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충치치료 받을 때 전신마취를

이마 상처 치료하며 ‘치료 취약군’임을 새삼 자각했는데, 발달장애인 중 의무접종은 정부 지원 시설 종사자뿐
등록 2021-06-19 09:46 수정 2021-07-01 08:01
2020년 동환이 이마가 찢어져 치료받는 모습. 이후 동환이 치료 취약군인 걸 새삼 자각했다. 류승연 제공

2020년 동환이 이마가 찢어져 치료받는 모습. 이후 동환이 치료 취약군인 걸 새삼 자각했다. 류승연 제공

얀센 잔여백신을 맞았다. 남편과 나는 하루 차이로 접종을 완료했다. 운이 좋았다. 주변에서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 “빠른 손가락”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잔여백신 알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휴대전화 잠금화면도 풀어놓았다. 잠금화면을 푸느라 소요되는 1초 동안 예약 성공 여부가 갈리기를 여러 번 경험한 뒤부터 그랬다.

신체 건강한 40대 남녀가 백신을 서둘러 맞으려 애쓴 이유는 우리만 먼저 살겠다는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 발달장애 아들이 ‘치료 취약군’이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코로나19에 걸리면 일이 커진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하려면 부모인 우리가 서둘러 백신을 맞는 수밖에 없었다.

내 비명과 아들의 절규, 의료진의 고함

아들이 코로나19 검사 대상자라는 연락이 왔다. 아들은 지난해 코로나19 검사를 두 번 받았는데 올해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안심하고 있었다. 교사와 치료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등 아들과 관계 맺는 모두가 백신 우선접종 대상이었다. 안전한 환경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각지대가 있었으니 바로 가정이었다.

학생 한 명이 코로나19에 걸렸다고 했다. 가족 내 감염이었다. 아무리 외부 환경이 백신으로 무장돼 있어도 정작 가정이 백신 사각지대에 있다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안전은 무용지물임을 보여준 일이었다. 학교에 선별진료소가 설치됐고 110명에 이르는 학교 관계자가 검사받았다. 모두 음성이 나왔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이 심란했다. 코로나19가 무서운 게 아니라 코로나19에 걸린 뒤 치료를 못 받을 상황이 무서웠다. 왜 치료받지 못하냐고? 이어지는 다음 같은 상황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들과 내가 살아가는 보통의 ‘삶’이기 때문이다.

2020년 여름,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스스로 머리를 박아 이마가 찢어졌다고 했다. 구급차가 왔는데 타려고 하지 않는단다. 내가 데리러 가서야 아들은 구급차에 올랐다.

병원에 도착했다. 일단 소독부터 해야 했다. 하지만 아들은 모든 진료를 거부했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이마가 아파 죽겠는데 모르는 아저씨가 따가운 소독약으로 아픈 부위를 더 아프게 하니까 아들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이마를 감싸버렸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 지르며 손을 붙들자 더 겁에 질린 아이는 필사적으로 자리를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결국 내가 신발을 벗고 아들이 누운 침대 위에 올랐다. 아들 위에 엎어져 온몸으로 누르자 간호사 3명이 달려와 아들의 양팔과 다리를 잡았다. 또 다른 간호사가 아들 머리를 고정한 뒤에야 의사는 피로 범벅이 된 상처를 소독약으로 닦을 수 있었다. 아들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자신이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다. 비명을 지르며 내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머리카락을 한 움큼 뜯어냈다. 응급실엔 내가 지르는 비명과 아들의 절규, 의료진의 고함이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영원과 같던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드디어 끝났다. 하지만 겨우 소독만 끝냈을 뿐이다. 치료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나만큼이나 지친 의사와 간호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링거 바늘 하나 꽂는 데도 억만 겁의 시간

“재워서 하시죠”라는 내 말에, 의사는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작 이마 상처 하나 꿰매는데 전신마취하는 경우를 본 적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 애들이 그래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치료에 협조적이지 않기 때문에 충치 하나를 치료할 때도 전신마취하곤 해요.”

이 소동을 겪은 뒤 의사는 아들을 재워서 치료하기로 했다. 그런데 재우는 것도 문제다. 팔에 링거 바늘을 꽂아야 하는데 링거가 뭔지, 왜 바늘을 찌르는지, 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는 얌전히 팔을 내주지 않는다. 다시 또 시작이다. 내가 아들 위로 올라타고 사람들이 붙들고 비명과 고함이 오가는데, 의사도 간호사도 바늘이 들어갈 혈관을 찾아내지 못한다. 오른팔, 왼팔, 왼발, 오른발을 오가며 바늘을 찔러대지만 신생아 때부터 여러 검사에 노출됐던 아이 혈관은 이미 안으로 숨어버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재우기 위한 링거 바늘 하나를 꽂는 데만도 억만 겁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아들은 눈물을 도르르 흘리며 잠이 들었다. 이날 아들은 이마를 열한 바늘 꿰맸고 잠에서 깬 순간부터 링거 바늘을 빼려 했으며 틈만 나면 이마에 붙인 반창고를 잡아 뜯었다.

아들이 ‘치료 취약군’이라는 건 이런 의미다. 만일 코로나19에 걸려도 아들은 코로나19가 뭔지, 왜 링거를 맞는지, 왜 집이 아닌 병원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 못할 것이다. 곱게 치료받고 싹 나아 퇴원하기 힘들 것이다. 실제 성인 발달장애인 중에는 암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치료를 못 받는 여건이어서가 아니라 치료할 수 없어 죽음에 이르곤 한다.

이런 현실이지만 발달장애인에 대한 방역 대책은 미진하기만 하다. 정부 지원 시설에 종사하는 30살 이상 발달장애인만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 하지만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 ‘발달장애인 백신 우선접종 요청서’를 보내는 등 각계의 노력이 이어져 성인 발달장애인에 대한 백신 접종은 앞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한발 더 나가길

나는 한발 더 나가길 요청한다. 발달장애인의 직계가족도 백신 우선접종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아무리 주변 사람과 당사자가 백신으로 무장돼 있어도 정작 가족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면 무용지물이다. 코로나19에 걸려도 치료받을 수 없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이들의 안전부터 지키는 것, 우리 사회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류승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