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꼴 안 보고 깔끔하게 죽고 싶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는 죽음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이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더러운 꼴’과 ‘깔끔한 죽음’은 어떻게 다른 걸까? 집에서 죽으면 깔끔하고, 요양병원에서 죽으면 더러운 꼴로 치부할 수 있는 걸까? 이 말에 담긴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프시케의숲 펴냄)는 송병기와 호스피스 의사 김호성이 죽음과 호스피스라는 열쇳말로 생의 마지막 돌봄과 의료의 문제에 대해 대담하고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호스피스는 20세기 초 영국 사회복지사이자 간호사, 의사인 시슬리 손더스(1918~2005)가 확립한 개념으로, 말기 환자의 ‘총체적 고통’을 다학제적으로 살펴 접근하는 실천을 가리킨다. 한국 호스피스 다학제팀은 보통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와 기타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다.
저자들은 호스피스의 공간, 음식, 말기 진단, 증상, 돌봄, 애도까지 6개 항목을 다룬다. 말기 환자는 단순히 아픈 사람이 아니라 질병을 경험하며 숨을 거두기까지 다른 삶의 서사를 쓰는 사람이다. 음식이 중요한 건 이 서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 사회 구성원이 음식을 못 먹게 되었을 때, 사회는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를 살피며 김호성은 스콧 니어링이나 선승처럼 곡기를 끊는 자발적 단식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다고 설명한다. 갈증, 섬망 같은 육체적 고통이 있고 의료진의 윤리적 죄책감 또한 적지 않은 탓이다. ‘말기 환자를 어떻게 끝까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물음으로, 한국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숙제처럼 다가온다.
집-요양원-요양병원-급성기 병원 사이를 ‘부유’하는 환자의 마지막 경로, 환자를 취약한 존재이자 탈역사적 존재로 만들고 가족이나 돌봄 제공자도 지쳐가는 돌봄의 구조, 결혼한 이성 부부 가족 중심의 연명의료결정법, ‘느린 안락사’처럼 보일 수도 있는 ‘완화적 진정’ 같은 문제도 검토한다. 환자의 통증과 남은 시간 동안 ‘의미’ 찾기에 관한 어려움도 전한다.
병원의 이윤극대화 추구와 환자의 첨단기술 선호가 맞물린 현장에서 돌봄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는 호스피스의 활성화도 불가능하다며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끝까지 사람답게 살기 위한 돌봄, 생에서 가장 취약한 순간에 대해 응답하는 책이다. 408쪽, 2만2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상속자들
피에르 부르디외, 장클로드 파스롱 지음, 이상길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1만8천원
1964년,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장클로드 파스롱이 프랑스 교육체계와 학생들의 사회적 위치를 분석한 책. 68혁명 당시 학생들이 겪던 불만과 모순을 정확히 포착했다. ‘상속’의 요체가 ‘문화적 유산’에 있다는 점에서 ‘젊은 부르디외’의 흔적을 살필 수 있고 능력주의의 허상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모순까지 발견할 수 있다.
돌봄노동: 친밀한 착취
알바 갓비 지음, 전경훈 옮김, 니케북스 펴냄, 2만원
흔히 돌봄에 따른 감정을 ‘사랑’이라 일컫지만 저자는 이를 착취라 보고 ‘노동’으로 간주한다. 감정은 재생산 노동의 핵심이고, 감정 재생산은 자본주의 생산노동을 유지하는 노동 형태를 포함한다. 감정노동, 사적 노동의 공공성과 가치를 주장하는 정확하고 후련한 분석. 비가시적 노동에 분통 터질 때 읽기 바람.
다시 만난 여성들
성지연 지음, 북인더갭 펴냄, 1만8천원
15세기 잔다르크, 20세기 베티 프리단처럼 앞서 살았던 여성들이나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 빨간 머리 앤, 김지영 등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 캐릭터를 새롭게 조명하고 발견했다. “사라지게 하려는 세력들과 싸우고”(리베카 솔닛),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 소통”(한나 아렌트)하려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예술과 암호-반구대의 고래
김혜련 지음, 열화당 펴냄, 4만원
암각화를 사랑한 화가 김혜련의 작품집. 먹 작업을 중심으로 울산 반구대암각화 속 고래들을 표현했다. 깊은 먹색과 ‘따뜻한 푸른색’으로 바다와 하늘, 역사와 현재 속을 유영하는 모습을 전달한다. 다른 나라의 암각화 드로잉, 탁본들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고래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을 재해석한 작품이 특히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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