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읽기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언론이 만든 ‘복제인간’

황상익/서울 의대 부교수

‘복제 양’ 돌리의 탄생으로 한동안 세상이 떠들썩했다. 정확히 말하면 ‘복제인간’의 가능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문제를 접하고 어떤 사람 은 과학기술의 위력에 경탄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이 인간사회 와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기도 했다.

이른바 ‘과학기술 시대’에 산다고 하는 현대인들은 사실 그 과학기술자 체와 그것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꽤나 무관심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번의 ‘소란’이 그러한 무관심과 무지를 깨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히틀러 복제’는 언론의 과장된 상상력

과학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무엇보다 사실을 제대로 아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일반인들은 대개 언론보도를 통해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건에 접근 하며, 어떤 경우에는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언론의 보도, 해설, 논평 등에 의존한다. 따라서 정치, 사회, 경제 문제들에 대한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가 필요하다. 다른 사회 적 문제들에 관해서는 일반인들도 대체로 공식언론 이외의 판단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리 탄생에 관련해서 많은 언론기관이 고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 실을 과장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문제를 단순화하고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왜곡, 과장이나 선정적인 보도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도내용의 주변적인 부분에 국 한돼야지 핵심적인 문제에까지 용납돼서는 않된다.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과학자의 양산 운운” 하는 것이 이번 과장과 왜곡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표현을 간단하 게 하기 위해 전문학자들도 ‘생명체 복제’니 ‘인간복제’니 하는 용어 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유전자 복제’다. 즉 복제 양 돌리가 탄생했다는 말은 어미(?)와 ‘똑같은’ 양이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원형과 ‘유전자가 똑같은’ 개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 다시 말해 여섯살짜리 양의 일란성쌍둥이격인 양이 6년 늦게 인간의 인 위적인 조작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이 사실 자체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기술적, 윤리적 문제가 있음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가 ‘원형과 똑같은 양’이 태어났으며, 그러한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경우 세상은 수많은 히틀러 로 득시글댈 것처럼 보도하였다. 그럼으로써 언론은 설령 의식하지 않았 더라도 ‘유전자=생명체’라는 위험한 오류에 빠졌다. 유전자의 구실을 절대화하는 일부 극단적인 사회생물학자 등을 제외하고는 유전자가 곧 생 명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설계도일 뿐이다

생명체의 유전자는 건축물의 설계도에 해당한다. 건축물이 설계도에 따라 지어지듯, 생명체는 유전자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나 설계도가 곧 건축물 이 아니듯 유전자가 곧 생명체인 것은 아니다. 똑같은 설계도로 지은 ‘ 쌍둥이’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공간성과 시간성이 각기 다르 다. 능동적인 구실을 할 수 없는 건축물도 이러한데, 하물며 물리적 사회 적 환경에 대해 적극적인 작용을 하고 또 영향을 받는 ‘역사적’ 존재인 생명체는 말할 것도 없다. 일란성쌍둥이가 서로 닮았지만 각기 독립적이 며 존엄한 존재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인간이 존엄하다고 하 는 데는 여러 근거가 있겠지만, 그 개체의 정체성(아이덴티티)과 역사성 이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가 곧 생명체인 듯이 보도 한 많은 언론보도들은 본의아니게 인간과 여타 생명체들의 진정한 존엄성 과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이어서 위험한 것으로까지 여겨진다.

유전자를 생명의 절대 기준인 양 받아들이는 태도는 자칫 인종, 종족에 대한 편견을 심각하게 부추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