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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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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엘리베이터는 장애인 전용?

유니버설 디자인,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한 시설이면 누구나 사용하기 편하다
등록 2021-12-02 21:01 수정 2021-12-03 02:51
2018년 8월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건이 발생한 뒤, 장애인 활동가들이 사과와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18년 8월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건이 발생한 뒤, 장애인 활동가들이 사과와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배리어프리(Barrier Free)가 무엇인지 아세요?”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답한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고 물으면 “경사로 설치”라고 말한다. 맞다. 고령자나 장애인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 배리어프리다.

다음 질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무엇인지 아세요?” 들어는 봤는데 정확히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가장 많다. 들어본 이들에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고 물으면 이번에도 “경사로 설치?”라고 말한다. 말끝에 물음표가 붙는다. 허허, 자신감을 가지시라. 맞다. 경사로 설치가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계단 오르는 것뿐인데 사이렌에 음악까지

똑같은 경사로를 두고 어떤 건 배리어프리고 어떤 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니 두 개가 같은 건가? 아니다. 다르다. 오늘은 두 개념의 차이를 알아보려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제품이나 시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이나 나이, 장애나 언어 등으로 제약받지 않게 보편적인 설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대표하는 말인데 대상층이 한정된 배리어프리보다 한층 더 확대된 개념이다.

구체적 사례로 들어가보자.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좋은 예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전에 휠체어 이용자는 리프트를 이용해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 옆 한쪽에 레일처럼 설치된 리프트. 네모판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리프트. 그마저도 혼자 탈 수 없어 승무원 호출벨을 눌러야 이용 가능한 리프트. 공익근무요원을 기다려 리프트에 오르지만 덜컹덜컹 덜컹덜컹. 흔들림이 장난 아니다. 심지어 수평이 맞지도 않아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 굴러떨어지면 큰일. 온 신경을 집중해 휠체어가 중심을 잡도록 바짝 애쓴다. 그냥 갈 길을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것뿐인데 무슨 경사라도 났다고 사이렌과 함께 음악까지 틀어준다. “띠리 띠~리리 띠리띠리리~.” 단지 외출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 결국 사고가 터진다. 리프트에서 휠체어가 구르는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장애인 이동권 요구가 빗발쳤고, 지하철 각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를 지닌 시설이 지하철 엘리베이터다. 우리가 잘 아는 배리어프리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엘리베이터, 장애인만 이용하지 않는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전유물이 됐고 유아차를 모는 부부나 여행가방 등 캐리어를 끄는 젊은이, 깁스한 중년이나 늦은 퇴근길에 너무 지친 직장인 등 모두가 이용하는 당연한 수단이 됐다. 배리어프리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유니버설 디자인 기능을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엘리베이터

그 기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한 시설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사용하기 편하다. 굳이 장애인을 위해서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다. 정작 장애인을 위한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눠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장애인을 동떨어진 존재로 대상화할 필요가 없다.

얼마 전 KTX를 타고 지방을 다녀왔다. 밤늦게 서울역에 도착하니 몸이 녹초가 됐다. 터벅터벅 기차에서 내려 계단으로 갔는데 아뿔싸! 계단 옆 하나만 가동되는 에스컬레이터가 하향선이다. 내려오는 방향으로 작동 중이다.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이 계단 앞에서 갈등하는 게 보였다. 결국 그중 많은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찾아 걸었고, 구두 신고 녹초가 된 나도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 발견. “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을 위한 것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주변에 장애인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니요, 아니랍니다. 서울역장님. 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엘리베이터랍니다.” 엘리베이터는 모두를 위한 당연한 편의시설이 돼야 한다. 배리어프리가 아닌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보편화될 수 있다. 그래야 모두를 위한 복지가 될 수 있다.

2021년 10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도 서울시 예산안에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 이동권 관련 예산을 모조리 삭감했다가, 장애계의 거센 항의를 받고 뒤늦게 수정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발생한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절실한 소수보단 다수의 복지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예산 결정권자들은 언제나 ‘상대적 소수’라 생각하는 장애인 복지예산을 삭감하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그런데 유니버설 디자인 측면으로 생각을 바꾸면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삭감해야 할 장애인 복지예산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복지예산이 된다. 저상버스도, 경사로도, 안전 손잡이도, 자동문도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서울시 예산 삭감과 관련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한동안 많은 게시물이 쏟아졌다. 장애인의 엘리베이터가 아닌, 모두의 엘리베이터를 장애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히 대환영이다. ‘장애인’ 딱지를 붙여 너희끼리 따로 놀아라~ 하는 세상의 장애 인식에 상처받은 이들은 그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잘 안다. 배리어프리가 아닌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모두의 인식이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휠체어 앞 새치기하는 사람

아, 내가 보고 허탈한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던 한 휠체어 이용자의 말을 전한다. 모두의 엘리베이터 좋다. 다 좋은데 제발 휠체어가 탈 때 새치기만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덩치 큰 휠체어가 타면 다음 엘리베이터에 타야 할까봐 얼른 새치기해 정작 휠체어를 못 타게 하는 얌체족이 많다고 한다. 에효, 영화 <생활의 발견> 명대사를 슬그머니 꺼내본다.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네?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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