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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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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두기’ 단계 올리면…

국민의힘 전당대회 4파전
채 상병 특검 받고 김건희 특검 거부하며 ‘윤심 줄타기’하는 한동훈의 미래는
등록 2024-06-28 21:47 수정 2024-06-29 18:59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한 윤상현 의원(앞줄 왼쪽부터),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2024년 6월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모임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한 윤상현 의원(앞줄 왼쪽부터),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2024년 6월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모임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7월23일 열릴 예정인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4파전으로 치러진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나경원·윤상현 의원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정치권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인물은 한 전 위원장이다. 그는 6월23일 “제가 당대표가 되면 국민의힘에서 진실 규명을 할 수 있는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히며 본격적으로 ‘반윤석열’ 깃발을 들었다. 이에 다른 3명의 당권주자가 일제히 비판에 나서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한동훈’ 대 ‘비한동훈’ 구도가 형성됐다.

‘한동훈 대 비한동훈’ 구도

한 전 위원장이 ‘여당발 채 상병 특검법’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은 무엇보다 이 사건을 그대로 덮고 가기엔 국민의힘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이었다. 이후 총선에서 압도적인 의석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채 상병 특검법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수세에 몰린 국민의힘으로서는 이를 방어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국방부 관계자들의 통화 내역이 공개되는 등 대통령의 직접 연루 정황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정면 대결’만이 이번 파고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특검 수용론에 경쟁주자인 나경원 의원이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자, “합리적 대안 제시 없이도 이 논란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순진한 발상”이라고 받아친 모습에서 여당 당권주자로서의 위기감이 엿보인다.

물론 이번 승부수의 가장 큰 목적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다. 한 전 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당권 레이스’라기보다는 ‘대권 레이스’에 가깝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지배적인 평가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한 전 위원장으로서는 지지율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윤 대통령과의 거리두기 없이는 미래 권력으로서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다만, 한 전 위원장은 ‘채 상병 특검’은 수용하면서도 ‘김건희 특검’에는 반대 입장을 밝혀 임기 3년이 남은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레드라인’은 넘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문제는 국민의힘 지지층이 이러한 한 전 위원장의 승부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것에 대해 ‘배신자 프레임’에 휘말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채 상병 특검 수용론은 전체 국민 차원에서는 히트를 쳤지만 당원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국민의힘 지지층 안에서도 채 상병 특검을 찬성하는 여론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짚었다.

영남 지역과 수도권 당원 규모 비슷

그러나 아직까지 당내에서는 채 상병 특검 수용 이후로도 한 전 위원장을 향한 지지율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 실망한 당원들의 표심이 달라질 수 있지만 ‘한동훈 대세론’이 쉽게 깨지긴 힘들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여당이 대통령에게 꼼짝도 못하다가 이 꼴이 났다. 대통령과 결을 달리 가지 않으면 또 죽을 수밖에 없다”며 “당이 바뀌어야 하는데 (윤심을 표방한) 원희룡 전 장관의 경우에는 한계를 못 벗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됐던 2021년 전당대회 이후 국민의힘의 당원 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한 전 위원장에게 유리한 요소다. 국민의힘 핵심 당직자는 “2021년 전당대회 이후 대선을 거치면서 당원이 2.5배 늘었다. 현재 영남 지역 당원이 티케이(TK)·피케이(PK) 합쳐서 약 40%인데 (채 상병 특검 수용에 긍정적인) 수도권 당원도 40% 정도 된다”며 “2023년 전당대회 때 안철수 후보가 23%, 천하람 후보가 15%를 얻었는데 이들에게 표를 던졌던 당원들이 이번에는 한동훈 전 위원장에게 투표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는 결선 없이 한 전 위원장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채 상병 특검 수용을 밝힌 이후에도 한 전 위원장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뉴스핌>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6월24~25일 전국 만 18살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64.7%의 선택을 받았다. 2·3위인 원희룡 전 장관(15.2%), 나경원 의원(8.5%)과의 격차가 상당하다. 미디어토마토가 같은 기간 전국 만 18살 100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한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60.2%의 지지를 받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한 전 위원장과 경쟁하는 원희룡 전 장관과 나경원 의원의 리더십이 그리 견고하지 않다는 점도 ‘한동훈 대세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나 의원의 경우 애초 친윤계(친윤석열계)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무계파’를 강조하며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나 의원은 친윤의 지지를 받고 싶으면서도 공개적으로 손을 잡는 모습은 꺼렸다”며 “가죽은 갖고 싶은데 호랑이는 무서워하는 상황에서 원 전 장관이 (친윤계의 지지를 받고) 나와버려 애매한 포지션이 됐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나 의원의 ‘무계파 전략’으로는 전당대회 분위기를 주도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친윤계의 지지를 등에 업은 원 전 장관은 6월23일 출마 선언에서 “저는 대통령과 신뢰가 있다”며 ‘윤심’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2023년 전당대회에서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 당대표로 당선된 김기현 전 대표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사퇴한 뒤 친윤계의 당내 파워가 급속도로 쪼그라든 상황에서 이들이 어느 정도의 조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총선 참패 이후에도 국정 쇄신을 거부하는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도 원 전 장관에게 불리한 지점이다. 게다가 나 의원과 원 전 장관이 ‘윤심’으로 기운 당원들의 표를 나눠 가질 것이라는 전망도 이들의 당선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정치 초보자’ 한계가 본격 노출될 가능성

한 전 위원장은 막 시작된 당권 레이스에서 현재까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녹록지 않은 과제가 쌓여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정치력을 검증받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 초보자’인 한 전 위원장의 한계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엄경영 소장은 “당내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지를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승부수를 띄운 채 상병 특검의 경우 친윤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어떻게 관철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전 위원장의 채 상병 특검 수용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먼저 지켜보자는 당론을 엎어버린 것”이라며 “그렇다면 당론이 애초 잘못됐다는 것을 먼저 설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면마다 펼쳐질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도 한 전 위원장을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출마 선언에서 그는 채 상병 특검은 받되 김건희 특검은 거부하는 방식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선보였다. 그는 6월24일 채널에이(A)에 출연해 윤 대통령을 “박력 있는 리더”라고 추켜세우며 ‘반윤석열’ 이미지를 희석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에서는 “이제 반윤이 아니라 절윤”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국민적 비판이 높은 사안에 대해선 ‘반윤석열’을 표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당 대표로서 국정 운영을 매끄럽게 지원하는 정치적 내공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과의 협치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총선 당시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웠던 한 전 위원장이 과연 야당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전 위원장은 6월8일 페이스북에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등의 혐의로 징역 9년6개월을 선고받은 판결을 언급하며 “자기 범죄로 재판받던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 그 형사재판이 중단되는 걸까”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한 공세에 나섰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부각하며 ‘헌법 제84조 이슈’를 가장 먼저 공론화한 것이다. 박상병 평론가는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면 이재명 전 대표를 때리는 데 더욱 앞장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야 관계는 지금과 똑같을 거다. 협치라는 건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선 성공해도 험로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한 전 위원장으로서 이번 전당대회는 양날의 검이다. 당대표 도전에 실패할 경우 당분간 재기를 노리기는 쉽지 않다. 당대표에 당선되더라도 당내 지지 기반 확보부터 시작해 각종 의혹에 휘말린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야당과의 협치 등 내공이 깊은 정치인도 감당하기 힘든 과제를 무리 없이 수행해야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된다.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한동훈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은 이유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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