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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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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문제가 되자 ‘혐오시설’은 이렇게 달라졌다

집에서 600m 떨어진 곳에 짓는 소각장, 착공 뒤에야 알게 된 주민
주민 공론화 거치자 고창군 18억원 들여 ‘저감 장치’ 등 마련
등록 2023-02-04 04:54 수정 2023-02-07 22:32
전북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중앙제어실에서 장기윤씨(왼쪽·전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와 윤종호씨(가운데·전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 집행위원), 강희종씨(전 고장군 소각장 운영팀장)가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전북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중앙제어실에서 장기윤씨(왼쪽·전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와 윤종호씨(가운데·전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 집행위원), 강희종씨(전 고장군 소각장 운영팀장)가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 2023년 1월

터미널과 군청이 있는 중심지를 지나자 금세 논밭과 낮은 산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들판과 언덕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사람 사는 집도 줄었다. 서해로 이어지는 강변길을 따라 달리다보니 작은 산 계곡 입구로 이어지는 다리가 나왔다. 그곳에 예순한 살의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몇 년 전 무언가를 막기 위해 수백 시간은 더 서 있었을 그곳에서 그는 파란색 트럭을 타고 올라가는 길을 안내했다.

차량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외길을 500m가량 쫓아 올랐다. 하늘만 보이던 시야 오른쪽으로 문득 철제 구조물로 둘러싸인 굴뚝이 보였다. 굴뚝 옆 건물이 완전히 시야에 들어올 때 쯤 차에서 내린 그가 대뜸 굴뚝을 보며 말했다. “지금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나잖아요. (백연) 저감 장치가 있어서 그래.” 담담하게 말하는 얼굴에 겨울바람이 부딪치자 주름이 미세하게 더 파였다. 그가 이 자리에서 ‘소각장’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던 그날도 겨울이었다. 그의 주름이 지금보다 조금 더 옅을 때였다.

분뇨처리장, 매립지, 소각장… 또 이 골짜기

# 2008년 12월

집에서 불과 약 600m 떨어진 그곳으로 향하면서도 장기윤은 계속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되뇌었다. 평소라면 얼씬도 하지 않는 곳이지만 오늘은 직접 눈으로 봐야 했다. 자꾸 들려오는 소문 때문이었다. “매립장에 소각장이 들어선다는구먼.” 최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지인이 많아졌지만, 이미 공사가 진행됐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군청에 있는 공무원 친구마저 말을 돌렸다. 현장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쓰레기만 묻혀 있어야 할 매립장 부지 안에 새로운 터가 보였다. 포클레인 한 대가 터를 닦고 있었다. 장기윤은 기사를 향해 대뜸 물었다. “이게 뭐요?” 포클레인 기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기사를 뒤로하고 현장 소장을 찾았다. 소장의 입에서 ‘소각장'이란 말이 나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윽고 한구석에 잠자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1999년, 분뇨처리장이 있던 곳 옆에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 전체가 들고일어나 싸웠다. 장기윤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주민 여럿이 구속될 정도로 격렬하던 싸움은 1년 넘게 이어졌다. 결국 매립장은 들어섰지만, 분명 그의 기억엔 최종 합의서에 소각장은 ‘절대로 짓지 않겠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던 소각장이 왜 20년 만에 지어지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또 이 골짜기라는 점이었다. 분뇨처리장이 있던 곳에 쓰레기매립장이, 매립장이 있던 곳에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서려 한다. 그는, 아이들마저 ‘똥통 동네'에 산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30대이던 장기윤이 쓰레기매립장 반대 싸움을 막 끝낸 2000년 12월, 고창군과 ‘농어촌폐기물 종합처리시설반대 아산면 대책위원회’(아산면 대책위원회)는 쓰레기매립장을 조성하고 10년 동안 사용하기로 협약했다. 향후 ‘소각장 설치는 절대 안 된다'라는 조항이 협약서에 들어갔다. 그 뒤 2003년부터 발생한 전북 고창군의 생활폐기물과 음식물쓰레기가 이곳에 묻혔다.

그렇게 매립지를 둘러싼 갈등의 기억은 장기윤의 머릿속에서 점차 옅어졌다. 그러나 10년이 다 돼갈 때쯤 물밑에선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고창군이 매립으로는 쓰레기 처리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소각시설을 지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소각장 착공을 알고 나서자 “장기윤이 피해라”

군은 2011년 이런 내용을 담아 ‘폐기물처리 기본계획’을 세웠고 이듬해부터 주민설명회에 나섰다. 2012년 7월 아산면 주민지원협의체를 상대로 설명회가 열렸다. 이장단 설명회와 주민공청회도 진행했다. 그러나 장기윤과 같은 일반 주민들은 알지 못했다. 이장이나 일부 대표자만 참여했다. 특히 소각시설 부지 반경 2㎞ 이내의 마을 주민들은 소식을 전혀 몰랐다. 아산면 주민지원협의체에 부지 2㎞ 내 마을 주민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탓이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폐촉법)상 쓰레기매립지의 간접 영향권은 매립지로부터 2㎞다. 그러나 아산면의 경우 2000년 협약할 때 아산면 전체(부지에서 최대 8㎞)가 영향권으로 지정됐다. 당시 고창군 농민회를 중심으로 아산면 주민들이 똘똘 뭉쳐 싸운 덕이다. 다만 그 싸움을 주도했던 이들이 대부분 매립지 2km 밖에 거주해, 이후 만들어진 주민지원협의체에도 자연스럽게 그들이 들어갔다.

‘행정상’으로는 주민설명회를 마친 군은 2013년 1월 ‘아산면 혐오시설 반대대책위원회'와 쓰레기매립장 사용 기간 연장과 소각시설 설치에 관한 협약을 했다. 2003년 협약한 ‘아산면 대책위원회’와 이름만 다른, 사실상 같은 단체였다. 위원장도 그대로였다. 매립지가 들어설 때 싸웠던 주민들이 대부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장기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스스로 ‘들러리’였다고 생각했다. 결국 군은 타당성조사 등을 거쳐 2019년 1월 소각시설 공사에 들어갔다. 그 착공 직전의 모습을 장기윤이 본 것이다.

처음 장기윤이 반대에 나섰을 땐 돕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직접 마을을 찾아다니며 소각시설이 들어선다고 말하기 전까지 소각시설 설치 사실을 모르던 사람이 많았다. 소각시설 설치를 알게 된 이들은 각종 모임과 선후배 관계를 이용해 마을 사람들을 회유했다. 한 지인은 장기윤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 “준성(가명)이가 나한테 와서 장기윤이 피하고 데모 참여하지 말라던디 어떻게 한당가?”

매립장이 가동한 2003년 이후 아산면으로 이사 온 이상훈과 윤종호가 소각시설 설치를 알게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일면식도 없이 자신을 찾아온 장기윤에게 이상훈은 이렇게 말했다. “돈 뜯어내자는 겁니까 진짜 싸워보려는 겁니까?” 장기윤이 답했다. “진짜 싸우려는 겁니다.”

이상훈과 윤종호가 보기에 매립장이 있는 곳에 또 소각시설을 짓는다는 것은 한 지역 주민들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측면에서 부당하게 여겨졌다. 소각시설 부지 2㎞ 바깥에 있는 주민들 위주로 구성된 단체에서 결정하고 이에 따른 보상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들은 장기윤과 함께 직접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소각시설 설치가 진행된다는 점을 알렸다. 2019년 2~3월 한 달 동안 약 1200명의 서명을 모았다. 아산면 인구 약 2500명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해 4월, 고청군청 앞 로터리에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졌다. 바리캉이 장기윤의 머리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었다. 그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이날 9명이 머리를 밀고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원회’ 출범을 알렸다. 장기윤이 집행위원장을, 이상훈이 대표를 맡았다. 이들은 소각시설 백지화 검토를 주장했다. 군은 실무협의체를 꾸려 주민들과 만났지만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장기윤과 이상훈 등이 군수였던 유기상까지 따로 만났지만,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간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군은 공사가 20% 넘게 진행된 만큼, 백지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2019년 4월18일 고창군청 앞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원회 출범식 모습. 맨 왼쪽에 서 있는 윤종호씨가 장기윤씨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반대대책위 제공

2019년 4월18일 고창군청 앞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원회 출범식 모습. 맨 왼쪽에 서 있는 윤종호씨가 장기윤씨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반대대책위 제공

‘공론화’ 위해 강의부터 듣기 시작

대안을 제시하라는 군의 주장에 이상훈은 ‘공론화'를 제안했다. 충남 서산시에서 2018년 자원회수시설 설치를 놓고 공론화위원회를 도입한 바 있었지만, 다소 생소한 제안에 군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군의회 의장이던 조규철이 나서서 중재했다. 그는 1999년 매립장이 들어올 때 군과 싸웠던 인물이다. 군의장까지 나서자 군도 공론화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반대대책위도, 군도 대부분 공론화가 뭔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양쪽은 일단 전문가를 불러 강의를 듣기로 했다. 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 소장이 공론화 전반에 관한 강의를 맡았다. 공론화 방식 설계부터 운영 전반을 맡을 사람으로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을 추천했다. 박태순은 반대대책위와 고창군 쪽 인물들을 만나본 뒤, 충분히 의미 있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군의 실무를 맡은 형광희는 다른 공무원과 달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 이상훈도 고집이 세지만 논쟁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본격적인 공론화 단계에 들어가기 전부터 모든 이해관계인이 참여해 과정을 설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박태순은 봤다. 2019년 8월부터 두 번의 준비모임과 네 차례 실무회의가 열렸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공사를 잠시 멈춰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에도 군이 소각로를 반입하자 주민들의 불만이 터진 것이었다.

“유감입니다.” 2019년 9월10일 부군수 정토진이 소각시설 부지로 가는 다리 초입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 말했다. 형식적인 사과 발언에 장기윤이 플라스틱 의자를 들어 땅에 팽개쳤다. 군수가 사과하겠다고 해 마이크까지 내준 그였다. 부군수가 온 것도 못마땅한데, 진심이 담긴 사과도 하지 않자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

이 사건 이후 열린 실무회의에서 군과 주민들은 공론화협의회가 진행되는 기간에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10월2일부터는 본격적인 공론화 협의회가 열렸다. 협의회엔 고창군과 인접지역 주민 대표, 주변지역 주민 대표, 고창군 주민 대표, 전문위원이 참석했다. 이상훈 등 반대대책위는 인접지역 주민 대표 몫으로 나갔다. 고창군에선 형광희가 나왔다.

이들은 시설의 필요성과 위치 선정의 타당성, 절차적 정당성 등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소각시설 관리 방안과 주민 지원에 관한 논의도 오갔다. 군청은 백지화 요구를 제외하곤 공론화 과정에서 나온 반대대책위의 의견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약 18억원을 추가로 들여 주민들이 원하는 안전설비를 설치하기로 했다. 15년간 운영하고 2030년부터는 새로운 부지를 찾겠다고도 했다.

매립장 조성 당시 아산면 전체로 설정됐던 영향권은 소각시설 부지 반경 2㎞ 9개 마을로 정하기로 했다. 주민지원협의체에도 2㎞ 이내의 주민이 절반 참여하기로 했다. 매립지와 소각시설에 더 가까이 사는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도록 구조가 바뀐 것이다. 45일 동안 진행된 협의회에서 나온 합의안을 놓고 아산면 주민 125명을 상대로 무작위 설문조사를 한 결과 51%(64명)가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는 34%(43명), 중립이 12%(15명)였다.

쓰레기 줄이는 노력도 합의서에 넣어 

# 다시, 2023년 1월

“그래서 보시면,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 배출가스 농도거든요. 여기 화면에 빨간 숫자가 정부에서 정한 기준인데 노란색이 지금 나오고 있는 숫자예요.” 2023년 1월27일, 소각시설을 찾은 장기윤과 윤종호 앞에서 2년 동안 소각시설을 관리해온 강희종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가 가리킨 화면엔 일산화탄소라는 글자 밑에 빨간색 숫자 200과 노란색 숫자 6.2가 떠 있었다. 질소산화물이라는 글자 밑에 빨간색 숫자 70과 노란색 숫자 2.1이 표시됐다.

“굴뚝은 30m가 기준인데 50m로 높였고, 질소산화물을 더 정화하려고 촉매환원탑을 추가했어요. 굴뚝으로 연기가 보이지 않는 건 백연 저감 설비를 추가로 설치해서 그렇고요.” 강희종이 말했다.

설명을 듣던 윤종호가 문득 말했다. “저감 시설 붙이면 좋죠. 우려한 것보다 저감도 됐어요. 그래도 여전히 주민들 입장에선 소각장이 아예 없는 게 당연히 좋지 않겠어요? 필요한 시설인 건 맞지만, 왜 이 지역에만 있어야 하냐는 거예요. 결국 소각장이 내 집 옆에 오는 순간에야 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우리 모두의 문제로 만드느냐가 핵심이죠.”

쓰레기를 모두의 문제로 만들기 위해 이들이 공론화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이 하나 더 있다. 고창군 자원순환 조례를 만들어 모두가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하자는 조항을 합의서에 넣은 것이다. “공론화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지만, 어쨌든 미래지향적인 합의였어요. 다른 지역의 합의엔 들어가지 않는 내용이 들어갔죠. 우리도 고통을 분담할 테니 미래를 위해 고창 군민도 함께 분담하자는 거예요.”(이상훈) 이 합의에 따라 자원순환 조례가 제정됐고, 2022년 2월 자원순환정책실천협의회가 만들어져 첫 회의를 했다.

평화의 유효기간은 15년

전북 고창군 아산면을 가로지르는 인천강이 있다. 강변의 734번 국도를 따라가다보면 계산리와 대동리에 걸쳐 있는 작은 산이 보인다. 지도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 조그마한 산을 인근 마을 주민들은 범복산이라 부른다. 연화교를 건너 연결된 외길을 따라 범복산을 오르다보면 능선에 가려져 있던 50m 높이의 굴뚝이 보인다. 그 옆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이 있다.

고창군에서 나오는 모든 생활쓰레기가 매일 이곳으로 온다. 오늘도 20t이 넘는 쓰레기가 이곳에서 연기도 없이 조용히 태워질 것이다. 그러나 반경 2㎞ 내 1천 명도 되지 않는 주민들은 안다. 이 평화의 유효기간은 15년이다.

고창(전북)=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참고 문헌

고창군청,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설치사업 관련 소각시설 공론화 추진과정 및 결과 보고’, 2020

아산면 행정복지센터,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설치사업 추진 경과 내역', 2020

아산주민지원협의체, ‘아산면주민지원협의체 현황’, 2021

사회갈등연구소,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공론화 보고서-사회갈등연구소', 2019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원회, ‘아산면 소각장 반대대책위원회 결산보고', 2020

고창군청,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공론화협의회 최종 합의서', 2020

고창군청, ‘공론화협의회 회의 회의록’,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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