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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겨울

반복되는 실업은 ‘병’일까

실업급여 중독기 ① ‘정상’ 생애주기를 전제로 하는,
고시원 설계와 비슷한 실업급여 제도

제1352호
등록 : 2021-02-26 20:53 수정 : 2021-02-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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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대기표를 뽑은 모습. 홍혜은 제공

나는 쓸모없는 일을 잘 골라 한다. 대표적으로 ‘취업 프리패스과’라는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가 재수해 철학과로 진학한 일이 그렇다. 또 중독기 칼럼을 쓸 정도로 무언가에 비합리적으로 사로잡히는 일도 잦다. 그래도 중독 경험이 글쓰기 소재로 쓸모가 있다(글이 무슨 쓸모냐는 질문에는 아직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 중독 대상에 실업(구직)급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뭐 하러 일해요”… 실업급여 중독 확산 막을 방법’. 지난해 여름, 실업급여 수급 조건인 피보험 단위 기간이 180일을 넘겼을 즈음 본 사설 제목이다. ‘실업급여 중독’이 뭔 말인가 하니, 1년 이내 실업급여를 다시 수급하는 ‘증상’이다. 특히 청년 수급자가 문제라고 했다. 이에 따르면 나는 ‘잠재적 실업급여 중독자’다. 5년 간격을 뒀지만 두 번째 실업급여를 수급 중이고, 앞으로도 계약직을 전전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실업급여 수급은 정규직으로 6개월 근무한 뒤였다. 서류상 퇴사 사유는 ‘계약 만료’였지만, 실상은 해고였다. 기존 정규직 계약서를 무효로 하고, 애초에 6개월만 계약한 것처럼 계약서를 다시 썼다. ‘슈뢰딩거의 노동자’(양자물리학의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에서 따온 말)도 아닌데 정규직이면서 동시에 계약직인 상태가 존재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후 고용보험 가입은 물론 계약서 작성조차 하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지금은 2020년 서울시 뉴딜 일자리 계약 만료로 두 번째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계약 연장이 되지 않은 데는 뉴딜 일자리 정책을 도입한 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사업이 대폭 축소된 영향도 있었다.

어색하긴 하지만 ‘실업급여 중독 위험군’이다. 우선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일로 실직했다. 그나마 대부분의 노동 경험이 고용보험 미가입 상태여서 두 번 수급에 그쳤다. 실업급여 수령액도 100만원 남짓이라, 화장대 의자를 책상과 겸하는 등 소비 규모와 여러 사회생활을 최소화한 상태다. 또 실업급여 반복 수급은 곧 경력 공백의 반복이라 경력 관리에는 치명적이다. 또한 실업급여를 받아도 사회적 지위와 커뮤니티 형성, 직장인 대출이 나오는 신용이 채워지지 않는다.

애초에 실업급여 반복 수급으로 생계가 가능한 대상 자체가 좁다. 지병이 없고, 부양·육아·간병할 사람이 없고, 당장 상환할 빚이 없어야 한다. 지속 불가능한 삶이다. 그나마 임시적인 삶, 구직 이행기의 청년이라면 얼마간 버틸 수 있다. 취업을 위해 다른 삶의 조건을 제한하며 고시원에 사는 청년의 삶과 닮았다.

실제로 실업급여 제도는 고시원 설계와 닮았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정상 사회’로 복귀해 ‘정상 경제활동 인구’가 되어 결혼과 출산까지 이어지는 ‘정상 생애주기’를 전제하는 것. 반복된 실업은 그 전제에서 벗어나기에 지원할 필요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자 중독처럼 병적인 상태로 진단된다.

그 정상 사회는 정말 ‘정상’일까. 평등하고, 노동 착취나 반복 해고 걱정이 없는 곳일까. 노력하면 질 좋은 일자리에서 장기근속이 보장되는 곳일까. 최근 내 노동 의욕이 꺾인 이유의 9할은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가 아니라, 코스피지수 3000 돌파 소식이었다. 대부분의 노동 가치가 날로 휴지 조각이 되고 쓸모없는 삶이 대량생산되는,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먼저 말해야 한다. 게임중독자의 심각성을 알아본다며 피시방에서 전원을 내리는 실험을 보도한 방송은 ‘밈’(Meme·인터넷에 유행하는 콘텐츠)이 되어 지금까지 풍자된다. 실업급여 ‘중독’이 심각하다며 수급 횟수 규제를 주장하는 건 그 실험과 얼마나 다를까.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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