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휴일이자 말복을 맞은 2022년 8월15일 오전, ‘모란 불꽃 야시장’이란 주황색 입간판이 세워진 빈터로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곳은 ‘개 식용의 메카’로 불리는 경기도 성남 중원구 모란시장으로 가는 들머리다. 상복에 영정까지 든 이들은 동물권단체인 동물해방물결과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 회원이다. 개 식용 철폐에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도 참가했다.
이들은 ‘2022 복날추모행동’이라 이름 붙인 의식을 치르기에 앞서, 건강원·보신탕 등의 간판이 즐비한 시장 앞 거리에 3.5m 높이의 ‘복날 추모탑’을 세웠다. 뜬장(지면에서 떨어진 바닥까지 철조망으로 엮어 배설물이 그 사이로 떨어지도록 만든 개의 장)을 형상화한 추모탑을 향해 선 이들은, 먼저 <암암리 매매, 살해되는 개들: 성남 모란시장의 여전한 실체>란 영상을 함께 봤다. 이 영상은 2022년 2월부터 6월까지 ‘모란시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국적 식용 개의 밀거래와 불법 도살·유통 실태’를 잠입 촬영한 것이다. 그리고 “모란시장 업주가 운영하는 불법 도살장에서는 산 채로 철망에 욱여넣어진 개들이 다른 개가 보는 앞에서 전기 쇠꼬챙이에 찔려 감전돼 죽어갑니다. 이는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 명백한 불법적 학대 행위입니다”라는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의 발언과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어머니와 함께 참여한 임이안(성남 양영초 6년) 학생은 추모탑에 흰 국화와 함께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아이들(개)’ 그림을 놓았다. 이 그림은 동생과 그의 친구가 함께 그린 것이다. 임이안 학생의 반려견은 2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현재는 떠돌이 개가 낳은 강아지를 동물보호단체에서 입양해 반려하고 있다. 차례대로 추모탑에 꽃과 편지 등을 바친 이들은 복달임 보양식 대신 버섯과 한약재로 만든 비건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이들의 헌화가 이어지는 동안 시장 앞을 지나던 한 어르신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게 동물이 좋으면 동물하고 살아, 이것들아. 사람하고 살지 말고.” 이미 동물과 살고 있고, 사람과도 살고 있는 이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추모행동이 끝난 뒤 돌아본 시장 정육냉장고 안에는 고기로 둔갑한 개들이 벌겋게 누워 있었다.
성남=사진·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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