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배고파요 오마니!” 북한 새싹들의 안타까운 비극

(사진/황해북도 사리원시의 한 탁아소 보모가 비타민A결핍으로 시력장애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애처로이 바라보고 있다.)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최근‘어린이의 위기’를 알리 는 소식이 잇따른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여러 사람들의 눈에 비친 북한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심각한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버려져 역전 등에서 떠돌다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북한에는 이 렇게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6살 이하 어린이가 2백40만명이나 있다. 이에 따라 국제식량계획(WFP)이나 국제연합아동기금(유니세프) 등 국제구 호단체에서는 북한 어린이에 대해 나름대로 성의를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북한 어린이들에게 ‘실질적 원조’를 해줄 수 있는 한국 정 부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식 량 고갈이 극점에 이를 4~6월이 되면 갈림길에 선 어린이들의 운명은 분 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겨레21'은 죽어가는 우리의 또다른 반쪽 지역의 어린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여기에 실린 북한 어린이들의 사진 은 유니세프에서 제공한 것임을 밝혀둔다. 편집자

얼마 전 북한에 사는 이모에게 1천위안(10만원)을 송금한 조선족 김금화( 45·여)씨는 요즘 눈물 속에 날을 보낸다. 굶주림에 죽어가는 북한의 조 카들 걱정탓이다. 베이징시 하이디엔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김씨에게 1천 위안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인편으로 전해 들은 소식은 김씨 에게 선뜻 주머니를 털게 만들었다.

한결같이 ‘뼈가 앙상, 배가 불룩’

“최근 북조선에 들어갔던 사람이 이모네 소식을 전하는데, 글쎄 둘째 조 카가 죽었다지 뭐야요. 그것도 배를 곯아 말이야요. 이제 서너살짜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하도 기가 막혀 다른 애들이라도 살려보라고 돈을 보냈디요. 우리도 전에 겪어 보았지만, 먹을 거이 없으면 제일 기막힌 게 아이들 아닙네까?”

지난 3월27일 굶어 죽은 조카 이야기를 꺼내는 김씨의 눈자위가 어느새 붉어진다.

북한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 되는 올해 들어 북한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각종 공식·비공식 정보들의 공 통된 지적이다. 이들 소식통은 “최근 북한은 어른 하루 식량배급량이 1 백g으로 떨어질 정도로 식량 상황이 악화됐으며, 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성장기의 아이들”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선 국제기구의 보고를 통해 북한 어린이의 상태를 살펴보자. 가장 최근 북한을 들러 식량상황을 파악한 세계식량계획(WFP) 캐서린 버티니 사무국 장은 지난 3월18일 베이징에 도착한 뒤 “2백40만명에 이르는 만 6살 이 하 어린이 대부분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어린이 기아의 실상을 전했다.

지난 3월15~18일 황해북도 인산·평산·은파군을 돌아본 버티니 사무국장 은 이어 “이번 방문에서 본 북한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뼈가 앙상하고 머 리카락이 영양부족으로 노랗게 변색됐거나 배가 불룩 나왔다”고 어린이 영양상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버티니 국장은 또 “아이들이 눈에 띄 게 작아졌다”며 대부분 아이들이 그들의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일 정도로 발육부진 상태에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북한을 다녀온 미국 유진벨재단 스티브 린튼 이사장도 지난 3월 12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마련한 강연회에서 “현 상황에서 북한 어 린이들이 설사 살아남는다 해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라고 진단 했다. “5세 미만 아이들은 영양이 부족하면 키가 자라지 않고 두뇌 발달 에도 심각한 악영향이 오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이들이 극도의 영양부 족 상태에 빠진 북한의 현 상황은 “한 세대가 정신적·육체적 불구가 돼 가는 ‘인간 실험장’”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한다.

하지만 버티니 국장과 린튼 이사장 등의 안타까운 증언도 북한을 방문한 조선족이나 연변 등에서 만나는 탈북자들이 전하는 소식에 비하면 ‘상당 히 세련된 편’이다.

연변에 사는 김상진(30·가명)씨는 지난해 8월 북한 회령지역을 방문했을 때 만난 앙상한 북한 어린이들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누님집을 찾은 그는 회령시장에서 ‘사람 주먹만한’ 수박을 인민폐 40원에 샀다. 수박을 다 먹고 무심코 껍질을 버렸는데, 기다리고 있었는지, 앙상한 어 린 아이 몇명이 잽싸게 달려들어 껍질을 주워먹어버렸다. 아차 싶었고, 그는 내내 수박 먹은 것을 후회했다. 누님집에 도착했을 때도 김씨는 자 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린 조카들을 포함해 누이네 가족 7명이 모두 방안 에 누워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도착하기 5일 전부터 풀 만 먹었다는 것이다. 가지고간 쌀로 밥을 해 먹은 뒤 조카가 들려준 이야 기도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해 여름에만 한반 친구 3명이 허기를 달 래려 산에서 버섯을 따먹고는 죽었다는 것이다.

단천 역전에서 50여명 얼어죽어

(사진/북한을 다녀온 한 인사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작아졌다" 며 대부분 아이들이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일 정도로 발육부진 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심각한 영양부족에 빠진 북한 어린이 상황은 지난 겨울을 넘 기면서 더욱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 실례가 지난 2월 중순 연길시에서 만난 탈북자 김동만(56·가명)씨가 전하는 ‘어린이 떼죽음’사건이다. 손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는 김씨는 지난 1월초 함경남도 단천 역전에서 어린이 50여명이 얼어죽은 것을 보았다. 당국에 선 동사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아이들 주검이 들려나가는 것을 보며 어린이들의 죽음엔 추위뿐만 아니라 굶주림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 각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미 북한에는 어린 아이들이 수백명씩 기차 역전을 떠돌 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아이를 먹여살릴 수 없는 농촌·소도시 부 모들이 ‘그래도 사정이 나은’ 대도시에 버리고 간 경우다. 북한 식량사 정은 평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과 농촌과 대도시의 중간인 중소도시에 서 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려진 아이들은 주로 도둑질과 구 걸을 해서 사는데 도시라고 사정이 크게 낫지 않아 늘 굶주린다는 것이다 . 비록 단천 역전의 떠돌이 아이들이 죽은 날 기온이 무척 떨어졌지만 이 런 굶주림이 그들의 저항력을 약화시켰을 거라는게 김씨의 평가였다. 그 는 얼마간의 식량을 얻어 김정일 생일로 조-중 국경의 경비가 느슨한 지 난 2월 말께 두만강을 건너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실제 연변의 변경지역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기아를 참다못해 ‘아이를 버 리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도 여럿 있다. 중국 도문과 훈춘 사이 양수에 사는 이용석(35·가명)씨도 그중 한명이다. 지난해 9월 김씨는 두만강 건 너 북한 온성에서 한 부부가 아이를 요람에 넣어 물에 띄우는 것을 보았 다. 김씨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소리쳤으나, 요람은 곧 물에 잠겨버렸다 . 북녘 엄마가 아이를 못먹이게 되자 ‘조금 더 잘 사는’ 중국쪽으로 아 이를 보내려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증언에도 아직까지 북한 어린이의 영양상태에 대한 공식적인 보고는 없다. 북한 당국이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한 내용은 발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들어 식량재고량 고갈 등 전반적 식량위기를 들어 세계 각국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영양상태 말고라도 북한 어린이에 대한 통계 자체가 많지 않다.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이 1천명 당 24명으로 남한의 2배 이상이라는 세계은행 보 고 등이 고작이다. 국제연합아동기금(유니세프)에서 내는 `국가의 진보' 96년판에도 북한에 대해서는 ‘자료 없음’으로 나온다. 이 책자에서는 전세계 어린이들의 영양 부족상태를 표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세 계에서 가장 어린이 영양상태가 나쁜 나라는 인도와 방글라데시다. 각각 어린이 53%와 67%가 영양실조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3년간 수해 등으 로 아사 직전에 있는 북한 어린이에 대해서는 들리는 이야기로만 그 심각 성을 느낄 뿐이다.

자식 구하기 위한 식량 재분배

(사진/굶주림에 취위까지 겹쳐 겨울은 더욱 힘들었다. 굶주려 죽은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의 전반적 식량사정을 아프리카 난민 등에 대한 식량공급과 비교해보 는 것도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상황 판단에 도움을 줄 것이다. 올 들어 북한 당국이 공식적인 배급체계로 제공하는 ‘어른 하루 100g’은 유엔이 아프가니스탄 등 각종 분쟁지역에 제공하는 식량의 6분의 1 수준이다. 이 에 따라 유진벨재단 린튼 이사장은 “북한 식량난은 지난 85년 에티오피 아의 기아보다 더 심각하다”고 단언한다. 평양에 상주하는 유엔 직원 크 리스틴 레마르도 지난 2월24일 `뉴스위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현재 곡 물량은 생존하는 데조차 충분하지 않다”고 전했다.

길림대학의 한 조선족 교수는 북한 소식에 정통한 길림시 국제담당 관리 의 말을 인용해 지금까지 북한에서 굶어죽은 사람의 수가 10만명을 넘어 선다고 전한다. 이들 중 노인과 어린이가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그의 지적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북한 어린이 상황이 아직까지는 에 티오피아식의 절망적 상황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희망섞인 분석도 있다. 이런 ‘희망’은 지난해 12월6일 발표된 국제농업기구/세계식량계획(FAO/ WFP) 북한상황평가단의 `특별보고서'에서 발견된다. 상황평가단은 극도의 식량난 속에서도 그나마 북한 어린이의 집단적 떼죽음을 막고 있는 두 가 지 요인을 지적한다. 첫째는 북한 당국이 어린이에 대한 ‘특별배급량’ 은 낮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형편없는 양이지만 유아원과 유치원 등 집단교육시설에 수용된 북한 어린이의 영양상태를 최소한에서 나마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 요한 요소는 가족 내의 식량재분배다. 현재 북한 가구 내에서는 어린이에 게 더 많이 돌아가고 노인에게는 더 적게 돌아가도록 식량을 재분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한민족의 전통” 이 에티오피아보다 더한 식량위기에서 북한 어린이의 떼죽음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인들의 죽음이 줄을 이어 일부 지역에서는 북한 당 국이 공식적으로 장례를 금지할 정도라고 한다(지난 3월9일 `워싱턴포스 트').

“줄초상, 어린이에까지 닥칠 것”

하지만 북한 식량위기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이런 ‘줄초상’이 곧 어린이에까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3월 초 북한을 방문한 유엔개 발계획(UNDP) 홀콤브 수석대표는 지난 3월12일 “오는 6월부터는 북한 주 민에게 배급될 곡물이 없을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WFP는 이보다 앞선 4월부터 이런 식량 고갈 상태가 닥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배급받는 식량이 전혀 없다면 어린이에 대한 특별배급도 가족 내 재분배 도 불가능해진다. 이미 북한 어린이의 결석률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이 WFP의 판단이다.

봄날 북에서 내려오는 바람 속에 북한 어린이의 굶주림에 지친 울음소리 가 들린다.

김보근 기자 베이징=김성환 통신원 연변=김정식/ 북한문제 자유기고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