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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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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종말’ 앞에 토론은 끝났다

12시간 동안 2개월치 강우량 쏟아진 독일…
“기후변화는 시작된 지 오래이며 우리는 그 결과를 보는 중”
등록 2021-07-24 13:16 수정 2021-07-25 01:49
2021년 7월17일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지역에 퍼부은 비로 도로가 물에 잠겨 침수된 차로 가득하다. REUTERS

2021년 7월17일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지역에 퍼부은 비로 도로가 물에 잠겨 침수된 차로 가득하다. REUTERS

“세상의 종말을 상상할 때 바로 그 풍경이다.” 누구의 말이라고 할 것도 없다. 기록적인 피해를 겪은 독일 남서부 지역에서 수없이 되풀이된 말이다. 물에 잠긴 공동묘지에 높은 십자가들만 떠 있는 마을, 물길에 밀려 떠내려온 자동차들이 높게 쌓이거나 물 위에 이정표만 떠 있는 도로 앞에서 주민들과 소방관은 수없이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2021년 7월14~15일 라인란트팔츠주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등에서 24시간 동안, 어떤 지역에선 12시간 동안, 2개월치 강우량에 해당하는 제곱미터(㎡)당 200리터(ℓ)라는 많은 비가 쏟아졌고 지금까지 독일에서만 170명가량 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같은 시각 독일 북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지역에선 극심한 가뭄으로 수확을 앞둔 들판의 곡식에 계속 자연발화가 거듭됐다.

더 자주 더 많이… 유럽의 물난리

이 아포칼립스(종말)의 노래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을 떠돈다는 점에서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6월엔 토네이도(회오리바람)였다. 6월25일 체코에선 토네이도가 7개 마을을 쓸어버렸다. 폭풍우가 지나가며 체코 남부와 오스트리아에선 테니스공만 한 크기의 우박이 쏟아졌다. 그보다 앞서 6월20일에는 프랑스에서 토네이도로 교회 첨탑이 부러지고 자동차들이 물길을 헤치고 달리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프랑스, 독일까지 남서유럽 일대를 토네이도가 휩쓸었던 올여름 같은 상황이 그전에도 있었지만 엄청난 집중호우와 그칠 줄 모르는 번개, 우박의 규모는 확실히 기록적인 것이었다.

이번 홍수는 2002년 8월과 2013년 5월에 이어 중부유럽이 물길에 휘말린 대규모 물난리로 집계됐다. 그러나 2002년 독일·오스트리아·체코 등을 강타한 ‘100년 만의 수해’ 때도 사망자는 50명이었고, 독일 바이에른주에선 48시간 동안 100㎜ 넘는 비가 내려 당시로선 충격적이라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이번보다는 적었다. 2013년에는 다뉴브강이 넘치고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동쪽과 남쪽 유럽 대륙에까지 물이 흘러넘쳐 큰 피해를 입혔다. 사망 25명, 실종 4명이라는 인명 피해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요양원에서 환자가 모두 사망하고 유람선이 떠내려가는 대규모 수해가 올 줄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번 수해에선 예보가 있었음에도 지방정부들이 시민을 피난시키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것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많다. ‘1천 년 새 최악’이라 할 만큼 많은 비가 쏟아졌다는 점에서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재앙이란 것도 명확하다.

독일의 평균기온은 1881년 체계적인 기상 기록이 시작된 뒤부터 2019년까지 1.6도 올라간 것으로 측정된다. 1도 오를 때마다 공기는 스폰지처럼 7% 더 많은 물을 흡수했다가 알프스를 따라 중부와 동부 유럽에 뿌린다.

‘날씨 변화’가 아니다, ‘기후위기’다

문제는 앞으로다. 2018년 여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선 극심한 가뭄이 있었다. 최근엔 러시아 북동부 시베리아 들판에서 화재가 계속돼, 2021년 7월22일 현재 150만헥타르(ha)가 타들어가고 있다. ‘동토의 땅’으로 알려진 시베리아는 5월에 이미 평균기온 33도를 기록했고, 2021년 여름 기상 관측 사상 최대의 고온건조치를 날마다 경신한다. 높은 기온 때문에 탄소를 냉동보관하는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는 사실은 종말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도 같다. 기후 전문가들은 “영구동토층이 허물어지면 시베리아의 거리와 마을이 진흙 ​​속에 가라앉고 메탄이 공기 중에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몇 배나 더 빨리 온실효과를 앞당기는 기후에 해로운 가스다.

한때 라인강이 넘친다는 경고가 나왔던 독일은 수해 복구에 나선 7월17일부터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한숨 돌리고 있지만, 날씨 전문 누리집 다스베터닷컴(www.daswetter.com)은 “사하라사막의 뜨거운 공기가 독일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며 “다음 주말 다시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가뭄과 폭우, 폭염과 폭풍 등 극단적인 날씨가 번갈아 닥치는 현상은 전형적인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를 두고 독일에선 “더는 이를 ‘날씨 변화’라고 부르지 말자. ‘기후변화’ ‘기후위기’로 일기예보에서부터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수해는 엄청난 상처를 남긴 재앙이지만 독일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운 사건이기도 하다. 베를린 훔볼트대학 지리연구소 기후과학 책임자 카를프리드리히 슐로이스너 박사는 독일 라디오 <도이칠란트풍크> 인터뷰에서 “2021년부터는 이게 정말 (예전에도 가끔 있었던 날씨 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 때문이냐는 질문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남은 질문은 앞으로 기후가 어떻게 바뀌겠냐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해양기후학자 슈테판 람슈토르프는 “기후변화는 시작된 지 오래이며 우리는 그 결과를 보는 중”이라고 했다.

징후는 명백하고 정책 변화는 느리고

징후는 명백하지만 정책 변화는 너무 느리다는 비판이 점점 커진다.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는 “재앙이 방글라데시 슬럼가뿐 아니라 부유한 서방국가를 위협했으니 이제 무슨 조처를 하는지 보자”며 그동안 기후 재앙의 피해를 인프라가 부족한 제3세계 일로 치부하던 정치인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베를린(독일)=남은주 <한겨레> 베를린 통신원

nameunjoo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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