입은 마음에 다시 소금을 뿌리 는 죄인이 된 느낌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중국 동포사회에서 한국은 이제 ‘악령의 땅’이 돼가고 있다. 노동자의 피를 빨아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고, 이를 정부가 방조하는 한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노동자 피난처와 ` 한겨레21'을 비롯해 여러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피해자들을 돕는 것은 차 가운 나라 한국(寒國)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처럼 느껴진다. 지금 5 0여개 민간단체들이 연합하여 중국 조선족 산재노동자들이 ‘사랑의 집’ 을 꾸리는 것을 지원하고 있지만 상처입은 그들의 마음이 언제 아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소민/ 중국 길림성 연변대학 물리학과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