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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목도 없이 ‘지옥’으로 내몰린 청소년들

오토바이 배달일에, 어른이 던진 무례한 말에 몸도 마음도 상처
등록 2021-09-14 10:46 수정 2021-09-17 01:18
배달 주문을 확인하고 있는 한 청소년 노동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배달 주문을 확인하고 있는 한 청소년 노동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노회찬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① 평택항 이선호 친구 이용탁씨

②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동료 이준석 지회장

③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 하창민

④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청년노동자들

⑤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의 강송구·박용식씨

⑥ 학교 밖 청소년 배움터 ‘일하는학교’의 이정현씨

이정현(44)씨는 23살에 학교 밖 청소년을 처음 만났다. ‘아저씨, 아줌마’를 가르치던 서울 중구 황학동 신당야학에서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어른 사이에 ‘어린 친구’ 몇 명이 끼어 있었다. 구두 닦는 일을 하거나 작은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청소년이었다.

야학 활동은 청소년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때 대안학교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학교 밖 학교 같은 것이었다. 교육대학원 졸업 뒤 경기도 성남 디딤돌학교에서 ‘선생 노릇’을 시작했다. 그곳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학교였다. 신당야학에서 품었던 바람, 어린 친구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면 좋겠다던 바람이 그곳에서 이뤄졌다.

“제도권 학교와 달리 재미있는 교육을 하는 곳일 거라 기대했어요. 근데 시간표가 있어도 수업이라는 게 거의 이뤄지지 않았죠. 말이 학교지 학생 반 이상이 학교에 못 오거나 안 오거나 했어요. 데리러 가기도 했고 밖에서 만나기도 했죠.”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도 ‘학교’가 필요해

‘학교가 왜 있는 거지?’ 학교 밖에서 학생들을 만나다보니 이런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교육이란 건 학생과 선생이 일단 만나야 가능한 것이었다. 학교 밖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만나니 교육에 대한 고민은 새로워졌다. 학교는 학생과 선생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이었다. 거기서 학교 밖 10대 아이들은 안정감을 찾는 듯했다.

아이들은 성장했고 학교를 마칠 때를 맞았다. 이들은 20대 청년이 돼 다시 학교 밖으로 나갔다. 그들 삶에 주어진 과제는 10대 때와는 무척 달랐다. 취업해야 했다. 삶은 일자리를 바탕으로 꾸려가는 것이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갖춰진 일자리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내세울 학력이 없었고, 자신을 지지하는 가족도 없었다.

일터에서 많은 걸 배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큰 회사에 가지 못해도 삶을 알차게 만들어갔다. 식당일이든 배달일이든 뭘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일터를 학교 삼아 배움을 얻을 어른과 마음을 나눌 친구를 만났다. 하지만 그런 일터를 찾지 못한 아이도 많았다. 여러 아이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 버티는 것도 힘들어했다.

2013년 2월 일하는학교 창립총회가 열렸다. 학교 밖 청소년으로 자란 청년, 부모나 가족의 경제적 도움이 없이 살아가는 청년, 2~3개월짜리 ‘알바’만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청년, 자신의 여러 문제에 관해 의논할 어른이 없는 청년에게도 학교가 필요했다. 일머리가 없다고 윽박지르고, 손놀림이 둔하다고 성내는 어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몰라 고시원 3평짜리 자기 방으로 숨어드는 청년이 많았다. 이들에게는 ‘비빌 언덕’ 같은 곳이 절실했다.

작은 병을 큰 병으로 키우는 이유

“산재는 생활의 위기와 결합한 경우가 많아요. 알바로 달에 100만원 남짓 벌어 생활하다가 일이 끊기면 빚이 생기거든요. 주거비, 식비, 통신비 다 하면 월 100만원은 나가니까요. 한두 달 일을 못하면 채무가 생기죠. 근데 채무도 정상적인 게 아니라서 한 달에 100만~200만원 벌어서는 해결이 안 돼요. 고수익을 바라면서 배달 오토바이를 몰거나 야간 물류센터 같은 데서 일하게 되는데, 무리할 수밖에 없죠.”

배달일은 배달 건별로 수익을 내는 구조이고, 주문이 몰리는 시간이 대략 정해져 있는 시장이다. 시간을 다툴수록 벌이가 커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라이더는 여러 배달 건을 잡아 오토바이에 오르는 일이 잦다. 이미 진 채무도 있고 오토바이 렌털료까지 만회해야 하니 마음은 늘 배달에 쫓긴다. 신호를 지키지 않는 일, 교차로를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일, 차도와 인도를 오가며 질주하는 일을 스스로 경계하지 못하는 건 그가 짊어진 생활의 위기가 몹시 크기 때문이다.

“일하다보면 어깨나 허리가 아플 수 있는데 병원에 가질 않아요. 몇천원 병원비도 아까운 거죠. 부모나 가족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보냈겠죠. 하지만 혼자 있으니까. 생활이 어렵고 게다가 고립돼 있기까지 하니 그렇게 병을 키워요.”

물류센터 야간 분류업은 인력사무실을 통해 얻는다. 하루 벌이를 하는 시장이지만 사람이 많이 필요할 때 일을 쉬면 사무실은 다음부터 일을 주지 않는다.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사람으로 관리돼야만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어제 절임배추 상자를 옮기느라 허리에 ‘대미지’가 쌓였어도 오늘 일을 나가야 한다. 쉬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 작은 병을 큰 병으로 키우는 이유는, 자기 몸을 관리할 권리와 기회가 박탈돼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하다 사고가 나고 병을 얻어도 이것을 산재라는 개념으로 다루는 일은 어렵다.

자신을 탓하는 청년의 아픈 마음

한 청년이 3년 동안 일하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는 점심시간을 무척 힘들어했다. 일은 “어떻게든 땅만 보고 하면 되는” 사무적인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밥을 먹는 일이 “지옥 같았다”. 어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배우지 못한 탓이라 스스로 여겼다. 직장에서 ‘어른’을 피하면 “사회성이 왜 이렇게 없냐, 젊은 애가” 같은 핀잔을 들어야 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도, 아빠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화내는 일도 모두 자기 탓으로 생각하며 자랐다. 네 탓이 아니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었지만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직장에서 ‘어른’이 던진 말은, 사실은 청년에게 무례한 말이었지만 청년의 마음은 자신을 탓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세상에는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면 상대를 가해하는 ‘어른’이 너무 많았다.

“요새 많이 접하는 거는 정신과적인 문제예요. 저는 그게 산재 같은데, 인정받는 건 어렵다고 들었어요. 단시간에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성장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배경으로 있다는 거죠. 하지만 분명히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한 곳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일하는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말이에요.”

이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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