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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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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11개월째, 출구 안보이는 치킨 게임

①우크라이나 전황-양날의 칼이 된 소모전
전쟁 길어지며 상대 소진 기다리는 교착 국면… 춘계공세의 고삐가 결정적 분수령이 될 듯
등록 2023-01-27 17:55 수정 2023-04-20 11:51
2023년 1월2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동남부 도시 자포리자에서 공격 훈련을 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미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최신형 전차를 지원하기로 했다. REUTERS 연합뉴스

2023년 1월2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동남부 도시 자포리자에서 공격 훈련을 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미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최신형 전차를 지원하기로 했다. REUTERS 연합뉴스

2023년 2월24일 전쟁 발발 1년이 다가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점점 러시아 대 서방의 전쟁으로 격화하고 있다. 군사강국 러시아는 서방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 우크라이나의 항전에 직면했으나, 서방 역시 전방위적 제재로도 러시아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1세기의 최대 지정학적 격변이라는 평가처럼 그 원인과 전개, 격화를 일방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나? 2022년 하반기 전세를 역전시켰다는 우크라이나는 왜 그 뒤 뚜렷한 성과를 못 내는가? 이후 러시아는 다시 공세의 고삐를 쥐었는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은 러시아를 제압할 정도로 충분한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은 무엇이고, 그 끝은 어디인가? 8회에 걸쳐 우크라이나 전쟁의 속살을 객관적으로 조망해본다. _편집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2023년 들어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의 솔레다르, 바흐무트 등 격전지에서 공세를 펼치자 미국 등 서방 진영은 독일의 레오파르트2 전차로 상징되는 새로운 공격용 무기 공급에 나서 군사지원을 한 단계 격상시키고 있다. 이는 양쪽에 새로운 공세의 준비이고 조만간 전쟁의 격화를 예고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모전’이다. 그 소모전을 보여주는 현장은 ‘고기 분쇄기’라고 불릴 정도로 전투가 치열한 바흐무트와 그 주변지이다. 우크라이나는 바흐무트 전선에서 파상 공세를 펼치는 러시아의 와그너그룹 용병에게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히며 선방했다고 주장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병력과 자원을 묶어두고 소진시키는 공격을 펼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자국에 유리하게 전황을 부풀리는 일환임을 고려하면, 현 국면은 전황이 교착 상태이나 곧 그 균형추가 움직이기 직전으로 분석된다.

러 ‘전략적 소모전’ vs 우크라이나 ‘국지적 기동전’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 이후 몇 단계를 거치며 현 국면에 도달했다. 1단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북·동·남 방면에서 침공해 수도 키이우까지 진공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친서방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를 붕괴시키고 우호적인 친러 정부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결의에 찬 반격과 서방의 지원에 더해 러시아군의 보급 및 작전 실패가 겹쳤다. 2단계는 2022년 4월 초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밀린 러시아의 키이우 철수다. 러시아는 젤렌스키 정부 붕괴 대신 돈바스 등 동부 지역 점령으로 전쟁 목표를 바꿨다.

러시아가 키이우 철수 이후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세를 집중하고 점령지를 확대한 것이 3단계다. 러시아는 2022년 6월 이후 돈바스 지역에서 공세에 나서 리만, 리시찬스크, 세베로도네츠크뿐만 아니라 남부의 항구 마리우폴도 점령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병력에 비해 전선을 넓히는 바람에 서방의 새로운 무기 지원으로 재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여지를 줬다.

2022년 9월 이후 서방의 중거리 정밀 무기를 지원받은 우크라이나가 반격해, 동북부 하르키우와 남부 헤르손을 탈환한 것이 4단계다. 미국이 지원한 차륜형 트럭 기반의 다연장 로켓 시스템인 하이마스(HIMARS·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로 대표되는 중거리 정밀 타격 무기를 앞세운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이후 상실한 영토의 절반을 회복했다. 5단계가 2022년 11월 초 러시아의 헤르손 철수와 전열 정비, 우크라이나 전력망 등 기반시설에 대한 폭격 지속이다. 이에 더해 동부의 바흐무트 전선의 공세 강화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러시아는 ‘화력 중심의 소모전’, 우크라이나는 ‘지형에 초점을 둔 국지적 기동전’을 펼쳐왔다. 이라크전 등에서 작전참모를 지낸 군사전문가인 앨릭스 버시닌은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이 운영하는 러시아 문제 전문 웹사이트 <러시아 매터스>에 실린 ‘우크라이나 전쟁의 앞날’이라는 기고에서 양쪽 전략을 평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중거리 정밀무기 등을 지원받고 유리한 지형에서 국지적 기동전으로써 효과적 반격을 벌여 전술적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병력과 자원을 소모했다. 반면 러시아는 초기의 병력 부족과 보급 및 작전 실패로 점령지에서 철수하는 정치적 비용을 치르는 대신 상대적으로 전력을 보전했다. 러시아는 현재 우세한 화력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의 병력과 자원 소모를 강요하는 소모전 전략으로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였다.

동부전선 바흐무트는 ‘고기 분쇄기’

이런 전략 대결의 1차 승부처가 바흐무트 전선이다. 러시아는 남부 전선 헤르손에서 철수한 병력을 재배치하면서, 바흐무트와 그 주변에 공세를 집중해왔다. 일차적 성과는 2023년 1월10일 광산 도시 솔레다르를 사실상 점령한 것이다. 러시아에 솔레다르 점령은 남서쪽으로 10㎞ 떨어진 바흐무트를 포위해 압박하는 한편 하르키우 등 동북 방면으로 나가는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의미다.

서방에서는 바흐무트를 러시아가 점령해도 전략적 가치가 없고 러시아가 그동안 너무 큰 비용을 치렀다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에 바흐무트 전선의 승패는 상징적·정치적·전략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 발발 이후 처음 미국 방문 전날인 2022년 12월20일 바흐무트를 방문해 “가리가리 찢어졌으나 정복되지 않은 우리의 ‘요새 바흐무트’와 그 수호자들을 지원해달라”고 호소한 데서 드러난다. 젤렌스키는 병사들의 서명이 담긴 국기를 받고는 미 의회와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양쪽이 바흐무트 전선에 집착하는 것은 각자의 전략에 따른 결과이다.

우크라이나의 국지적 기동전의 전제는 서방의 무기 등 지원이다. 전장에서 패퇴하지 않고 성과를 지속적으로 보여줘야만 서방국가들이 전쟁 피로증을 느끼는 여론을 물리치고 지원을 계속할 수 있다. 폴란드의 독립적 군사자문회사인 ‘로찬컨설팅’의 콘라드 무지카는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 주변에 10개 여단, 3만 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바흐무트를 사수하려다 시간이 갈수록 물러서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군사강국에 어울리지 않는 수모적인 후퇴를 감수하고라도 군사력을 보전하는 차원을 중시하며 우크라이나의 병력과 자원 소모에 집중하고 있다. 바흐무트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용병 회사 와그너그룹의 창립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언론에 “우리 임무는 바흐무트 자체가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의 파괴와 그 전투역량의 소진”이라며 “이는 다른 지역에도 극히 긍정적 효과를 주고, 이 전투가 ‘바흐무트 고기 분쇄기’라고 불리는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피해 규모 안갯속, 과장된 프로파간다 공방

지금까지 서방 언론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가 ‘인간 파상공세’를 펼쳐 피해가 막대하다고 전한다. 젤렌스키의 방미 직전에 우크라이나의 24기계화여단의 장교인 사샤는 영국 주간 <업저버>에 “그들은 우리 쪽으로 일군의 소규모 병력을 차례로 보낸다”며 “그 공격이 실패하면 그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또 시도한다”고 전했다. 바흐무트에서 하루 60~100명의 러시아 전사자가 나오나, 우크라이나 쪽도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BND)은 최근 의회에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에서 매일 세 자릿수의 인명 손실을 본다고 보고했다고 <슈피겔>이 2023년 1월20일 보도했다.

바흐무트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지금까지 전사자·부상자 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양쪽이 자기 손실은 축소하고 상대 손실은 과장하는 프로파간다를 펼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단서는 서방 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사실상 군사적으로 감독하는 미국의 마크 밀리 합참의장의 평가다. 밀리 의장은 2022년 11월9일 뉴욕경제클럽 강연에서 양쪽에서 각각 10만 명의 병사가 숨지거나 다쳤다고 밝혔다. 그동안 러시아 쪽 전상자가 훨씬 많다는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그는 특히 “협상의 기회가 있을 때, 평화를 이룰 수 있을 때 그것을 잡아야 한다”고 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전쟁이 계속되면 우크라이나가 궁지에 몰릴 수도 있으니 협상해야 한다는 촉구였다. 밀리 의장은 2023년 1월20일 독일의 람슈타인 미군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국 회의인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 그룹’(UDCG) 회의에서도 “군사적 관점에서 나는 올해 안에 러시아군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으로 전부 다 몰아내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다고 여전히 주장한다”며 우크라이나에서 끝없는 학살보다는 협상한 평화가 좋다고 말했다.

미 군부를 대표하는 최고위 인사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황이 그만큼 절박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병력과 무기 등 자원에서 한계에 봉착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할 때 보유한 1800문의 소련식 대포는 일찌감치 포탄이 소진돼, 350대의 서방 대포로 대체했다. 이 대포들도 서방의 재고 포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에서 155㎜ 포탄은 한 달에 고작 1만5천 발만 생산한다. 이 때문에 한국이 캐나다에 155㎜ 포탄을 매각한 뒤 이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하기도 했다.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의 강점은 상대적으로 많은 병력과 높은 전투 의지였다. 돈바스 내전에 단련돼 전투 의지가 충만한 민병대 등으로 충원한 14개의 새로운 여단이 서방이 지원한 무기로 무장하고 키이우나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는 반격에 성공했다. 이렇게 탈환한 지역은 새로 징집된 병력에 넘겨줬다. 하지만 러시아군 병력이 비교적 충분하던 헤르손 전투에서는 큰 병력 손실을 봤다.

2023년 1월1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남부 도시 드니프로의 고층 건물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된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습 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군의 민간인 아파트 단지 공격으로 최소 45명이 숨졌다. AP 연합뉴스

2023년 1월1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남부 도시 드니프로의 고층 건물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된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습 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군의 민간인 아파트 단지 공격으로 최소 45명이 숨졌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사력 한계… 서방 지원 절실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는 4300만 인구에 500만 명의 징집 자원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인구가 2천만~2700만 명으로 줄었다. 1430만 명이 국외로 피란 가고, 900만 명이 러시아계 주민이기 때문이다. 징집 자원은 최대 300만 명으로 줄었고 실질적으로 전투가 가능한 병력은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가 절대적인 전투 병력 부족에 직면한 셈이다.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가인 배리 포즌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에 실은 ‘러시아의 반등’이라는 기고에서 “전반적인 군사전략으로 보면 러시아가 더 영리해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이 전쟁이 계속되면 우크라이나는 2022년처럼 2023년에도 5만~10만 명의 전사자를 감내하며 서방에서 1천억달러의 경제군사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헤르손 철수로 전열을 정비하고 바흐무트 전선에서 우크라이나를 묶어두는 전술적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대대적인 공세로 전선을 돌파하기에는 여전히 병력이 부족하다. 전선을 돌파해 전진하는 부대들의 외곽 전선을 방어할 병력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동계 공세가 예상됐으나, 여전히 바흐무트 전선에서 소모전에 머무는 이유이다.

이제 관건은 춘계 공세의 고삐를 누가 쥘 것인가이다. 우크라이나에는 레오파르트1 전차 등 서방의 추가 지원이 얼마나 신속하고 실효적으로 진행되느냐가 사활적 문제다. 쉽지 않은 문제다. 서방의 공격용 중전차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100대 정도가 지원돼야 한다. 독일의 레오파르트2, 미국의 에이브럼스 전차를 100대 이상 지원하려면 일러야 2024년 초에나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서방 동맹국들이 보유한 기존 전차를 갹출해도 2023년 상반기 말에나 50여 대 지원이 가능하다.

협상만이 탈출구… 유리한 조건 확보 경쟁의 덫

러시아가 춘계 공세를 진행할 새로운 전선으로는 자포리자가 유력하다고 버시닌 등 군사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자포리자 인근 철도망은 러시아에 북쪽 공세를 위한 보급로 구실을 한다. 인근 파블로그라드를 점령하면 돈바스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을 뒤에서 공격하는 한편 보급선도 끊을 수 있다. 이 공세의 전제 조건은 새로 소집되는 30만 병력의 완전한 동원과 훈련이다. 또 소모전을 진행하려면 국내 군수업체를 완전히 재가동해야 한다. 서방의 제재가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더할 것이 분명해 군수 보급도 어려워질 것이다.

밀리 미 합참의장의 지적처럼 이 전쟁은 협상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누가 먼저 상대를 협상장에 나오도록 강제하는 유리한 상황을 만드냐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자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러시아를 협상장으로 끌어내려면 영토 회복이 아니라 러시아의 국내적 단결을 깨야 한다. 즉, 인명 손실을 키워서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내 여론을 잠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러시아는 소모전 전략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더 점령하고 협상장으로 우크라이나를 끌어낼 수 있다.

시간은 양쪽 모두에 양날의 칼이다. 단기적으로 러시아에 유리할 수 있으나 이는 서방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혁신하고 강화할 시기가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가면 러시아에 불리할 수 있으나, 그때까지 우크라이나가 버틸지 서방의 지원이 지속될지 불투명하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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