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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 잇는 사람들

이길보라 감독 등 ‘코다’ 3명과 함께 이야기한 영화 <코다>와 현실 속 코다

제1408호
등록 : 2022-04-09 01:04 수정 : 2022-04-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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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코다>의 한 장면. 이 영화는 2022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등 3관왕에 올랐다. 판시네마 제공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사람들, 코다.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는 농인(청각장애로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 부모의 청인(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 자녀를 말한다. 코다는 농인 부모로부터 수어를 습득하고 학교와 사회로부터 음성언어를 접하며 자란다. 수어와 음성언어, 서로 다른 문화를 넘나드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다.

본인이 ‘코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있을 정도로 국내에선 ‘코다’가 생소한 개념이지만, 최근 영화 <코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으면서 코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영화 <코다>는 가족 내 유일한 청인인 루비가 우연히 합창단에서 노래하다가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 없이는 통역 등 어려움을 겪을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을 그린다. 농인인 루비의 부모와 오빠 역은 실제 청각장애가 있는 배우들이 연기했다. 영화에서 중요한 소통 수단은 음성언어가 아니라 수어다. 루비 가족끼리 대화하는 장면에선 배우들 모두 수어를 사용했다.

농인 배우들의 신나는 수어 연기
2022년 4월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길보라(32) 영화감독·작가, 조미혜(37) 수어 강사, 장현정(30) 코다코리아 활동가를 함께 만나 영화 <코다>와 실제 코다의 삶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 사람 모두 코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농인은 약 40만 명이다. 하지만 코다의 정확한 규모가 파악된 적은 없다. 2014년 한국의 코다들이 모여서 만든 코다코리아에서는 국내의 코다가 40만 명에 이를 거라고 추산한다. 현재 코다코리아 회원은 8명이다. 이들은 강연 등을 통해 코다를 알리고 북콘서트와 영화 상영회 등으로 코다들 사이에 교류의 장을 만들고 있다.

영화 <코다> 어땠나.

조미혜 “처음에 남편이랑 같이 봤는데, 코다가 아닌 남편은 ‘당신이 이런 일을 겪었겠구나’ 하며 나를 이해해주더라. 부모님은 실제 농인 배우들이 수어를 신나게 하는 장면을 좋아했다.”

이길보라 “우리 부모님 반응도 똑같았다. 그동안 농인이 아닌 배우가 농인 연기를 할 땐 수어가 실감 나지 않았는데 이번엔 속 시원했다고 했다. 다만 코다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코다가 아닌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장현정 “음악을 계속할지 고민하는 루비의 마음이 이해됐다. 어려서 학예회에 나가서 악기를 연주할 때면 기분이 이상했다.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엄마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철이 빨리 들어서 부모님에게 이야기도 꺼내지 않고 일찍 접었다.”

왼쪽부터 이길보라(32) 영화감독·작가, 조미혜(37) 수어 강사, 장현정(30) 코다코리아 활동가. 박승화 기자

귀 대신 눈으로 듣는 음악 공연
루비가 음악 레슨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엄마가 레슨을 빠지고 가족이 출연하는 방송사 인터뷰 통역을 도우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코다에게 통역은 일상일 것 같다.

이길보라 “어릴 때부터 부모님 통역은 일상이었다. 자녀가 없어서 통역을 부탁할 수 없는 부모님 친구 통역까지 대신한 적도 있다. 이혼 관련 문제였는데 내가 통역했다. 그땐 부모님 일이 아니라서 통역사의 마음으로 하면 그만이었는데 우리 부모님 일이면 힘들 때가 많다. 전세나 대출이라는 개념이 뭔지도 모를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전화해서 그런 내용도 통역했다.”

조미혜 “영화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가족들이 루비 없이 일하러 나갔다가 억울하게 벌금을 내는 장면이 있다. 가족들이 루비를 원망해서 마음이 아팠다. 루비도 죄책감이 들고 속상할 것이다. 나는 청인 오빠가 두 명 있지만 오빠들은 수어를 나만큼 잘하지 못해서 내가 통역하는 것이 당연시돼 속상할 때가 있다. 이 영화를 본 이후 엄마는 내가 통역하러 갈 때마다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장현정 “회사 다닐 땐 조퇴하거나 휴가 내고 통역하러 간 적도 많다. 콜센터에서 수어 상담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부모 대신 전화하는 자녀를 보면 어릴 때 내 모습이 생각났다.”

이길보라 “보호자가 필요한 시기엔 내가 나를 인증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통신 등의 요금제를 바꾸려 해도 부모님 동의가 필요했다. 결국 학교를 조퇴하고 부모님도 일을 쉬고 대리점에 가서 바꿀 수 있었다. 남들은 전화 한 통이면 될 일이 시간도, 발품도 두 배로 들었다.”

장현정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주민등록증만 보여주면 보호자 없이도 나를 인증할 수 있으니까.”

루비의 공연이 있던 날, 가족들은 객석에 자리해 공연을 본다. 하지만 가족들은 수어로 저녁 메뉴를 이야기할 정도로 이 시간이 지루할 뿐이다. 그러다 루비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음악 소리가 뚝 끊긴다. 실제론 노래를 부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눈으로만 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 이처럼 영화는 관객이 농인 입장이 될 기회를 준다. 루비가 노래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박수 치는 청중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가족들은 비로소 루비가 노래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농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잠시나마 알게 됐다.​

장현정 “평소에도 소리를 다 끄고 텔레비전을 볼 때가 많은데 오히려 집중이 더 잘되기도 한다. 소리를 많이 들으면 피곤하다. 이 장면을 통해 청인이 농인의 세계를 알게 된 것 같아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이길보라 “<코다>는 음악 영화이기도 한데 그 중요한 음악을 중간에 꺼버리는 시도가 청인 감독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농인의 세상을 잘 보여주는 방법으로 되게 유효했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결정이었을 거다.”

수어 교육 지원은 가닿지 않는 말일 뿐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 제12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농인 등의 가족을 위한 한국수어 교육과 상담, 관련 서비스 등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코다들은 이 규정이 말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코다가 수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그저 가족 안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다.

수어 교육을 어떻게 받았나.

조미혜 “어릴 때 삼 남매가 소리를 끄고 텔레비전을 봤다. 외숙모가 그 모습을 보고 볼륨을 어느 정도 키워야 할지 정해줬다. 부모님이 의지를 갖고 수어를 가르친 적은 없고 내가 궁금해했다. 나 빼놓고 무슨 이야기 해? 물어보면서 배웠다.”

장현정 “이모도 농인이라 집안에 코다인 사촌이 9명 있고 수어를 잘한다. 어디 가서 지루할 때면 수어로 남몰래 이야기하는데 사촌들 앞에선 그럴 수가 없다(웃음). 우리 집안에선 수어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인데 청인 앞에선 이상한 일이 되는 것 때문에 괴리감을 느꼈다.”

농인 육아의 편견 때문에 한집에서 같이 살지 못하는 가족도 많다고 들었다. 코다 중에 수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은 부모와 간단한 대화 외에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조미혜 “수어를 못해서 부모와 대화를 못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본다. 코다 중엔 수어를 배우기 싫어하는 이도 있다. 사회의 편견 때문일 거다. 자식을 낳아보니 소통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나는 주위 코다들에게 수어를 배우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다닌다.”

이길보라 “농인 부모와 자라면 발달이 늦고 말을 못 배운다는 생각 때문에 할머니나 친척이 키우는 경우를 주위에서 봤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수어를 배울 기회가 없다. 코다를 위한 수어 교육이 필요하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둘러싼 혐오에 마음이 복잡할 듯하다. 코다에게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어떤 의미인가.

조미혜 “농인은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농인은 안 들리기 때문에 운전을 못할 거라고 하지만 그만큼 시각적으로 예민하다. 우리 아버지도 당시 시위에 참여했고 지금은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청인은 운전할 수 있고 농인은 운전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장애인 이동권과 같은 맥락이다.”

장현정 “농인은 이동권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결국 수단으로서 정보 접근권의 문제라고 본다. 국민을 위한 교통수단인데 누군가는 접근할 수 있고 누군가는 접근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차별 아닌가. 단순히 출근길의 불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고 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후천적 장애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 부모님도 열병을 앓아 후천적으로 농인이 됐다. 내가 당장 사고가 나서 휠체어를 탄다고 생각하면 달리 보일 것이다.”

이길보라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자 다른 몸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이 사회에서 연립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4월 마지막 일요일은 ‘엄마 아빠 농인의 날’
청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조미혜 “관공서나 병원에 부모님과 같이 가서 안 들린다고 얘기해도 계속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말을 크게 하거나 입 모양을 크게 하면 들린다고 생각한다. 필담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수어가 많이 노출돼서 누군가 수어를 해도 이상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환영해줬으면 좋겠다. 또 농인이 내는 소리(데프보이스)를 청인들이 괴물 소리처럼 생각하는 것이 불편하다. 농인의 문화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길보라 “부모님의 데프보이스는 코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다. 우리한테는 언어인데 남들은 이를 멸시한다.”

장현정 “농인이라고 말하면 장애 단계를 묻거나 들리진 않아도 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매번 부모님을 증명하는 일이 피로하다. 농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등 교육이 필요하다.”

향후 코다코리아의 활동 계획은.

장현정 “매년 4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 ‘엄마 아빠 농인의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코다입니다> 북토크도 하고 관련 영상도 게시할 예정이다. 9월엔 아시아 지역 코다 당사자들이 함께 모이는 ‘아시안 코다 콘퍼런스’를 온라인으로 열 예정이다. 또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코다인터내셔널’이 매년 개최하는 ‘코다 국제 콘퍼런스’를 유치하는 데 성공해 2023년 6월 국내에서 열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30여 나라에서 코다가 300~400명 참석할 예정이다.”

이길보라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일을 계속해나가고 싶다. 또 코다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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