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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의 ‘몽니’

플랫폼운송사업 논의 도중 ‘내년 1만 대 운행’ 계획 발표

타다, 국토부 면허총량제에 반대하며 사실상 ‘지연작전’
등록 2019-10-12 05:57 수정 2020-05-07 01:04
10월7일 서울 성수동 패스트파이브에서 열린 타다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박재욱 VCNC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VCNC 제공

10월7일 서울 성수동 패스트파이브에서 열린 타다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박재욱 VCNC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VCNC 제공

“타다, 2020년까지 차량 1만 대, 드라이버 5만 명 운행.”

10월7일 ‘타다’(기사 포함한 렌터카 실시간 호출 서비스)를 운영하는 VCNC가 타다 출시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타다의 현재 운행 대수는 1400대로, 내년 말까지 8600대를 더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기업이 사업계획을 밝히는 것을 크게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자신들의 경영 판단에 따른 목표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는 ‘기업의 자유’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다가 밝힌 사업계획은 정부와 택시업계, 모빌리티 업계까지 발칵 뒤집어놨다. 국토교통부는 타다가 사업 운영의 근거를 두고 있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법) 시행령을 개정해 타다를 ‘불법화’하겠다고 나섰고, 택시업계 역시 반대 집회를 다시 여는 등 반격을 시작했다. 타다의 사업계획이 욕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택시-모빌리티 갈등 핵심은 ‘면허’

2018년 말 카카오모빌리티(이하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시작된 택시업계와 모빌리티 업계의 갈등은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 법인택시 노사와 개인택시 단체, 카카오가 참여한 사회적 대타협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지난 3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기구는 △카풀은 출퇴근 시간대만 한정 △법인택시 기사 월급제 도입 △택시와 모빌리티업체가 내놓는 ‘플랫폼 택시’ 출시 등에 합의했다. 카풀 제한과 월급제 시행 관련 여객법 개정안은 8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카카오와 합의한 택시업계의 화살은 타다를 향했다. 타다(베이식)는 모회사인 렌터카 기반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쏘카의 11인승 승합차(카니발)를 기사를 포함해 실시간 ‘대여’해주는 서비스다. 11인승 이상 승합차를 대여할 경우 운전기사를 알선할 수 있다는 여객법 시행령 예외조항에 근거를 둔 것이다. 타다는 큰 차량과 쾌적한 실내, 승차 거부 없는 강제 배차, 친절한 기사 서비스를 바탕으로 승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택시업계는 ‘여객법의 면허도 없이 유상운송행위를 한다’며 반대에 나섰고, 5월엔 개인택시 기사 1명이 ‘타다 반대’를 내세워 분신하기도 했다. 여객법 위반이라는 고소, 고발도 잇따랐다.

택시업계와 모빌리티 업계의 갈등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면허’다. 카풀과 타다는 여객법상 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채 면허사업자인 택시와 유사한 유상운송행위를 여객법의 관련 규제 없이 했다. 택시업계는 이미 자신들의 자본을 투자해 면허를 취득한 뒤 여객법의 관련 규제를 받으며 사업한다는 점에서 반발하는 것이다.

국토부가 택시업계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택시를 넘어서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내놓도록 대안을 만드는 것도 ‘면허’에 근거한다. 7월17일 국토부가 발표한 ‘혁신성장 및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7·17 대책)은 택시 면허의 총량을 정부가 유지·관리하면서, 과잉 공급된 택시 감차분과 개인택시 거래분(한 해 약 5천 대)에 해당하는 면허를 타다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가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렇게 신설되는 ‘플랫폼운송사업자’는 정부에 일시금 또는 월납 방식의 기여금을 내고 사업 허가를 받은 뒤, 규제에서 자유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국토부는 택시업계, 모빌리티 업계, 관련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실무기구’를 구성해 세부 방안을 마련한 뒤 이른 시일 안에 여객법을 개정할 방침이었다.

지난해 총량제 제안하더니 이번에는 반대

타다는 국토부가 열었던 두 차례 실무기구 협상에서 국토부의 7·17 대책에 부정적 태도를 보여왔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면허총량제다. 플랫폼의 특성상 승객 수요에 따른 탄력적인 차량 공급이 필요한데, 총량을 정해놓고 기여금을 내면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 이유다. 박재욱 VCNC 대표는 10월7일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어느 국가를 봐도, 모빌리티 서비스의 총량을 사전에 정해놓는 경우는 없다”며 “뉴욕도 총량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사후 규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7·17 대책에서 면허총량제를 선택한 것은 박 대표가 예로 들었던 미국 뉴욕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뉴욕은 우버·리프트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 업체를 운송네트워크사업자(TNC)로 지정하는 등 제도권 안으로 들여왔으나, 우버 대수가 갈수록 늘면서 수입이 줄어든 택시기사들이 잇따라 자살하고 교통체증과 환경오염 등 사회문제가 생겼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TNC 총량 규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토부가 총량제를 꺼내든 배경도 택시업계와의 갈등을 비롯해 사회문제가 확산되는 걸 방지하려던 것이었다. VCNC의 모회사인 쏘카는 지난해 카풀 사태 때 택시 대수와 연동한 ‘카풀총량제’를 제안했는데, 이번엔 총량제에 반대하는 셈이다.

국토부 “갈등 재현하는 부적절한 조처”

업계와 국토부는 타다의 이런 태도를 두고 ‘시간 끌기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내년에는 21대 총선이 예정돼, 원 구성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법안을 논의하는 시점은 내년 하반기가 된다. 올해 안이라는 때를 놓치면 모빌리티 업체들이 대책에 근거한 사업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국토부 관계자도 “법제화가 안 된 상황에서 타다가 지속적으로 차량 대수를 늘리고 법제화 이후에 늘어난 대수를 바탕으로 추가 면허량을 요구하면, 다른 모빌리티 업체에 돌아갈 면허는 사라지게 된다”며 “현실적으로 가능하면서 필요한 면허량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차일피일 논의를 미루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말했다.

타다의 사업계획 발표 이후, 국토부는 “새로운 플랫폼 운송사업 제도화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타다의 1만 대 확장 발표는 그간의 제도화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사회적 갈등을 재현시킬 수 있는 부적절한 조처”라며 “타다 서비스의 근거 조항인 여객법 시행령을 개정해 예외 허용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타다에 사업을 못하게 하겠다는 신호다. 만약 국토부가 시행령을 개정하면, 타다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파’ ‘차차’ 등도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에 타다는 이튿날 “현행 법령에 따라 서비스를 진행해왔으며 앞으로 바뀌게 될 법과 제도를 준수하며 사업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수습에 나섰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7·17 대책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제도적 틀이 마련돼야 불확실성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다. 타다 때문에 논의가 미뤄지면 다른 사업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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