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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회 기고] 검찰 개혁을 해체하면 보이는 것들

‘개혁’이라는 단어가 가린 검찰 개혁, 구체적인 과제 찾으려면 해체해봐야
등록 2020-12-12 13:57 수정 2020-12-13 01:43
12월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찬성 187, 반대 99, 기권 1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동취재사진

12월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찬성 187, 반대 99, 기권 1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동취재사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권한 다툼이 길어지면서 피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동시에 두 사람의 쟁투가 정작 사안의 본질인 검찰 개혁 이슈를 덮어버리고 감정싸움으로만 흐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월10일 국회 본회의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가 야당 반대에도 처장 후보를 추천할 수 있게 됐다. 첩첩산중 검찰 개혁을 향한 길에서 작은 능선 하나를 넘은 셈이다. 2011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펴낸 김인회 인하대 교수가 현시점에서 제대로 검찰 개혁을 하는 데 필요한 접근법과 방법론을 제시한 글을 보내왔다. _편집자

검찰 개혁은 문득 되는 것이 아니다. 열렬히 믿는다고, 진정으로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가 없는 믿음은 불안하다. 맹목적이다. 검찰 개혁을 완성할 하나의 묘수가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수많은 과제로 구성된 검찰 개혁을 하나의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도박일 뿐이다. 검찰 개혁을 일거에 해결하겠다고 하면 개혁 주체는 한 명으로 축소되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구경꾼이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혁 도중에 순교자가 나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의 지혜와 노력이 모여야 검찰 개혁은 완성될 수 있다.

자동차 개혁은 부품을 새롭게 하는 것

검찰 개혁은 정확하게 말하면 실체가 없다. 하나의 개념일 뿐이다. 이 말은 우리가 직접 그것을 달성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자동차나 휴대전화를 개혁해 획기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자동차를 개혁할 수는 없다. 개혁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엔진, 브레이크, 바퀴, 모터, 디자인 등 구성 부분이다. 이 구성 부분 역시 부품으로 해체된다. 엔진이나 브레이크에 들어가는 부품이 어디 한둘인가? 새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엔진이나 브레이크에 들어가는 부품일 뿐이다. 물론 어떤 자동차를 만들 것인가를 두고 정확한 방향 설정은 필요하다. 설계도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방향 설정과 설계도를 바탕으로 실제로 자동차를 개혁하는 것은 바로 새롭게 만든 조그마한 볼트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부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를 만든다.

검찰 개혁도 같은 원리다. 검찰 개혁의 목표는 분명하다. 검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다. 이를 통해 인권친화적이고 제한된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참고로 검찰은 인권 옹호 기관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공권력이다. 인권 옹호는 법원과 변호사 몫이다),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검찰, 정치권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수사와 기소의 중립성을 보장받는 검찰이 우리 목표다. 이 방향은 옳다. 하지만 이 목표는 문득, 하나의 방법으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검찰 개혁을 해체해 부품을 찾아내고 그 부품을 개혁해야 한다.

해체하면 구체적인 방법, 구체적인 개혁과제가 보인다. 개혁과제를 실행하는 주체 역시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수준에 따라 주체가 다양해진다. 방향 설정은 행정부 몫이다. 입법은 국회의원 몫이다. 시행령은 다시 행정부 몫이다. 시행규칙과 예규, 훈령은 장관 몫이다. 여기까지는 굵직한 개혁이다. 이후 굵직한 개혁의 결과를 현장에 안착시키는 것은 현장 실무가 몫이다. 이때야 비로소 국민이 개혁의 효과를 체험한다.

현장의 개혁에서 실무가 존중해야

법률은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장 실무가를 통해 국민을 만난다. 개혁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실무가의 노력은 과소평가되면 안 된다. 국회의원은 입법에서는 주도권을 쥐지만 현장의 개혁에서는 실무가를 존중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과 주체가 정해지면 해당 수준의 개혁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보인다. 이렇게 검찰 개혁의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언제 할 것인지가 드러난다.

검찰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검찰 개혁이라는 개념을 해체해야 보인다. ‘해체해서 보기’는 각묵 스님이 초기 불교를 설명하면서 강조하는 표현이다. 철학적인 표현이지만 사회과학적 방법론이기도 하다. 현실을 설명하는 데 매우 훌륭한 방법론이다.

검찰 개혁을 해체하면 무엇이 보이는가. 일단 크게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무부의 탈검찰화라는 제도 개혁과 실무현장의 개혁이 보인다. 이 개혁과제도 다시 나뉜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가 가장 중요하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나타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①수사 절차의 인권친화적 개혁 ②검경의 상호협조 관계 ③검사의 경찰에 대한 견제장치 마련이라는 과제로 나타난다. 이 중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 수사 절차의 인권친화적 개혁이다. 수사 절차는 형사소송법이나 대통령령에 반영돼야 하는데 여전히 미진하다. 피의자를 수사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분해해 단계마다 피의자 인권을 보장하는 절차를 법률이나 시행령에 규정해야 한다. 지금은 이 부분이 강조되지 않는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핵심 과제를 놓치고 있다.

검경 사이 문제는 경찰 개혁 문제를 제기한다. 검찰 권한이 경찰에 이전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경찰국가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경찰 개혁도 해체해서 봐야 한다. 경찰 개혁은 자치경찰 개혁이 핵심이다. 지방분권 시대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자치경찰이 필요하다. 자치경찰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검찰의 문제를 경찰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훨씬 악화한 형태의 문제로 말이다. 경찰 개혁을 덩어리로 이해하면 무늬만 자치경찰인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경찰 권한을 분산하지 못하고 중앙집권적인 국가경찰 시스템을 그대로 두면서 경찰 개혁을 했다고 하면 안 된다.

공수처 개혁도 같다. 지금은 당장 공수처장 임명과 출범이 중요하지만 공수처 설치는 당연히 공수처의 수사 절차, 다른 기관과의 협조, 다른 기관에 대한 견제와 다른 기관에 의한 견제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이런 세부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때에는 공수처가 너무 큰 권력으로 보이고 어떤 때에는 너무 작은 권력으로 보인다. 해체해서 보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화이트칼라’ 범죄 전문 수사기관 필요

공수처와 관련해서 지적해야 할 점은 엘리트 부패 카르텔 범죄다. 날로 심각해지는 엘리트 부패 카르텔의 범죄에 대한 대응이 절실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경우 권력형 비리를 주로 수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그만큼 화이트칼라 범죄, 금융 범죄, 증권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이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 화이트칼라 범죄, 금융 범죄, 증권 범죄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수사·기소 기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 범죄에 대해 여러 감독기관을 설치했으나 실효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자본이 이미 이들 감독기관을 포섭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감독기관, 수사기관, 기소기관의 협조를 바탕으로 한 더욱 세밀하고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들 범죄에 대해 전문성을 쌓은 검사, 경찰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실무와 현장의 개혁 역시 해체해야 정확히 보인다. 그냥 실무와 현장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당장의 일이 바쁘기 때문에 개혁에 시간을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 우선 현장 실무가에 대한 대대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검찰 개혁의 의의, 구체적인 개혁과제, 당면한 문제점 등에 대한 폭넓은 교육이 필요하다.

현장 실무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현장의 변화는 어렵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작지만 구체적인 개혁과제에 대한 현장 실무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모아야 하고 모범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확산시켜야 한다.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를 예상하고 매뉴얼도 만들어야 한다. 새롭게 개혁과제를 발굴하고 실천하는 실무가에게는 포상도 필요하다.

윤리 교육은 특히 필요하다. 성공과 윤리가 분리된 현재의 구조에서는 개인이 좋은 삶을 살 수 없다.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도 좋은 공동체로 만들 수 없다. 좋은 삶, 도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윤리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윤리 교육을 통한 개인의 변화가 없으면 개혁은 새로운 업무, 새로운 짐일 뿐이다. 개혁과 자신의 삶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다만 너무 해체해버리면 모든 일이 개혁과제가 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검찰 개혁과제라고 하면서 검찰 개혁을 방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때는 선택의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의 일이 개혁과제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 할 일을 먼저 잘 고르는 것이 필요하다. 구별 기준은 검찰 권한 분산과 견제라는 목표에 도움이 되느냐다. 그렇다면 검찰 개혁과제로 열심히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분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과제가 구체적일수록 높아지는 개혁 가능성

검찰 개혁을 해체하면 구체적인 과제도 보인다. 구체적인 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할 것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크고 작은 과제들뿐이다. 그리고 이 과제에는 주인공이 따로 있다. 장관과 의원, 검찰총장과 지검장 그리고 평검사, 검찰수사관, 경찰청장과 경찰에 각각의 개혁과제가 있다.

개혁과제가 구체화하면 검사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다. 피의자에게 휴식시간을 주고, 과도한 압수수색을 자제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않고 경찰을 존중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경찰과 협조하면서도 서로 견제하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검찰 개혁이 해체돼 개혁과제가 구체화하면 국민도 구체적으로 비판하게 된다. 모든 검사와 모든 수사를 한꺼번에 한 덩어리로 비난하지 않게 된다.

검찰 개혁을 한 방에 문득 달성하는 묘수는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개혁과제를 더 구체적으로 찾아내고 집중할수록 개혁 성공 가능성은 커진다. 개혁과제를 더 구체적으로 찾아내면 개혁 주체가 더 많아진다. 개혁 주체가 많아지면 개혁 성공 가능성은 커진다. 해체해야 실체가 보인다. 해체해야 할 일이 보인다. 해체해야 남을 존중하게 된다. 검찰 개혁을 해체해서 구체적인 개혁과제를 발굴하고 공유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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