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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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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천둥번개, 번개천둥

등록 2008-10-16 02:25 수정 2020-05-02 19:25

폭우가 쏟아질 때 보면, 먼저 번개가 반짝이고 그 다음 천둥소리가 들리잖아요. 근데 왜 ‘번개천둥’ 친다고 하지 않고, ‘천둥번개’가 친다고 할까요. 주변에 설문을 해봤으나 번개천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고요. 흠, 알려주세요.(wensdey)

→ 먼저 용어정리부터 하겠습니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천둥이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대기 중의 방전 현상”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결국 ‘천둥’이라는 단어가 이미 번개를 동반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천둥번개’는 ‘역전앞’ ‘외갓집’처럼 동어반복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최인호 교열팀장은 국어사전의 뜻풀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천둥과 번개는 엄연하게 구분해서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 교열팀장은 ‘천둥번개’로 부르는 이유가 “관습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입는 것보다 먹는 것, 자는 곳이 중요할 수 있지만 ‘식주의’ ‘주식의’라고 하지 않고 ‘의식주’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천둥번개, 번개천둥?  한겨레 이정용 기자

천둥번개, 번개천둥? 한겨레 이정용 기자

“번개가 먼저 치고 천둥이 치기 때문에 앞에 것은 까먹고 뒤의 것만 말하는 것”이라는 인간(혹은 개인)의 ‘단기기억상실’을 일반화하여 이유랍시고 제보한 이도 있습니다. 브랜드네이밍 업체에서 ‘이름짓기’를 하는 최아무개씨는 천둥의 어원에서 이유를 찾습니다. 천둥은 ‘하늘을 치다’라는 한자어 ‘천동’(天動)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하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다 보니, 이름을 지을 때부터 이미 많은 이들이 의미를 두고 있었던 거라는 말이지요.

무엇보다 천둥과 번개의 ‘충격 강도’의 차이가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장마철, 한밤중 잠을 자다가 비가 내리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우르르 쾅쾅’ 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을 쓴 이승원씨는 “청각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무의식적으로 지각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동물들이 눈으로 보지 않고도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희미한 발자국 소리만을 듣고 위험을 감지하고 도망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위협을 감지하기 쉬운 수단도 눈을 부릅떠야 볼 수 있는 ‘번개’보다는 눈을 감아도 잘 들리는 우레 소리일 겁니다. 더 중요한 것, 더 위협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앞에 놓는 것은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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