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1

"내 고향 원혼들은 누가 위로해주나요,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느낍니다"

[사진/쿠앙남성 디엔안사의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집 뒤쪽 논에서
20여명이 학살당했던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지난 10월 3일, 베트남의 <젊은 문예> 40호에는 응웬한쭝의
단편소설 <한국으로부터의 편지>가 실렸다. <한국으로부터의 편지>는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양민학살 사건을 소설로 형상화한 최초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저자인 응웬한쭝은 “비록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자신의 고향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소설 속의 ‘나’는 대학 1학년 때, 같은 과 여학생인 ‘산’과 사랑에 빠진다. ‘산’은 31년 전 ‘나’의 고향에서 일어났던 양민학살에 참가한 한국 병사의 딸이다. “저는 당신의 가족, 친척, 이웃들을 죽인 자의 딸입니다.당신에게 감히 용서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2학년 여름방학에 한국으로 돌아간 ‘산’은 ‘나’에게 20여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에는 회한과 고통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일기장이 함께 소개돼 있다. “저는 한국 각지를 돌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아버지 세대가 당신의 고향과 베트남에서 저지른 일들을 알리고 그 죄과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호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베트남이 ‘과거를 닫고 미래를 향하는’ 그순간부터 ‘산’을 영원히 잃고 만다.

이 소설의 저자인 응웬한쭝은 한국군 양민학살 지역인 쿠앙남성, 디엔반 현, 판쭈찐중학교 교사이기도 하다. 그 역시 디엔안 양민학살 사건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고모, 작은아버지, 그리고 동생과 사촌동생 등을 잃었다.그는 앞으로도 “한국인들과 전세계인들에게 ‘20세기의 야만’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자신의 고향뿐만 아니라 하미 양민학살, 투이보 양민학살 등 인근 마을의 한국군 양민학살을 고발하는 소설을 계속 써나갈 것”이라고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다음은 그가 보내온 편지의 전문이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20km 정도, 빈디엔읍과 디엔탕사 사이 1번 국도에서 바라다보면,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이곳에서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미군의 밀라이 양민학살과 비교해 그 규모나 정도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참으로 경악할 만한 양민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묘신년(1968년) 정월14일(음력), 호이안 주둔 청룡여단 소속 1개 중대가 쿠앙도성(현재의 쿠앙남성), 디엔안사, 퐁니촌, 럽남마을에 몰려와 베트콩인지 아닌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땅굴을 수색해 수류탄을 던져넣고, 보이는 집마다 불을 지르고 어린이, 부녀자, 노인 가릴 것 없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총으로 쏘아죽인 뒤,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고 시신을 불구덩이에 던져넣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일부 여성과 아이들을 한곳으로 모아놓은 뒤 집단으로 학살하기도 했지요. 그렇게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퐁니마을과 퐁마을은 온통 불길과 피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한구의 시신도 온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조차 시신들을 알아볼 수 없었지요. 울분에 찬 인근 마을 주민들은 시신을 둘러메고 초소를 향해 몰려갔습니다. 집들은 깡그리 불타 재만 남았고, 시신을 담을 담요도 해먹(그물침대)도
없었습니다. 상자와 대나무바구니, 채반 등에 조각난 시신들을 주워 담았습니다. 남조선 군인들은 초소의 문을 닫아걸고 막았지만, 주민들은 콩쩌이다오에서 응옥탐까지 1km가 넘도록 1번 국도 양변에 시신들을 주욱 늘어놓았습니다.

이 마을에서 가족 모두가 온전하게 살아남은 집은 릉씨 가족뿐입니다. 그는 이 학살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목격하였지요. 당시 한살도 채 되지 않았던 레딘먼은 그의 어머니가 바나나숲 속에 숨겨놓아 겨우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고아로 자라나야 했던 먼이 31살의 청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매년 정월13일이면 퐁니와 퐁마을 전체가 함께 제사를 지냅니다. 전쟁에는 언제나 상실이 따른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도대체 양민들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매일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이상을 추구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한국 청년들을 흠모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들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 또는 형님 세대가 내 고향 양민들을 마치 중고대 시대에나 있을 법한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했던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한국은 일본에 과거의 전쟁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도 고엽제 피해자와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내 고향 디엔반현, 디엔안사와 중부지방 각 성 이곳저곳에서 벌어졌던 학살에 대해서는 누가 사과를 할까요? 누가 보상을 할까요? 그날의 동맹군, 그날의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을 위해 사과하고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요?

나와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날 희생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의 참전군인들과 그 자손들도 책임의 일부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호치민=구수정 통신원 chaovietna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