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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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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의 기록적 폭우…대통령은 퇴근하며 물구경

폭우가 드러낸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출퇴근 리스크
등록 2022-08-13 12:47 수정 2022-08-14 02:21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10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10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141.5㎜. 2022년 8월8일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서울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랑스레 공약집에 썼던 ‘청와대 해체’라는 글자를 씻어 내렸다. 그리고 서두른 ‘청와대 해체’ 뒤 진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안보·재난 상황 때 대통령의 주거 공간과 집무실·상황실이 달라 빚어질 수 있는 불안과 위험 요소를 처음으로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날 대통령실은 이상기후로 발생한 재난 상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컨트롤타워로서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분주했을 터다. 그 와중에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위치와 동선, 주변 상황을 파악한 뒤 서초동 사저에서 집무실로 다시 복귀해야 할지 말지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윤 대통령 취임 100일(8월17일)도 안 돼, ‘청와대 해체’를 선언할 때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

8월8일, 윤 대통령은 일주일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했다. 이날 오전에는 ‘5살 초등학교 입학 등 학제 개편 논란’의 책임을 물어 박순애 교육부 장관을 경질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잘 살피겠다”고 말했다. 낮 12시에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오찬을 하고, 오후 3시에는 금융위원회 보고를 받았다. 그 뒤 윤 대통령은 서초동 사저로 퇴근했다. 정확한 퇴근 시간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퇴근할 때 시각이 몇 시입니까?”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8월10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저도 정확히 퇴근 시간은 체킹을 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제(8월8일) 피해가 가장 심했던 시간대가 (밤) 9시 전후로 집중호우가 내리지 않았나 이렇게 보이는데요. 그때는 우리 대통령께서도 사저에 계셨다.”

이날 기상청은 낮 12시50분을 기해 서울 동남·서남권에 호우경보를 발효했다. “호우경보는 3시간 강우량이 90㎜ 또는 12시간 강우량이 18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지며 침수 등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고 기상청은 경고했다.

호우경보가 발효된 가운데 윤 대통령은 집으로 퇴근했다. 8월9일 윤 대통령은 전날 상황에 대해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벌써 침수가 시작됐더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에 하루 동안 역대 최고 일강수량인 381.5㎜의 폭우가 쏟아지며 아파트들이 침수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집으로 그대로 향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의 첫 지시는 8월8일 자정이 가까워서야 나왔다. 윤 대통령이 위기관리센터로 가지 않고 서초동에 있는 고층 아파트 사저에서 낸 지시였다. 윤 대통령은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은 상황에 맞춰 출근시간 조정을 적극 시행하고, 민간기관과 단체는 출근시간 조정을 적극 독려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급경사지 유실 등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험지역에 대한 사전 주민 대피 등 각별한 대책을 강구할 것을 긴급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자택에서 오후 9시~새벽 3시까지 실시간 보고

윤 대통령은 다음날인 8월9일 오전 9시30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예정에 없이 찾았다. 밤새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일가족 3명이 집이 침수돼 숨지는 등 인명피해가 커지자 부랴부랴 집중호우 대처 관계기관 긴급점검회의를 연 것이다.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의 대처에 논란이 커지자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데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8일) 오후 9시부터 (9일) 새벽 3시까지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지침 및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새벽 6시부터 보고받으셨고 긴급 대책회의를 열자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밤새 서초동 자택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전화로 이야기하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마친 뒤 일가족 3명이 숨진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 현장을 직접 찾았다. 윤 대통령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태영 서울소방재난본부장 등과 현장을 둘러봤다.

윤 대통령과 최 본부장은 창문을 통해 반지하방을 내려다봤다.

윤 대통령 “몇 시예요, 사고가 일어난 게?”

최 본부장 “22시쯤에.”

윤 대통령 “아, 주무시다 그랬구나.”

그러나 언론 보도와 이웃들의 증언 등을 종합하면, 이들은 당시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발달장애인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 딸과 함께 있던 홍아무개씨는 병원에 입원 중인 어머니 이아무개씨에게 저녁 8시37분께 전화해 “엄마, 물살에 (열려 있던) 현관문이 닫혀버렸는데 수압 때문에 안 열려”라고 울먹였다고 한다(<중앙일보> 8월10일 보도). 이들은 119에 수차례 전화했지만 당시 신고접수가 몰린 119와 통화하는 데 실패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옆집(반지하) 창문 앞으로 이동해 다시 쪼그려 앉았다. 이 집의 가족은 당시 빗물이 들이닥치자 탈출해 목숨을 구했다.

최 본부장 “여기 같은 경우에는 물이 차면 문을 못 열기 때문에….”

윤 대통령 “여기 자체가 신림동 고지대면 괜찮은데, 지하라도. 여기는 저지대이다보니까 도림천이 범람되면 수위가 올라가면 여기가 바로 직격탄을 맞는구나. 아니, 어제 (폭우 규모가) 엄청난 것이 서초동에 제가 사는 아파트가 전체적으로는 좀 언덕에 있는 아파트인데도 거기가 1층에 물이 들어와가지고 침수될 정도이니,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요.”

국가위기관리센터로 가야 하는 이유

대통령실에는 국가위기관리센터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안보·재난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도록 센터를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비상경제상황실로 기능이 바뀌기도 했고, 박근혜 정부에선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센터가 제구실을 못했다고 비판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북핵 위협과 산불·수해 재난 때 역할을 했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센터도 대통령 집무실과 함께 용산으로 옮겼다. 센터는 240여 개 시·군·구 등 지자체와 화상회의 등을 할 수 있고 현장에 나간 장관과도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대통령이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결정을 주도할 수 있게 해놓은 시설이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대통령이 국가위기관리센터로 가야 하는 건 현장에 여러 부처와 기관들이 모여 있을 때 누가 통제권을 잡고 일해야 하는지 정리해줘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모든 정보가 취합되는 센터를 활용해야지 집에서 전화로 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시스템이 굴러가기 위해선 센터와 국정상황실의 보고가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에 보면 위기 대응에 대한 경험과 시스템이 부재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안보 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북한 미사일 등 전통적 안보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등 포괄적인 안보 대응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관저와 상황실이 분리된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김 전 의원은 “대통령실과 관저를 옮겨도 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모두 15분 거리 이내에 있어 어떤 재난이 일어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는데 (8일에는) 못 갔다. 도대체 어느 나라 지도자가 비가 와서 발이 묶이고 갇혔다고 할 수 있냐”고 말했다. “일본도 총리 집무실이 아닌 관저 지하에 위기관리 상황실을 설치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재난에 대응하니 국민은 이 정권이 불안해 보인다.”

대통령실 쪽은 사저 주변 도로가 침수되는 상황이었지만 경호상 문제로 집을 나서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8월9일 ‘윤 대통령이 상황실로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가셔야 할 상황이면 가시는 것이고, 어제 상황은 안 가도 될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서 “(대통령실) 내부에도 공식적이고 책임 있는 조직이 있고 여러 참모와 직접 소통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새 관저로 이사해도 마찬가지

관저와 상황실이 붙어 있지 않다는 취약점은 윤 대통령이 새 관저인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이사해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의 출퇴근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윤 대통령이 취임을 10여 일 앞둔 4월25일에 관저 위치를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꾸면서 입주 시기가 늦어졌다. 당시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는 “외교부 장관 공관은 5월10일(윤 대통령 취임일) 이후에 손을 대더라도 육참총장 공관을 지금부터 (공사)하는 것보다 훨씬 기간이 적게 걸린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은 아직도 서초동 사저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8월9일 사저에서 전화 보고를 받는 대신 밤늦게까지 대통령실을 지켰다. 밤 9시30분께 한덕수 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집중호우 상황 점검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한 뒤 밤 10시10분께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안보·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받고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김이수·이진성 헌법재판관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에 대해 이같은 보충의견을 냈다. “관저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휴식과 개인생활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므로 그곳에서의 근무는 직무를 위한 모든 인적 물적 시설이 완비된 집무실에서의 근무와 업무의 효율, 보고 및 지시의 용이성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8일 밤 국가위기관리센터로 가지 않았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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