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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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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이전 논의에서 빠진 것들

등록 2022-04-11 16:53 수정 2022-04-12 01:29

사실, 오랫동안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입지가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고 내부 구조도 반민주적,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의 대통령실이 일제의 조선 총독 관저에서 비롯했다는 사실도 그리 기분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윤석열 당선자가 추진하는 대통령실 이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제1407호 표지이야기를 썼습니다.

과연 대통령실은 어디로, 어떻게 옮겨야 할까요? 먼저 입지를 폭넓게 검토해야 합니다. 기존 청와대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용산 국방부, 세종시 등이 모두 검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청와대는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고,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는 시민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큽니다. 용산 국방부는 경호와 경비가 쉽습니다.

특히 세종시를 적극 검토해야 합니다. 대통령실의 세종시 이전은 전국의 균형 발전에 물꼬를 틔울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세종시와 혁신도시 등에 200여 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 효과가 충분히 나지 않는 이유는 서울에 남아 있는 청와대와 국회 때문입니다. 황폐해지는 지방을 되살리고, 폭등하는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고, 인구의 급감을 완화하고, 행정부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반드시 균형 발전을 해야 합니다.

용산에 있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 등 16개 국방 기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좋습니다. 국방부와 합참이 용산에 있었던 것은 용산의 주한미군과 연합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주한미군이 경기도 평택으로 옮겨간 상황에서 국방부와 합참이 굳이 용산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랫동안 외국군에 짓눌린 용산이 이제 평화와 번영의 공간으로 다시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을 민주주의에 더 걸맞은 공간으로 옮기고, 용산을 군대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은 바람직합니다. 문제는 윤 당선자가 이 중대한 이슈들에 대해 과연 깊이 생각했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쟁점들을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하느냐는 것입니다. 윤 당선자 이후의 다른 대통령들이 이 결정을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현재 시민과 언론은 대통령실 이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내용과 절차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20세기에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드문 사회입니다. 그런데 그 훌륭한 변화를 이끈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제 막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 윤 당선자가 그 점을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는 대통령 개인에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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