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경제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노동법, 여전히 위헌인가

김삼수/ 서울산업대 교수·산업경영학

작년 12월26일 집권여당만의 단독처리와 대통령의 공포, 노동계의 2개월 에 걸친 총파업투쟁, 국회의 여야합의 단일안에 의한 재개정과 공포라는 일련의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재개정된 새로운 노동관계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지난 3월12일, 새 노동법의 공포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발표했다. 새 노동법은 “1953년 노동법이 제정된 이래 충 분한 의견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친… 역사상 처음 있는” 개정으로 “ 근대화시대·권위주의시대의 낡은 틀을 벗어버리고 21세기 정보화시대·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골격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기본권 을 신장”시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기본권’은 신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 개정 노동법’은 과연 대통령을 위시한 정책당국의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책수단을 체계화하고 있는가? 이번 노동법 개 정의 성격, 그리고 한국에서의 노동기본권의 위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원래 이번의 노동법 개정 논의는 1987년의 법개정 이후에도 계속 제기돼 온 노동계의 요구와 ILO와 OECD 등 국제기구에 가입함에 따른 각종 권고 등을 통한 개정 압력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내외적인 계기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노동자 권리의 신장이라는 방향에서의 개정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정의 직접적 계기가 된 ‘대통령의 신노사관계구상’ (96년 4월24일)이나 노동관계법개정위원회(이하 노개위)의 구성과 ‘개혁 과제 정리안’은 노동시장의 탄력화라는 또하나의 중요한 정책목표를 갖 고 있었다. 그뒤의 과정은 법개정을 공론화하는 기구로서 노개위라는 형 식과 장소를 빌려 내용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조건 규제 완화를 꾀 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정리해고 규제의 완화, 변형근로시간제의 인정 등 사용자쪽의 요구는 대폭 관철된 반면 “노동기본권”은 본질적인 면에 서 전혀 신장되지 않았다. 그 수준은 1953년 법에도 크게 못 미치는 것이 었다. 40년이 지난 뒤에도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법체계라 고 해야 할 성격의 것이었다.

노동자의 권리보장 수준에서 보면, 우리 노동법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성격을 불식하고 있지 못하다. 서구 근대의 시대적 관찰자인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가 ‘사람의 인격(person)’은 ‘그 신체의 노동’이며, 노동 력 소유는 ‘신성불가침’이라고 간파하였듯이, 이론적으로 노동력 소유 는 개인의 자립과 자유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 면 영국의 경우 노동관계는 근대의 성립이후 오랫동안 판례법상의 주종법 에 의해 불평등하게 규율되어 왔다. 오늘날의 노사간의 대등한 ‘근대적 ’ 고용관계는 1870년대에 노동자의 파업권(단결권)이 의회제정법에 의해 승인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었던 것이다.

노동력의 소유는 개인의 자립과 자유의 확증이 되는 절대적 소유임과 동 시에 현대사회에서 만인이 동의할 수 있는 평등한 소유로 토지(부동산)나 화폐·자본(동산)보다도 우선하여 보장되어야할 제1의 기본적 ‘인권’이 다. 단, 문제가 되는 공공부문(국가기관 및 지방자체, 공기업)은 대통령 까지도 포함하여 ‘공공’을 위한 직무가 ‘사적인 임금노동자’에 의해 수행되는 근본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만인이 독립적 인 인격-사유인”이라고 하는 근대사회의 구성원리를 우선하여 파업권을 보장하되,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법을 만인을 위해 서비스한다 는 점을 고려해 그 수장(首長)인 대통령이 권한과 책임을 지는 조정제도, 예컨대 긴급조정제도에 의해 파업권을 제한하는 것이 근대사회의 정의에 부합된다. 단결=파업권은 ‘공공복리’와 같이 그 정당화에 있어서 가치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목적적 권리’에 종속되거나 비교되어야할 성격의 권리가 아니다. 공무원은 결코 왕정이나 가산관료제하에서 살고 있지 않다.

전근대성은 변하지 않았고…

그러나 개정 노동법은 여전히 공무원은 물론이고 사적인 부문을 다수 포 함하는 교원, 방위산업체나 공익사업 종사자에 대해서까지 직접적으로 또 는 강제중재제도를 통해 파업권을 부정하거나 사실상 부인하고 있다. 이 런 점에서 개정 노동법은 전근대적이고, 여전히 위헌의 가능성이 매우 크 다. 현재 우리 경제에 커다란 혼란과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정치권을 포 함한 공공부문 문제의 핵심은 ‘공’과 ‘사’에 대한 불철저한 구분, 사 적인 시민의 ‘권리’에 대한 무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공공부문에 대 한 단결권과 쟁의권의 보장은 일반 시민의 ‘이기적’인 우려와는 달리, 공적인 정책결정 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해줄 수 있는 효용이 있다고 생각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