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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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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다만 최선을 다할뿐

이상반응 막을 순 없지만 대처 시스템 구축, 지금 팬데믹 종식에 유일한 대응책
등록 2021-06-05 12:05 수정 2021-06-10 01:41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제공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제공

2011년 개봉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은 갑작스레 출현한 신종 감염병으로 전세계가 팬데믹에 놓인 상황 속에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입니다. 영화 속 많은 장면이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사는 우리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 개봉 10여 년 만에 다시 주목받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국은 접종 유지, 네덜란드는 접종 중단

영화에서도 이 무시무시한 괴질에 대응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백신입니다. 수많은 연구자의 노력과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백신은 효과는 매우 좋았으나 결정적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생산량이 요구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였죠. 전세계 백신 생산 공장을 모두 가동해도 78억 명에 이르는 인류 모두에게 한꺼번에 접종할 양을 만들어낼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260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될 수도 있는 상황에 사람들의 공포는 극에 다다랐습니다.

과연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할까요? 영화에서는 이를 ‘추첨제’로 해결합니다. 매일같이 로또 번호를 뽑듯이 무작위로 날과 달을 뽑아서 그날이 생일인 사람에게 먼저 백신 접종권을 줍니다. 무작위 추첨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한 당첨 확률을 적용하는 게 그나마 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종종 드라마를 따라가기도 합니다.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갖도록 도와줄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드디어 2021년 2월26일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다릅니다. 영화에선 백신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서라도 백신을 맞으려 했지만, 현실에선 백신 맞을 기회가 있음에도 이른 시기에 개발된 백신에 대한 못 미더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접종을 주저하기도 하니까요. 우리보다 먼저 백신을 접종한 외국에선 백신과 연관됐을지 모르는 부작용이 보고되고 그 대응도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 각국의 대응입니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 RA)은 2020년 12월9일부터 2021년 3월24일까지 영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례 181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접종자 가운데 총 30명에게 혈전이 발생했고 이 중 22명에게서 뇌정맥동혈전증(CVST), 즉 뇌에서 심장으로 돌아가는 혈액이 지나는 길인 뇌정맥에 혈전이 생겨 여러 뇌 기능에 손상을 주는 질환이 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목숨을 잃은 이는 7명이고요. 여기서 주목한 점은 이 동일한 현상을 두고 유럽 각국이 보인 반응입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60살 미만 연령의 접종을 일시적으로 중단했습니다. 코로나19 치사율은 60대 이상에서 월등히 높지만, 치명적인 백신 접종 뒤 이상반응은 오히려 60대 이하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니, 일단 명확한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치명적인 백신 이상반응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일시적으로 60대 이하에 접종을 중단하라는 권고를 내렸죠. 반면 영국은 부작용 발생 보고가 있었음에도 접종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접종하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 더 크고, 백신 접종 뒤 발생한다는 뇌혈전이 오히려 백신을 맞지 않았을 때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받은 디지털 접종 증명서. 이은희 제공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받은 디지털 접종 증명서. 이은희 제공

혈전, 다른 이유로도 발생하는 확률과 비슷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은 각각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들과 백신 접종자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백신 접종자는 100만 명 중 4명꼴로 뇌정맥동혈전증이 나타났고, 코로나19 환자는 100만 명당 39명의 확률로 같은 증상이 나타나 위험성이 10배 가까이 더 높았다고 했습니다. 영국처럼 감염률이 높고 대규모 질병이 퍼지는 곳에선 오히려 백신 접종을 거부하다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동일한 치명적인 이상반응을 겪을 확률이 더 높으니 백신을 맞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 거죠. 같은 현상을 두고도 어떤 근거로 이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대응책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코로나19도 무섭지만 백신도 반드시 안전한 것은 아니라니 이걸 꼭 맞아야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백신 접종 뒤 이상반응이 나타났다고 그것이 백신과 관계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선 사례의 뇌정맥동혈전증은 코로나19에 걸렸거나 백신을 맞은 이들에게도 나타나지만 다른 종류의 감염이나 에스트로겐 성분이 든 약물, 임신이나 탈수, 혈액응고 장애, 기타 알 수 없는 이유로도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 보고된 증상이 아니라 이전에도 다른 이유로 가끔 보고된 증상으로 발생 확률은 100만 명 중 5명입니다. 이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나타나는 확률과 비슷하기에 정말 백신이 원인이 되어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겼는지, 백신 접종 전후에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이런 불행한 결과가 나왔는지 현실적으로 확실히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마다 건강 상태가 다르고 신체적 활성도가 차이 나며 면역체계에서 다른 민감도와 반응도를 보이기에 100% 안전한 백신은 만들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저는 지난 주말 코로나19 예방 백신을 맞았습니다. 40대에 의료진도 아니고 만성질환도 없기에 접종 순서가 늦어, 2021년 말이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반쯤은 포기하고 마스크나 열심히 챙기자고 마음먹던 때였습니다. 잔여 백신을 신청해 접종받을 수 있음을 알고 이리저리 연락한 결과, 운 좋게 주말 아침에 갑자기 취소돼 남은 백신을 접종할 수 있었지요. 백신을 맞는다고 하자 주변에선 부럽다는 반응과 동시에 백신 접종 뒤 이상반응에 대한 걱정도 많이 해줬습니다. 막상 병원에 가서 접종하고 접종 이후 시스템을 겪고 나니 백신 접종 뒤 이상반응 자체는 막을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이상반응 대처 시스템은 어느 정도 구축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상반응 덜한 게 노화의 증거?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지정된 병원에 가면 일단 신분증과 연락처를 확인한 뒤, 의사가 직접 기존 병력과 섭취 약물의 종류, 현재의 기본 몸 상태를 체크합니다. 이 상태에서 뭔가 의심스러운 현상이 발견되면 접종을 미루고, 다른 종류의 의학적 처치가 예정됐다면 2주 뒤 접종할 것을 권합니다. 최대한 백신 접종에 영향을 미칠 변수를 피하려는 거지요. 백신 접종을 마친 뒤에는 정해진 대기석에서 15분 정도 기다리며 급성 이상반응이 오는지 확인합니다. 심하게는 쇼크를 불러올 수도 있는 급성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는 대개 접종 즉시 나타나기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죠.

대기 시간 동안 숨이 가빠지는 등 급성 알레르기 증상이 없으면 일단 귀가합니다. 이때도 의사는 접종 8~10시간 이후부터 미열과 근육통, 오한 등을 동반한 몸살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우리 몸의 면역계가 백신으로 주입받은 바이러스 조각들을 인지해 대응하는 자연스러운 면역반응이니, 걱정하지 말고 소염 작용이 없는 해열진통제를 복용하라고 말해줬습니다. 흔히 ‘타이레놀’이라는 상표명으로 잘 알려졌지만, ‘아세트아미노펜 단일 성분’이라고 쓰인 해열진통제라면 뭐든 상관없다고요.

저는 남편과 함께 접종했는데 이후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남편은 접종 당일 밤부터 몸살 증상이 심해져 주말 내내 고생했지만, 저는 접종 부위만 좀 아팠을 뿐 별 증상 없이 주말을 넘겼으니까요. 실제 접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는 독감을 앓는 것처럼 심한 몸살로 고생했다 하고, 누구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접종 당일부터 증상이 나타나는 이도 있었고, 접종일엔 괜찮았는데 다음날 앓기 시작했다는 이도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증상의 정도와 반응 속도는 제각각이었지만 전반적으로 젊고 평소에 더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일수록 이상반응을 심하게 경험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상반응이 덜한 것이 노화의 증거라는 웃지 못할 소문도 퍼져나갔습니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한 몸살 증상은 임상시험 때부터 제기된 것으로 60~80%의 사람이 미열, 두통, 근육통, 오한 등을 겪었다고 보고됐습니다. 이는 2~3일 정도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고 쉬면 대부분 사라지는 일시적 증상이고, 몸살 증상 발생과 항체 형성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백신 접종 뒤, 주말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백신을 접종한 지 만 3일이 됐음을 알리고 이상반응이 있는 경우 당국에 알리도록 권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두통, 다리 부종, 가슴 통증, 숨가쁨 등 혈전이 생겼을 때 일어나는 증상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몸살 증상과 항체 형성 사이 인과관계 없어

현대의학의 한계상 모든 의약품과 백신의 안전성을 100% 담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유전적 특성과 면역학적 개별성이 달라, 모든 이에게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모든 이에게 시험해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설사 가능하더라도 그 자체가 모든 이에 대한 치료적 적응이 되므로 그 시점에선 안전성 시험이 아니게 됩니다. 모든 이상반응의 발현을 막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동안의 경험으로 최선의 대응법은 찾아냈습니다. 질병 감염의 고리를 끊기 위해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고, 백신 접종 전에는 건강 상태를 확인해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접종 후에는 면밀한 관찰과 적절한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우리가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대응책일 것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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