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내각제, 마지막 깜짝쇼 될까

내각제 개헌론이 정치권에 또다시 회오리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그동안 꺼진 듯하면 되살아나곤 했던 내각제 불씨가 한보사태와 김현철 파문 속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김종필의 물밑 거래?

그러나 이번 내각제 파동은 과거의 내각제 논의와는 판이하게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여야 가릴 것없이 정치권의 전방위에서 심상치 않은 내각 제 논의가 연속물처럼 잇따라 터져나왔다는 점이다. 특히 김영삼 정권의 실정으로 인해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회의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 당 안에서 논란의 발단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정치권에 긴장감마저 들게 했다. 신한국당 일부에서 김 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구성을 거론하는 시점에서 집권민주계가 내각제 논의를 주도한 사실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 다.

물론 내각제 파동이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김영삼 대통령이 서둘러`‘임 기중 내각제 개헌 불가’입장을 천명해 일단 내각제 불씨가 번지는 것은 막았으나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언제든지 내각제 불씨가 활화산처럼 타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각제 논란은 김 대통령의 급속한 권위상실과 맞물리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내각제 파동은 김수한 국회의장이 지난 3월24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 령과 단독면담하는 자리에서 ‘내각제 개헌’검토를 건의한 사실이 밝혀 지면서 시작됐다. 민주계 실세 중 한명인 김 의장의 건의는 바로 김 대통 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면서 정치권에 일파 만파의 파장을 몰고 왔다.

김 의장의 내각제 건의는 집권민주계가 내각제 공론화를 시도했다는 점에 서 그동안 야권의 ‘`DJP(김대중-김종필)공조’에 의한 내각제 논의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다. 야권은 오는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매개로 내각제를 거론하고 있으나 집권민주계가 이를 거론한다는 사실은 바로 대선 전 내각제 개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이미 지난 2 월24일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오찬을 함께 하면서 내각제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내각제 논의 뒤에는 바로 내각제 신봉론자인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 과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계가 연결돼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민정계 대표격인 김윤환 신한국당 고문이 김 대통령에 대해`‘신한국당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을 거론한 것 등도 `‘YS-JP(김영삼-김종필)관계 ’의 낌새를 눈치채고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김 대통령의 민주계와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이 김 고문을 소외시킨 채 내각제를 가지고 물밑거래를 하자 이에 쐐기를 박고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를 대선주자로 확실히 밀어주기 위한 김윤환 고문의 의도된 발언으로 보는 것이다.

김 대통령과 김종필 총재쪽의 심상치 않은 관계는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김종필 총재는 김수한 의장이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에게 내각제 검 토를 건의하던 같은 날 3월24일 종교계의 `‘친김영삼’인사들인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당회장) 및 김장환 극동방송사장(수원 중앙침례교 회 담임목사)과 함께 골프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내각 제문제가 화제에 올랐으며 김종필 총재는 내각제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 다. 조 목사와 김 목사는 이틀 뒤인 26일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을 만나 김현철문제와 함께 내각제문제를 거론했다. 결과적으로 김종필 총재의 내 각제 밀사구실을 한 셈이다.

‘김심 영향력’과시 위한 다목적 카드

이에 앞서 `‘YS-JP’사이에서 내각제 밀사구실을 한 사람은 신경식 정무 1장관이었다. 신 장관은 지난 연말과 1월초에 이어 2월에는 두세차례 김 종필 총재의 청구동 자택을 방문했다. 여기에서 김종필 총재는 신 장관에 게 김 대통령에게 오는 12월 대선 전에 내각제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고 신 장관은 김 총재의 뜻을 김 대 통령에게 그대로 전했다는 것이다. 자민련의 한 당직자는 “신 정무장관 이 김 대통령에게 내각제에 관한 자민련쪽 입장을 보고했다는 사실을 지 난 3월21일 자민련에 알려왔다”고 말해 신 장관의 구실을 뒷받침했다. 내각제 밀사구실을 한 신 장관의 정무1장관실에서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검토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지난 27일 보도되면서 “여권이 진짜 내각제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중시켰다. 신 장관은 내각제 문서파 문이 확산되자 “정무담당관인 권찬호 과장이 장관 활동 참고용으로 개인 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 의 없다. 공무원 사회가 어떤 조직인데 상관의 지시없이 정치적으로 민감 한 사안에 대해 과장이 개인적으로 문건을 만들겠느냐는 것이다. 이 내각 제 문건에는 절차상 제약요인과 국민투표시 국민설득방안, 개헌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적시하고 있는데다 “만약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려면 대통령이 극적으로 주도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는 내용까지 들어있어 더더욱 의심스럽다.

민주계 주도의 내각제 논의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그 배경을 놓고 다양 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국민회의 기획조정실이 분석해 김대중 총재에 게 보고한 `‘최근 내각제 논의 배경과 성격’이란 문건은 내각제 파동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이 문건은 집권민주계 가 내각제를 거론한 배경으로 △김현철 및 한보사태 등 현안 희석시키기 △DJP(김대중-김종필)공조 흔들기 △정치권 전체 흔들기 △이회창 신한국 당 대표 흔들기 △민주계 시간벌기 △김영삼 대통령 영향력 과시하기 등 5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민주계가 현안에 대한 관심을 돌리고 아직도 대 통령의 결단 여하에 따라 내각제가 가능하다는 `‘김심‘의 영향력을 보 여주기 위한 다목적용으로 사용한 카드라는 것이다.

이회창·박찬종·김덕룡 등 강력 반대

국민회의 박지원 기획조정실장은 “내각제 논의로 현안에 대한 관심을 돌 리고 민주계가 결속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집권민주계의 내각제 거론 은 일단 성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신한국당 내부에서도 민주계가 이회창 대표쪽으로 힘의 균형이 쏠리는 것 을 막고 민주계의 재집권전략의 하나로 내각제에 대해 실제로 관심을 갖 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윤환 고문 등 벌써부터 김 대통령에 대해 `칼을 들이대려는 신한국당 내 일부 ‘반민주계 세력’에 대해 일종의 경고 메시지 성격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배경만큼이나 민주계 주도의 내각제 논의에 대한 여야 정치 권의 반응도 다양하다. 신한국당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대 선주자들에 따라 그 편차가 크다. 이회창 대표와 박찬종 고문, 김덕룡 의 원과 이인제 경기 지사 등이 강력한 반대의 입장을 나타냈다. 김윤환 고 문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합의해 제의해오면 가능하다”는 조건부 찬 성의사를 보였지만 실현가능성에 회의적인 데다 이번 대선은 현행 제도로 치뤄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이홍구 고문과 이한동 고문은 권력분산제 를 주장해온 인물들로 내각제 반대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에 반 해 김수한 의장 등 민주계 일부에서는 내각제쪽으로 상당히 기운 인사들 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제를 당론으로 채택한 자민련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안택수 대변인은 “과거에는 김 대통령이 내각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내각제 건의에 대해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매우 고무된 표정을 보였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는 집권민주계 주도의 내각제 논의에 대해 강한 의혹 의 시선을 보냈다.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김 대통령이 위기탈출용으로 내각제를 받아들인다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김종필 자 민련 총재와 손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경계와 함께 ‘DJP공조’ 혼란 을 초래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의 최후수단

이와 같이 내각제 개헌을 둘러싸고 여야 정당과 대선후보들은 입장에 따 라 상이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어 하나의 큰 줄기로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내각제와 관련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복잡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상황에 앞서 내각제 개헌을 위해 넘어야할 첫 장애물은 국민여론 이다. 국민여론이 내각제 개헌을 ‘세 김씨의 권력연장’이라는 부정적 측면으로 보는 한 내각제 추진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론 을 거스르면서까지 권력체제를 개편하는 것은 정치적 모험인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내각제 개헌과정에서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 김 대통령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김 대통령이 앞으로 신한국당에 대 한 통제력을 완전히상실하거나 그런 상황이 예상될 경우 그가 최후의 수 단으로 내각제로의 선회를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