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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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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여자의 천역

등록 2001-04-24 15:00 수정 2020-05-02 19:21

4월27일 경기도 문화회관에서는 나혜석 기념사업회 주최로 4차 나혜석 심포지엄이 열렸다. 나혜석 기념사업회의 노력과 성취는 현재 한국의 문화적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거의 기적처럼 여겨진다. 한국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인문학을 내팽개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지방 대학에서는 학내 구성원들과의 합의 과정도 없이 철학과를 폐과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문학을 박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마당에, 매년 한 사람의 여성문인을 기념하는 행사가 순수 민간 사업회의 노력으로 꾸준히 열리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혜석 기념사업회는 순전히 한 사람의 시민의 열정으로부터 출발해서, 이만한 결실을 이루어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특이한 모범이 된다. 기념사업회는 나혜석을 2000년 2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지정하게 만들었고, 2000년 6월에는 나혜석의 고향 수원에 나혜석 거리를 조성하는 데 성공하기까지 한다.

나혜석, 불륜의 사랑 그리고 이혼

나혜석의 존재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떠올려진다.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자, 최초의 여성 도쿄 유학생,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최초의 여성 근대소설가, 최초로 서양화 전시회를 연 화가, 최초의 세계일주여행자, 그리고 사후에는 최초로 문화인물로 지정된 근대 여성예술가. 그녀의 선구적 식견은 지금 읽어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앞선 것이다. 모든 ‘최초’는 쉽게 영광의 절정에 오른다. 그러나 그만큼 추락도 쉽다. 나혜석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녀는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한순간 고꾸라진다. 세상은 그녀에게 허용했던 모든 영광을 단 한순간에 돌이킨다. 세상은 그녀에게 허용했던 영광의 높이만큼, 아니 그보다 더 깊은 나락의 지하실에 그녀를 처박고 봉인해 버린다. 그녀는 병이 들어 행려병자로 죽었다. 그녀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밝혀진 바 없다.

그녀의 나락의 원인은, 잘 알려진 바대로 그녀가 불륜의 사랑을 했고, 그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이혼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서 그쳤다면,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토록 잔인한 돌팔매질을 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나혜석은 ‘이혼고백장’을 써서 자신의 애정관을 당당하게 밝혔고, 몇년 뒤에는 그토록 비참한 처지에 빠져버린 자신을 나 몰라라 내팽개친 비겁한 연인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그녀는 용서를 비는 대신에 당당하게 항의했던 것이다. 그녀를 향해 당시의 사회 전체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녀는 천하의 몹쓸 여자가 되어 완전히 매장당한다.

나에게 나혜석의 모든 ‘최초’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 나에게 의미있는 나혜석의 최초는 그녀가 최초로 ‘여자의 말’을 가지려고 했던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최초로 남성 담론에 반기를 들었던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지니고 있었던 자의식으로 보아서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다. 근대적 각성은 주체에 대한 각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각성한 주체는 ‘내 말’을 가지고 싶어한다. 그는 받아쓰기를 하기 싫어한다. 그는 자신이 읽어낸 세계를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통해 재구성하고 싶어한다. 세계는 있는가? 물론, 있다, 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의 물리적 존재일 뿐이다. ‘내’가 해석하지 않은 세계는 ‘나’에게는 없는 세계이다. 나는 내가 해석한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싶다. 왜 나에게 당신들의 세계 해석을 강요하는가?

나혜석은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의거하여 세계를 해석했고, 그 해석을 공표했을 뿐이다. 그러나 세계는 그것을 저주했다. 왜냐하면, 여성주의조차도 남성들이 쳐놓은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혜석은 그 테두리를 넘었고, 그리고 오만방자하게도 자신의 일탈행위를 담론화하려고 했다. 돌팔매는 주로 그 지점을 겨누어 던져진다 . “뭘 잘했다고 떠들어?” 나혜석에게 던져진 돌은 그녀가 ‘떠들었다는’ 사실을 겨냥한다. 그녀가 조용히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아마도 제도는 그녀에게 어떤 가능성을 남겨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하는 여자는 불태워 죽여야 한다. 마녀들은 ‘말했기’ 때문에 불태워 죽여졌다.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나혜석이 죽은 지 5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녀 뒤에 무엇이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여전히 말하고자 한국 여성들은 남성 담론의 테두리 안에서 남성들의 인준을 받아 움직여야 한다. 그것을 벗어나는 여성들은 무자비한 처단의 대상이 된다. 이른바 ‘담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극소수의 혜택받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때조차도 남성들이 그어놓은 담론의 울타리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극도로 조심한다.

연구자들은 나혜석 말년의 생애를 철저한 ‘실패’로 규정한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당시의 맥락에서 나혜석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외길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녀의 말년의 좌절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때로는 실패가 성공보다 더 큰 것을 말한다. 적어도 삶의 지평을 늘 미래의 쪽에서 살펴보는 자들에게는 그러하다.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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