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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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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 피해 포항 주민들 “물길 건드리는 게 아냐”

오어지부터 포스코까지, 태풍 ‘힌남노’가 할퀸 포항 냉천 따라 10㎞ 르포
산책로·축구장에 강폭 30%로 좁아져… 천재지변 탓하기엔 인간의 손길도 논란
등록 2022-09-30 17:55 수정 2022-12-09 01:48
2022년 9월23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있는 풀빌라. 태풍이 지나간 뒤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2022년 9월23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있는 풀빌라. 태풍이 지나간 뒤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2022년 9월6일 새벽 2시30분. 이종연(79)씨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태풍 ‘힌남노’가 경북 포항에 상륙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상청이 예고한 시간은 이날 아침이었지만, 예민한 성격 탓에 이씨의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그때였다. 두두두두. 집 뒤쪽으로 흐르는 용산천이 굉음을 냈다. 용산천은 포항 남쪽을 관통하는 냉천의 지류다. 순간적으로 불어나는 용산천을 보면서, 급하게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좀더 안전해 보이는 경로당으로 향했다. 첨벙첨벙. 새벽 2시40분, 벌써 집 앞마당에 종아리까지 물이 찼다. 새벽 3시, 이씨가 사는 포항시 오천읍 용산2리(33쪽 지도 ❷)가 물에 잠겼다. 포항에서 가장 먼저 침수 피해가 발생한 마을이었다.

이날 같은 시각, 냉천의 상류에 있는 저수지 ‘오어지’ 앞(지도 ❶)에서 풀빌라 숙박 사업을 하는 최율호(60)씨는 빗소리를 들으며 겨우 잠이 들었다. 풀빌라 옆에는 냉천의 지류인 신광천이 흐른다. 그는 신광천이 넘칠까봐 걱정돼 새벽까지도 눈을 감지 못했다. 최근 3년 동안 물이 흐른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마른 천’(건천)이었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 깜빡 잠든 지 1시간30분가량 지났을까. 아내가 최씨를 흔들어 깨웠다. 새벽 5시. 건물 바로 옆으로 바닷가에서나 보던 ‘파도’가 치고 있었다. 물이 넘실댔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옆 건물로 급히 피신했다.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최씨가 있던 건물이 물 위에 둥둥 떠올랐다. 건물이 떠 있는 영상은 ‘떠내려가는 포항 풀빌라’라는 제목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최씨는 당시가 “꿈 같았다”고 말했다.

시간당 101㎜ 폭우에 저수지 한계수량 넘쳐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한 포항이 9월 초 태풍 힌남노가 뿌린 폭우에 큰 피해를 입었다. 힌남노는 아열대성 해양이 아닌 북위 25도선 이북의 바다에서 발생한 슈퍼 태풍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서 강한 태풍이 한반도와 더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고, 힌남노는 그대로 포항을 강타했다.

2022년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포항을 9월23일과 27일 두 차례 찾았다. 냉천의 최상류인 오어지에서 시작해 신광천~냉천 합류 지점~냉천 하류에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이르기까지 하천을 따라 약 10㎞를 걸었다. 두 발로 걸으며 주민 등 12명을 만났고, 이들에게 ‘마른 천’이 기후위기를 맞아 어떻게 ‘성난 천’으로 바뀌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어지가 있는 포항 오천읍은 9월6일 새벽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내렸다. 새벽 4시 69㎜이던 시간당 강수량은 5시에 99.5㎜로 늘었고, 6시엔 101㎜를 기록했다. 오어지의 저수율은 새벽 5시 이미 99.9%를 기록했다. 저수지는 보통 수문으로 물을 흘려보내지만, 저수율이 100%를 넘을 때는 배수시설인 이른바 ‘물넘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물이 넘치도록 설계됐다. 이날 새벽 오어지는 더 이상 물을 담아낼 여력이 없었다. 넘친 물은 신광천을 지나 냉천으로 흘러갔다. 물이 흘러가는 그 시각, 포항에는 하필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냉천 하류 인근 오천읍의 한 아파트(지도 ❸)에서 안내방송이 나온 것은 새벽 6시10분이었다. “지하 주차장이 침수될 것으로 예상되니 차를 이동시켜주세요.” 아파트 주민 황병건(69)씨는 안내방송 직후 자신의 집이 있는 아파트 8층에서 계단으로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 그가 도착한 6시15분께만 해도 주차장 바닥엔 물기도 없었다. 그런데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주민들이 동시에 차를 빼려고 하는 순간 지하 주차장 입구가 쏟아진 물로 막혔다. 황씨가 차를 몰고 주차장 출구 경사로에 진입하기까지 약 7분이 걸렸다. 오토바이를 이끌고 경사로를 오르다 넘어진 주민을 황씨가 도와주는 사이, 이미 물은 경사로까지 들어찼다. 경사로까지 나오다 멈춘 황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날 지하 주차장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 주민 8명이 세상을 등졌다.

본격적으로 세를 불린 냉천의 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냉천 하류 근처에서 49년 동안 쉬지 않고 불을 뿜어내던 포스코 포항제철소(지도 ❹)를 덮쳤다. 1973년 이후 끊임없이 쇳물이 흘러나오던 포항제철소의 고로는 이날 사상 처음 3기가 동시에 멈췄다. 이번 태풍으로 경북 지역에서만 11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집 8309채가 침수됐고, 약 2조원(잠정)의 피해액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된다.

용산천, 신광천, 냉천 등 포항의 하천들은 왜 쉽게 범람해 아파트와 제철소를 덮쳤을까. 하천을 따라 걸으면서 만난 주민들은 저수지 수문과 하천에 놓인 다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등 물길에 영향을 준 ‘인간의 모든 손길’을 의심했다.

2022년 9월2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2리에 있는 이종연씨의 집 뒤로 용산천을 가로막은 아파트 건설 현장이 보인다.

2022년 9월2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2리에 있는 이종연씨의 집 뒤로 용산천을 가로막은 아파트 건설 현장이 보인다.

물넘이 수로 바로 앞에 만든 주차장

신광천 상류에 있는 항사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새벽에 저수지(오어지) 수문을 열어 피해가 커졌다고 지목했다. 최율호씨는 “저수지 수위가 높아져 수문을 부랴부랴 열어버리니까 한번에 물이 완전히 쏟아져버린 거지”라며 “거기에 폭우로 인한 강수량까지 있으니까 물이 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저수지 주변에서 오리고깃집을 운영하는 박삼수(66)씨는 저수지의 물넘이 구간을 넓힌 것이 문제라고 했다. 저수지가 꽉 차서 자연스레 물이 흐를 순 있어도 물넘이 구간이 지금보다 좁았으면 순차적으로 더 적은 양의 물이 흘렀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오어지 앞에 있는 주차장도 피해를 키운 이유로 꼽힌다. 포항시는 오어지 둘레길에 관광객이 몰리자 차량 100대가량을 세울 수 있는 임시 주차장을 만들었다. 주차장이 조성된 공간은 저수지 물넘이 수로 바로 앞이었다. 물넘이를 넘어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물결에 주차장이 무너졌고, 토사가 최율호씨가 운영하는 풀빌라를 향해 직선으로 쏟아져내렸다.

그러나 오어지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는 저수지 수문이 피해가 커진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수지 물넘이 구간에 있던 방수문은 9월3일 오전부터 계속 열려 있었다고 농어촌공사는 밝혔다. 폭우에 대비해 한번에 많은 양의 물이 내려가지 않도록 미리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새벽 5~6시 저수율이 100%를 넘어가자, 물은 자연스럽게 하천으로 흘러 넘어갔다. 이때 포항에 시간당 내린 비의 양은 101㎜였다. 역대 포항에서 가장 많은 비를 동반한 태풍이 덮친 것은 1998년 ‘예니’였다. 당시 시간당 강수량은 93㎜였다.

이씨의 집 안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펄이 남아 있다.

이씨의 집 안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펄이 남아 있다.

“자연을 난 대로 놔둬야지”

오어지에서 시작한 신광천이 냉천에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용산2리는 힌남노 태풍이 다가올 때 포항에서 가장 빠르게 침수 피해를 겪었다. 이곳엔 1144가구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파트 건설이 시작되기 전에 용산천은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고 냉천까지 곧게 뻗어 있었다. 하지만 냉천과 마을 사이에 아파트 건설 공사를 하면서, 용산천은 건설 현장을 에둘러 흐르도록 90도 직각으로 꺾였다. 2017년 포항시는 아파트 건설이 예정된 부지 내에 있는 용산천 500m의 유로를 변경하는 내용의 소하천정비종합계획 변경을 고시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용산2리 노인회장을 맡은 이종연씨는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수로가 변경됐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포항시에 원상복구를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용산2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박선옥(85)씨는 지금껏 마을 전체가 잠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지금까지 재난은 없었어요. 아무리 사나운 매미 태풍이든 어떤 태풍이든 왔어도….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갑자기 물이 집채같이 넘어오는 기라.” 힌남노가 지나간 다음에도, 이 마을 주민들의 바람은 용산천의 물길을 원래대로 복구해달라는 것이다. “천을 막아놓으면 해결이 안 돼. 자연을 난 대로 놔둬야지. 그렇지 않으면 100년이든 피해가 날 때마다 책임을 질 끼가.”

용산2리를 지나 하천 하류로 내려갈수록 태풍 당시 큰물이 지나간 흔적이 선명했다. 하천이 꺾이는 지점은 더 깊게 파였고 높이가 낮거나 교각 사이가 넓지 않은 다리엔 아직도 치우지 못한 토사 등이 남아 있었다.

앞서 포항시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317억원을 들여 ‘냉천 고향의 강’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으로 포항시는 냉천 주변 수로를 정비하고 산책로와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을 만들었다. 축구장과 광장도 생겼다. 물길은 인위적으로 강폭 전체 길이의 30% 정도로 만들었다. 나머지 양옆 공간은 콘크리트로 덮였다.

미비점 지적 보고서 내고도 “천재지변”이라니

지하 주차장에서 8명이 숨진 아파트가 위치한 구간의 냉천은 당초 ‘고향의 강’ 사업에서 제외돼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요청해 2021년 냉천 근처에 휴식공간과 산책로를 설치했다. 아파트 앞 냉천 구간도 ‘고향의 강’ 사업에 포함해달라고 건의했다는 황병건씨는 “만약 저 사업을 하지 않고 뒀으면 어땠을까”라며 말을 흐렸다. “물길이 가는 길을 건드릴 게 아니라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하는데… 저렇게 강을 변형시켜놨는데…. 결국 이렇게 넘치는 거야. 물을 다스리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2012년 경상북도가 발간한 ‘냉천하천기본계획 변경 보고서’를 보면 냉천 중하류 지역에 대해 “주거지 밀집 구간이며 좌우 안측에 아파트 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일부 구간 제방의 높이가 낮아 관리가 요구되는 지역”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 보고서는 1998년 냉천기본계획수립 이후 14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존 계획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고서는 냉천에 설치된 다리 9개 가운데 다시 설치하거나 철거해야 할 다리 5곳도 지목했다.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리 주변에 충분한 여유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큰 피해를 본 아파트가 위치한 지점 너머의 하류에 있는 인덕교와 냉천교도 이 보고서에서 ‘개설’을 권고한 다리였다. 이 다리들은 아직 그대로 있다. 교각 사이 거리가 기준치에 가장 미달했던 잠수교만 힌남노가 지나간 뒤 급히 철거됐다. 장영태 포항시농민회 회장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피해를 살펴보기 위해) 내려오기 전에 (포항시가) 잠수교라도 급히 철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쇳물을 만드는 고로가 멈추는 큰 피해를 본 포스코는 9월15일 “이번 제철소 침수 원인은 인근 냉천의 범람 때문”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냉천은 하류에서 제철소를 만나 물길이 크게 꺾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포항제철소 안에서 침수된 지역을 보면 냉천이 꺾이는 부분에서 물이 쏟아져 들어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반면 포항시는 이번 피해가 ‘천재지변’이라는 입장이다. 이삼우 포항시 생태하천과장은 “지방하천인 냉천은 80년 빈도 강우량까지는 홍수가 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며 “이번 태풍은 유례없이 500년 빈도의 강우가 왔기 때문에 범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냉천은 80년 빈도의 홍수에 맞춰 설계돼 한계수량이 시간당 78㎜ 정도에 불과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경고

정침귀 포항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모두가 ‘아전인수’ 격의 주장만을 한다고 했다. “결국엔 기후위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거야말로 중요한 문제고 그걸 지적해야 하는데, 어떤 언론매체들은 이명박 정부 때 시작한 ‘고향의 강’ 사업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해요. 이 재난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당장 내년 여름에 또 (태풍이) 올지 모르는데…”

환경단체들은 포항시의 잘못뿐만 아니라 국내 최대 철강기업인 포스코도 포항 기후재난의 간접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7310만t(2018년 기준)으로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한다. 환경단체들이 포스코를 ‘기후 빌런(악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천 전문가인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하천 관리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각 하천의 중요도에 맞게 관리해야 하는데, 지방하천은 무조건 80년 빈도 강우량 기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고착화돼 있다”며 “당장 전국 어디에서도 냉천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상청이 2020년 작성한 ‘한국기후변화평가보고서’를 보면 한반도의 집중호우 빈도와 강도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확연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2014년 이후 단기간 강우 강도가 증가해 중소 하천에서 홍수 발생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기상과학원도 2020년 낸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에서 “모든 시나리오에서 미래 전반기에 강수량이 감소하는데도 ‘극한 강수’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기후위기 시대, 하천이 위험하다.

포항=글·사진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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