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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사태 그후… ‘공공 실패, 민간 만능’?

LH 사태 이후 ‘공공 실패, 민간 만능’ 프레임에 부쳐… 민간 개인 투기는 공정한가
등록 2021-05-03 12:51 수정 2021-05-05 01:04
2021년 4월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예정지 쪽방촌에서 주민 강동근씨가 공공주택사업에 찬성하는 종이를 문에 붙이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2021년 4월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예정지 쪽방촌에서 주민 강동근씨가 공공주택사업에 찬성하는 종이를 문에 붙이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경기도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 의혹이 2021년 3월 처음 제기된 뒤 두 달이 지났다. 주택 공급 등을 위해 공공택지를 조성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공기업 직원들이 ‘내(LH) 땅’이라며 미리 말뚝 박듯 한 투기 행위에 국민은 공분했다.

그 뒤 재발 방지를 위해 이른바 ‘LH 방지 5법’(이해충돌방지법·공직자윤리법·공공주택특별법·부동산거래법·한국토지주택공사법)이 속속 입법화되고 있다. 2013년부터 제정안이 제출돼 법안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던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의 경우만 보더라도 각각의 법안 통과는 그동안 쉽지 않았다. ‘LH 사태’로 인한 공분이 입법 동력이 됐다.

공직자 투기 제한, 딱 거기까지?

그러나 딱 거기까지. 정치권에서 합의할 수 있는, 더 나아가 부동산 기득권 세력이 마지못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은 ‘딱 거기까지’일지도 모르겠다. LH 직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의 불법·불공정 투기를 제약하는 것까지가 그들의 최후 저지선이자 새로운 전진을 위한 출발선이다. 저지선을 구축한 부동산 기득권 세력은 시민 공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전세를 역전하려 한다. ‘공직자 불법 투기’와 ‘공직자 불공정 행위’가 문제라며 선 긋고, LH 사태 같은 상황을 ‘공공의 실패’로 규정한다. 실패한 공공의 자리에는 ‘공정경쟁 시장’이라는 ‘민간’을 대치하려 한다. 공공의 ‘불공정 투기’ 방지를 저지선으로 하여 민간의 ‘공정한 투자’라는 사적 투기를 지키려는 의도다.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불공정 투기 문제의 해법으로 ‘공공 실패, 민간 만능’을 기치로 내걸었다. 국민이 투기에 공분하는데도 민간의 투기판이 될 우려가 큰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자신 있게 선거 공약으로 내건 것만 봐도, 그들(국민의힘과 부동산 기득권 세력)은 이 상황을 활용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넘어서고 있다.

선거가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도 선거 패배 원인의 하나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 ‘불공정 투기를 철저히 근절하되 민간의 공정한 투자를 보장하겠다’는 엉뚱한 반성문을 제출했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송영길 의원은 ‘91년생 비정규직 딸’을 언급하며 2030의 분노에 대한 화답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40%, 60%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90%까지 확 풀자”는 주장까지 했다. 박근혜 정권의 ‘최경환 노믹스’를 대표하는 ‘빚내서 집 사라’라는 정책으로의 회귀다. 2030세대에게 ‘빚으로 만든 사다리’를 놔줘서라도 공정한 투기 시장으로 진입하라고 하는 것이다.

‘패닉 바잉’(불안해서 주식·부동산을 사들이는 ‘공황 구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라는 신조어를 집 문제로 절망하는 세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사용하지만, 실은 부동산 욕망을 부추기고 투기를 감추는 용어에 불과하다. ‘지(하)·옥(탑)·고(시원)’ 거주 청년을 하루아침에 ‘영끌’해 집을 사려는 사람으로 호명하는 탓이다.

‘아름다운 민간개발’ 요구하는 쪽방촌 소유주

‘공공 실패, 민간 만능’이라는 구호는 급기야 공공개발 계획이 발표된 쪽방촌의 건물 소유주들에게까지 연호된다. 2월5일 서울역 앞에 있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도 개발계획이 발표됐다. 이곳은 가난한 중장년, 노인 1인가구 최후의 잠자리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발표한 공공주도 개발계획에 따르면, 쪽방 주민 등 기존 거주자가 재정착할 공공주택 1450가구와 민간분양주택 96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2026년 입주 계획). 쪽방 주민의 지구 내 임시이주와 재정착을 보장하는 ‘선이주 선순환’의 순환개발이 시도된다. 쪽방 주민과 일반 주택 거주자를 위한 임시거주지도 주변에 마련한다. 쪽방 주민은 ‘이제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겠다’라며 기대한다. 반면 한 평 남짓 쪽방을 빌려주는 대가로 서울 아파트 평당 월세보다 3~4배 비싼 방세를 받는 ‘빈곤 비즈니스’가 만연한 이곳을 공공개발하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쪽방촌 건물 소유주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민간개발을 주장한다. 동자동 쪽방촌 건물 외벽 곳곳에는 ‘투기세력 LH는, 동자동 공공개발 자격 없다’는 대형 펼침막이 붙었다. ‘자격 없는’ 공공을 대신해, 소유주가 직접 개발하면 더 많은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민간개발을 주도하는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옛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 위원장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동자동에 실거주하는 소유주는 10%에 그친다. 절대다수의 소유주는 동자동에 살지 않는다. 투자를 목적으로 건물을 소유할 뿐이다. 빈곤 비즈니스로 쪽방촌 주민에게 ‘그림자 현금’을 받는 데 더해 민간개발 이익까지 기대하던, 쪽방 주민들 표현으로 하자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외지 소유주들은 어느 순간 언론에 의해 ‘(공공개발로) 재산권을 강탈당하는 동자동 주민’들로 포장돼 과대대표되고 있다. 재개발을 추진할 때는 쪽방 주민을 배제했던 소유주들은 최근 전략을 바꾼 듯 ‘쪽방 주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이라는 펼침막을 동네에 내걸고 상생개발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외지 소유주가 주도하는 민간 재개발은 투기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할 수밖에 없어, 쪽방 거주민의 주거권을 보호하는 상생개발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공이 만능일 수는 없지만 도시계획 차원의 공익사업을 더는 민간에 맡길 수 없다.

개발 정보를 다루는 공공기관, 특히 공직자들의 투기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불공정 투기에 대한 우리 분노가, 공직자가 아닌 개인의 투기는 공정하다고 용인하는 식으로 ‘의도된 전환’에 끌려갈 수는 없다. 집값은 폭등하고 주거는 불안한 현실에서, 집에 삶을 저당 잡혀서라도 그들만의 경쟁적인 주택시장에 진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집을 짐으로 떠메고 살 것인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불법·불공정 투기만이 문제가 아니라,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모두의 투기가 문제라고 말해야 한다.

투기와의 단절을 꿈꾼다

1929년 12월,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도시 20여 곳의 세입자들은 ‘차가인 동맹’을 결성했다. 평양의 차가인 동맹 선언문에는 이렇게 쓰였다. ‘비싼 집세와 땅세에 울고 있는 형제여! 분기하라! 속속 가맹하라! 비싼 집세 땅세를 내리우자! 승리는 분투하는 자의 것이다.’ 집과 땅으로 불로소득을 꿈꾸는 투기와의 단절, 부동산 기득권 동맹세력에 맞선 이들의 동맹이 절실하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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