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람선이나 호화 여객선으로 불리는 크루즈선은 엄밀한 의미에서 ‘배’가 아니다. 이동·수송보다 여가·관광·엔터테인먼트가 목적이기에 수영장, 스파, 카지노, 극장, 뷔페, 레스토랑, 조깅코스 등 온갖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고, 규모도 보통 5만t 이상, 최대 25만t에 이른다. 이쯤 되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리조트’에 가깝다. 평생 한 번쯤 부려보고 싶은 호사나 로망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크루즈 관광이, 전지구적 생태·기후위기 시대를 맞으며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대기·해양 오염, 쓰레기 배출, 해저 소음·빛 공해로 인한 생태계 교란, 입항 지역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 등 다방면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시는 문화유적·생태계 보호, 과잉관광 등을 이유로 크루즈선 입항 금지라는 특단의 조처를 내렸고(202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는 크루즈를 ‘환경을 오염하는 관광 방식’으로 규정해 입항을 단계적으로 줄여 2035년까지 전면 폐지하기로 선언했다(2023년).1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도 크루즈선 규제에 동참했다(2023년). 한국에선 제주도 시민단체들이 성명을 내어 크루즈의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대응을 제주도정에 요구했다(2023년). 2024년 8월에는 기후단체 ‘멸종저항’의 네덜란드지부가 화석연료 남용을 이유로 크루즈선 입항을 몸으로 막는 시위를 하는 등 시민사회의 반대 여론과 압박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전세계 크루즈 관광 시장은 2023~2028년 약 248억8천만달러로 커질 전망인데, 다행히(!) 한국에서는 시장 규모가 아직 그리 크지 않다.2 그런데 우리나라 크루즈 시장의 정착·확산에 앞장선 주체는 놀랍게도, 국내 굴지의 환경단체다. 환경재단이 2005년부터 운영해온 ‘지구를 생각하는 그린보트’(그린보트)는 코로나19로 주춤했다가 최근 부활했다.
내가 이 기묘한 크루즈 상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환경사상가이자 ‘녹색평론’의 발행인이었던 고 김종철 선생이 쓴 한겨레 칼럼(2019년)을 통해서였다.3 그는 “어떤 환경단체가 주관하는 주요 연례행사 중에는 (자동차 수백만 대분의 대기오염물질을 뿜는) 크루즈선을 타면서 진행하는 선상 토론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자신의 애초 목적에 충실한 운동인지, 조직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비즈니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일갈했다. 그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이가 조의를 표했지만, 그가 남긴 이 우려를 진지하게 고민한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맞았다. 그린보트는 ‘그린’하지도 않았고, ‘보트’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지난 20여 년간 운영해온 오션드림호(3만5천t급)와 네오로만티카호(5만7천t급)는 ‘지상에서 가장 더러운 화석연료’라 불리는 중유(벙커시유)를 사용했다. 중유는 유황, 그을음, 질소산화물, 이산화탄소 등 유해성 물질을 배출한다. 이런 규모의 크루즈선은 탄소배출량이 ㎞당 약 712㎏으로, 보잉747이나 카페리선의 3배, 영국~프랑스를 잇는 고속철(유로스타)의 36배에 이른다.4
폐기물도 문제다. 평균적인 크루즈선(승객·승무원 3천 명 기준)은 매일 약 10만5천~28만5천 갤런의 오폐수를 발생시킨다.5 크루즈선은 전세계 상선 대수의 단 1%에 불과하지만, 쓰레기(고형폐기물) 발생량은 25%나 차지한다.6 크루즈선 관광객의 평균 탄소발자국이 지상 관광객보다 8배 많다는 연구도 있다.7 운송수단 중 비행기가 탄소발자국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으나, 선박 종류 중 유독 크루즈선만 비행기를 능가한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평균적인 크루즈선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비행기의 4배이고, 하루당 미세먼지 배출은 자동차 100만 대와 맞먹으며, 대기오염물질인 황산화물(SOx)의 경우 유럽에서 운항하는 218척의 크루즈선이 유럽 전역의 승용차(약 2억6천만 대)보다 약 4배 많은 양을 배출한다.8
이러한 크루즈 여행을 환경단체가 앞장서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전력도 이해하기 힘든데, 2025년 1월부터 재개되는 그린보트는 심지어 규모를 두 배 늘린 초대형 선박 ‘코스타세레나호’(11만4천t급)를 동원하기로 했다. 여객 정원 3780명에 승무원도 1100명에 이른다.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벗’의 크루즈선 환경영향보고(2022)를 보면, 이 선박과 선사는 대기오염·폐기물처리·투명성 부문 및 최종 평가에서 모두 ‘에프’(F)라는 최악의 낙제점을 받았다.
그린보트 주최 쪽은 설명한다. 선상에서 텀블러와 대나무 칫솔 사용을 권하고, 채식 한 끼 체험과 환경 강좌가 있으며, 탄소 상쇄 프로그램에 가입했기에 친환경이라고. 명색이 환경단체가 고작 이 정도로 크루즈를 ‘그린’으로 분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시민의 의식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차라리 ‘그린워싱보트’라는 이름이 어울려 보인다. 몇 해 전부터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겠다는 말이 나왔지만 바뀐 건 없고, 설령 연료를 중유에서 디젤로 바꾼다 해도 온실가스 배출, 환경오염은 여전히 막대하다. 일부 크루즈선이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 조처(2020년) 이후 황산화물 제거를 위해 부착한 ‘스크러버’(배기가스 세정 설비)도 대기오염을 해양오염으로 맞바꿀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나마 탄소배출이 가장 적다는 액화천연가스(LNG)도 유해 온실가스인 메탄을 엄청나게 배출하기에 해결책은 못 된다.
태생부터 친환경과 거리가 먼, 자본·에너지 집약적인 ‘럭셔리’ 상품인 크루즈를 수단으로 환경 캠페인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린보트 쪽은 “세계 유일의 환경 테마 크루즈”라고 선전한다. 세계 유일인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환경의식이 있다면 크루즈를 지양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지난 몇 해 동안 여러 언론인이 그린보트를 거쳤건만 온통 홍보성 기사뿐, ‘그린보트는 과연 그린한가’라는 질문 하나 없었다. 그들의 탑승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지도 의문이다.
나는 2019년 그린보트에 탑승한 경험자 몇 명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인터뷰이는 이렇게 증언했다. “밤하늘 가득한 별을 기대했는데, 여행 내내 배가 내뿜는 시커먼 연기밖에 안 보였다. 뭔가 켕겼다. 친환경과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 일반인과 노동자는 배 밑부분에서 잤고, 유명 인사들은 상위층의 고급객실에 묵으며 양주와 스테이크를 즐겼다. 묻지도 않았는데 어느 교수와 어느 작가가 자랑하듯 말해줘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 작가는 ‘우리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아닌가요?’라고 덧붙였다. 마치 ‘선상 설국열차’를 탄 기분이었다.” 다른 탑승자들도 이런 사실들을 확인해줬으며, 환경친화적인 면은 발견하기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나는 배라는 운송수단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처럼 태양광 요트를 이용한 ‘탄소제로(0) 여행’만 고집하기도 어렵다. 당장 내가 몸담은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도 배를 쓴다. 다만, 선박 규모가 크루즈선의 200분의 1도 안 되게 작은 것은 물론, 바다에서 연안국 정부와 협력해 불법어선을 체포하거나 해상보호구역의 불법 어구를 제거하는 등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분명한 이유로 불가피하게 배를 쓴다. 반면, 그린보트의 프로그램은 굳이 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늘 아래 완벽한 환경 정책이나 캠페인은 없으며, 작은 흠결이 있다고 성급히 그린워싱으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 살아가고 활동하는 데 불가피한 탄소배출과 오염도 늘 있다. 다만, 최소한의 선은 존재한다. 환경운동을 표방한다면 그런 선들에 더욱 예민해야 한다. 해당 활동이 스스로 천명한 환경보호 목적에 부합하는지, 생태적 영향을 상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치열하게 자문해야 한다. 그린보트는 여기에 설득력 있게 답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고, 승객들도 이를 알았다면 상당수는 보이콧했을 것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2024년에도 우리는 전례 없는 폭염·폭설을 겪었고, 기후위기가 긴급한 이슈라는 것을 체감하게 해주는 신호들은 점점 잦아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크루즈 관광이 표방하는 이른바 ‘제국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은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가? 환경단체가 이를 미화하고 정상화하는 것은 적절한가? 지속 가능한 미래에 역주행하면서, 지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환경운동의 역할인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은, 굳이 크루즈선을 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물자와 에너지를 흥청망청 소비하는 생활을 ‘풍요로운’ 삶이라고 오해하고, 휴가라면 으레 항공여행과 골프와 크루즈 항행 따위를 떠올리면서 그게 ‘좋은 삶’이라고 믿는 정신적 빈곤 속에서 지내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리에게 ‘좋은 삶’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 김종철 선생의 말이 새삼 뼈아프게 읽힌다.9 드물게 주어진 성찰의 기회, 이마저 놓칠 것인가?
김한민 작가
◈ 참고 문헌
1. ‘오염을 일으키는 관광: 암스테르담, 크루즈선 통행량 절반으로 줄이다’, 유에스에이투데이, 2024년 6월5일, eu.usatoday.com/story/travel/cruises/2024/07/03/amsterdam-cruise-ships-cap-crowds/74294779007/
2. ‘세계의 크루즈 관광 시장(2024~2028년)’, 글로벌 인포메이션, 2023년 11월, www.giikorea.co.kr/report/infi1395499-global-cruise-tourism-market.html
3. 김종철 칼럼 ‘툰베리의 결기’, 한겨레, 2019년 9월19일, 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0196.html
4. ‘크루즈 여행보다 3배 더 친환경적인 비행’, 텔레그래프, 2008년 1월19일, www.telegraph.co.uk/travel/hubs/greentravel/739287/Flying-three-times-greener-than-cruising.html?ICID=continue_without_subscribing_reg_first
5. ‘크루즈선의 환경적 영향’, ASCE(Americ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2012년 4월26일, ascelibrary.org/doi/abs/10.1061/40792(173)308
6. ‘크루즈선 폐기물이 모항과 입항 항구에 미치는 영향: 사우스햄튼 연구’, 사이언스디렉트, 2007년 9월, 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308597X07000218
7. ‘크루즈 여행 대 육상 휴가: 시애틀에서의 휴가 탄소발자국 분석’, 지구의 친구, foe.org/wp-content/uploads/2023/04/Comparison_of_CO2_Emissions_v2.pdf
8. ‘크루즈선이 지구에 재앙이 된 이유’, 가디언, www.youtube.com/watch?v=EZlgM_u4Ghg&ab_channel=TheGuardian
9. ‘발언 3: 김종철 칼럼집’, 녹색평론, 2022년 4월14일, greenreview.co.kr/book/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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