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배고픔, 분단을 굳힌다

(사진/사리원의 한 탁아소 점심시간. 어린이들이 옥수수와 콩이 혼합된 유니세프 제공 영양식을 먹고 있다.)

“서기 20XX년 통일한국에는 마치 두 인종이 살아가는 듯하다. 통일 전 남한 지역에 살던 이들은 훤칠한 키에 건장한 몸매를 지닌 반면, 북한 출 신자들은 깡마르고 왜소한 몸집이다. 남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주원인은 1995년부터 몇년간 북한지역을 휩쓴 극도의 식량난 이다.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북한 출신자들은 이 고통의 시기를 만성적 인 영양부족에 시달리며 보냈다. 그리고 이것이 발육부진 등으로 이어지 면서 남쪽 출신들과 체격에서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현재 통일정부는 통일 뒤 아직까지 존재하는 남북 출신들의 이질감을 해 소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맨눈으로도 뚜렷이 구 별되는 남북 출신들의 신체적 차이점은 이런 정부 노력에 가장 큰 걸림돌 이 되고 있다. 특히 북한 출신들은 배고픈 어린 시절 정치논리로 식량지 원을 거부했던 남쪽에 큰 반감마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세기엔 ‘커다란 체격 차이’

이 이야기는 물론 상상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 어린이의 상태와 남한 당 국의 태도를 고려하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남북 어린이의 체격조건부터 살펴보자. 최근 방북자들은 한결같이 현재 북한 어린이들이 제 나이보다 1~2살 어리게 보인다고 지적한다. 영 양부족에 따른 발육부진 탓이다. 또 영양부족은 북한 어린이들의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크게 떨어뜨린 것으로 방북자들은 보고 있다.

이에 반해 교육부가 지난 2월4일 발표한 ‘96년 학생신체검사 결과’에 따르면 남한 어린이들은 그동안 꾸준히 덩치를 늘려왔다. 남학생의 경우 키는 10년 전보다 평균 3.95㎝ 커졌으며, 몸무게는 평균 4.7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여학생도 비슷한 추세다. 남한 어린이 중에는 표준체중 의 150%를 넘는 고도비만도 전체의 0.7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만일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부족 상태가 계속된다면 남북한 출신자 들은 커다란 체격 차이를 보일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남북 어린이들간의 더 큰 차이는 그러나 이런 외양보다 씀씀이에서 비롯 된 의식구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남한 어린이의 소비실태를 먼저 살펴 보자. 재정경제원은 지난 2월23일 `세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책자를 전국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나눠줬다. 초등학생들의 잘못된 소비습관을 바로잡 기 위해서다. 책자에 따르면 남한 어린이 중 “외제품이나 값비싼 상품을 좋아한다”는 응답이 88%에 이르고, 수십만원대의 게임기와 20만원이 넘 는 장난감, 10만원 이상의 신발을 찾는 어린이도 많다. 재경원은 국내 진 출 외국 패스트푸드점이 해마다 60% 이상의 고속성장을 하는 것도 이런 ‘어린이 과소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통일비용’줄이는 데도 도움

그러면 북한 어린이의 소비실태는 어떨까. 사실 북한 어린이에 대해서는 이런 질문조차 우습다. 북한 어린이들에게는 장난감이나 신발이 아니라 당장 굶주림을 채울 식량조차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남북 어린이 의 양극된 ‘소비’ 행태는 곧바로 이들의 사고형성에 영향을 줘, 이들을 쉽게 융합될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

현재 남북 어린이들이 통일 주역이라 할 때 이들은 또한 민족화합의 주체 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현격한 차이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남북한 어린이들이 민족통합의 필수조건인 ‘어깨동무’를 이룰 수 있을지 우려 하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 어린이의 당장의 배고픔에 관심을 갖는 것은 결국 먼 훗날 민족의 화합에 드는 ‘통일비용’을 줄이는 것도 된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