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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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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쓰레기통에 던지기 전에

등록 2021-07-30 16:20 수정 2021-08-03 09:22
1374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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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제로 한 권을 만드는 특별한 잡지 통권5호의 주제는 ‘쓰레기’입니다. 한 달간 기자들이 2인1조로 나뉘어 재활용쓰레기, 음식물쓰레기, 일반쓰레기 등 생활쓰레기를 쫓아 재활용 선별장, 재생원료 공장, 소각장, 매립지,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등을 누볐습니다.

저는 취재하기 앞서 뉴스룸을 둘러봤습니다. 책상 옆에 놓인 개인 쓰레기통에는 휴지와 볼펜, 일회용컵, 나무젓가락 등이 버려져 있습니다. 공용 책상에는 먹다 남은 과자 봉지가 있고, 공용 프린터에는 누군가 출력하고 찾아가지 않은 자료가 널려 있습니다. 이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될까 궁금했습니다.

한겨레신문사 건물(9개층)을 청소하는 업체 ‘동남’의 하루를 따라가보기로 했습니다. 2021년 7월13일 0시 신진섭(46) 대표가 출근해 신문이 찍혀 나오는 1층 주차장에 상자와 포대, 하늘색 큰 통을 놓습니다. 각 층에서 나오는 재활용쓰레기를 △흰 종이 △색깔 있는 종이 △두꺼운 종이 △플라스틱 △비닐 △병 등으로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신문사라 종이가 많이 나오는데 흰 종이와 색깔 있는 종이(신문지 등)는 고물상에 팔 때 가격 차이가 나서 따로 분리합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도시락과 배달음식 용기, 일회용컵이 쓰레기로 많이 나온답니다.

새벽 1시, 3시, 5시에 각각 출근해 한두 개층을 맡아 청소하는 노동자들도 1층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재활용쓰레기를 분리했습니다. 이름을 밝히거나 사진을 찍지 않는 조건으로 동행취재를 허락받았습니다. 먼저 바퀴가 달린 하늘색 통을 끌고 각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개인 쓰레기통에 담긴 쓰레기를 한데 모읍니다. 엘리베이터 앞 작은 공간에 여러 개의 상자를 놓고는 쓰레기를 분류합니다. 모든 쓰레기는 예외 없이 사람의 손을 거칩니다. 27도 넘은 열대야인 이날, 흰 장갑과 목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쓰레기를 하나하나 들어서 종이·플라스틱·비닐 등으로 나눕니다. 컵라면 수프 봉지까지 비닐류로 분리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컵라면이나 일회용컵, 도시락은 씻어서 내놓지 않아 일이 더뎠습니다. 내용물을 휴지로 닦아내거나 화장실에 가서 버리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음식물이 담겼던 쓰레기통도 잔여물이 있을까봐 닦아냈습니다.

“커피는 괜찮은데 과일주스, 밀크셰이크 이런 것이 문제예요. 찌꺼기가 바닥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아요. 여름에는 음식물이 금방 상해서 점심때 먹은 도시락에서도 쉰내가 나죠.” 먹고 마시고 바로 씻어서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에 넣었다면 덜 수고로웠을 텐데, 제 행동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플라스틱류와 비닐류를 분리해 배출하도록 전용수거함이 있지만 일반쓰레기통에 뒤섞인 재활용쓰레기가 더 많습니다. 신문지도 모아놓는 수거함이 따로 있는데 이것저것 다 들어가 있습니다. 꽁꽁 묶어놓은 검정 비닐봉지가 나왔습니다. 뜯어보니 수박 껍질에 플라스틱 접시, 종이컵 등이 한데 뭉쳐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손끝 야무지다고 칭찬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음식물·재활용·일반쓰레기로 분리해야 하는 지금은 아닙니다. “분리배출 못하면 비닐봉지에 넣지 말고 따로따로라도 버리면 좋겠어요. 쓰레기통에 던지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재활용쓰레기를 분리배출했더니 종량제봉투를 채운 건 화장실에서 쓴 핸드타월입니다. 아니, 분리배출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할까요? “신문사잖아요. 쓰레기 줄여야 한다고 기사 쓰면서 마구 버리면 안 되지요.” 18년간 한겨레신문사 건물 청소를 맡아온 신진섭 대표의 말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침 6시께 청소 현장 취재를 마치며 “(분리배출을 잘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더니 그가 오히려 위로해줍니다. “옛날보다 훨씬 좋아졌고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요. 용기가 나서 물었습니다. “당장 고쳤으면 하는 게 있나요?” “개인 쓰레기통을 없애는 거요.” 제 책상 옆 개인 쓰레기통이 떠올랐습니다. 열 걸음만 움직이면 뉴스룸 공동 쓰레기통과 재활용 분리수거함이 있는데도 습관처럼 쓰던 것입니다.

뉴스룸에서 나온 쓰레기의 운명을 알게 된 이상 가만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고한솔·방준호 기자가 책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등을 참고해서 ‘친환경 일터 만들기 수칙’을 세웠습니다. ①인쇄할 때는 한 장에 두 쪽, 양면 인쇄 ②스테이플러 대신 클립 사용 ③흰 종이, 색깔 있는 종이, 두꺼운 종이로 분리배출 ④개인 쓰레기통 사용 금지 ⑤배달음식 용기, 종이컵 등은 씻어 배출 ⑥텀블러·손수건·수저 ‘필수품 3종 세트’ 구비 ⑦물티슈 대신 걸레 사용 ⑧스팸메일 지우기, 동영상 자동재생 차단 등 디지털 탄소발자국 감축.

하지만 습관은 끈덕집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일회용 플라스틱컵에 받고 컵홀더까지 자연스레 끼웁니다.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는 핸드타월을 뽑아서 물기를 없앱니다. 팩에 꽂힌 빨대로 음료를 쪽 빨아먹습니다. ‘제로웨이스트-21’ 대화방에는 실패담만 쌓여 “고해성사의 장” “자수 퍼레이드”라고들 푸념했습니다.

맞습니다. 제로웨이스트 2주,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듯합니다. 내 쓰레기를 집어 닦고 모으는 손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더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을 겁니다.

통권5호는 생활쓰레기가 우리 집을 나서서 마주하는 일을 152쪽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재활용쓰레기·음식물쓰레기·일반쓰레기가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그 여정을 쫓다보니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데 때론 헷갈립니다. 고추장, 된장은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에서 골칫거리인데, 소각장에서도 손사래를 칩니다. 작은 플라스틱도 재활용 선별장에서 선택되지 못하는데 소각장도 그리 반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쓰레기 관련 정보가 늘어갈수록 뚜렷해지는 게 있었습니다. 쓰레기양을 최소화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쓰레기 로드(여정)’로 떠나 ‘쓰레기 TMI(너무 과한 정보)’를 얻고, 결국 ‘쓰레기 제로(없애기)’에 도전하는 거죠. 독자 여러분, 이제 쓰레기 여정을 시작해볼까요.

덧붙임. 통권5호는 자원을 절약하려는 작은 실천을 합니다. 본문 글씨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인쇄잉크 사용이 덜한 나눔명조에코를 사용합니다. 색채도 절제했습니다. 기본 요소는 흑백으로, 인포그래픽은 색채를 두 개로 제한해 구성했습니다. 통권5호는 합본호(제1374·1375호)입니다. 한 주 쉽니다. 정기구독자는 한 주 뒤 제1376호에서 뵙겠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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