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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임팩트일까 꾸준함일까

프로야구 출범 40주년 맞아 ‘KBO 레전드 40명’ 선정, 그 속에 보이는 ‘숫자를 넘은 그 무언가’
등록 2022-08-25 15:10 수정 2022-08-25 23:38
강한 임팩트로 한국야구위원회 선정 레전드 40명에 이름을 올린 이상훈, 이종범, 백인천, 박철순(왼쪽부터). 김정효 기자. 한겨레 자료. 스포츠서울 제공

강한 임팩트로 한국야구위원회 선정 레전드 40명에 이름을 올린 이상훈, 이종범, 백인천, 박철순(왼쪽부터). 김정효 기자. 한겨레 자료. 스포츠서울 제공

인생은 임팩트일까, 꾸준함일까. 혹은 강렬함일까, 성실함일까.

난데없는 의문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레전드 40명 탓에 생겼다. 지금껏 발표된 레전드 선수 면면을 보면 둘로 나뉜다. 짧은 시간 아주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거나, 아니면 오랜 기간 일관된 활약을 보였거나. 전자의 경우 압도적 시즌이 있는 반면 통산 기록을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후자의 경우는 하나하나 시즌을 쌓아 올려 압도적 통산 기록을 만들어냈다.

21년 동안 기록 보유했던 낭만 야구의 상징

‘야생마’ 이상훈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실제 이상훈이 뽑혔을 때 골수 LG 팬인 한 지인은 “이상훈을 참 좋아하기는 하지만 레전드 40명에 들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고려대 4학년 시절 14타자 연속 탈삼진(춘계대학연맹전 성균관대전) 대기록을 세운 이상훈의 프로 초반은 엄청났다. 프로 데뷔 4년차(1995년) 때 29경기에 선발 등판해 12차례 완투(완봉 3차례)를 기록하면서 좌완 선발투수 최초로 20승(5패 평균자책점 2.01) 고지를 밟았다. 40년 프로야구 역사상 토종 좌완 선발 20승 투수는 지금껏 이상훈 외에 양현종(KIA 타이거즈)밖에 없다. 양현종이 2017년 20승을 올리기 전까지는 21년 동안 이상훈만이 유일하게 이 기록을 보유했다. KBO리그는 순수 선발승으로 20승을 채운 토종 투수조차 드문 편이다.

척추분리증, 손가락 혈행장애 증세 등으로 구원투수로 변신한 뒤에도 이상훈은 뛰어났다. 1997년 10승6패37세이브 평균자책점 2.11로 구원왕(47세이브포인트)에 올랐다. 피안타율은 0.187에 불과했다. 57경기 85⅓이닝 동안 탈삼진 103개를 엮어내면서 이닝당 평균 1.21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상훈은 일본 프로리그(주니치 드래건스)를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보스턴 레드삭스)에 진출하면서 한·미·일 3개국 프로야구 1군 마운드에 모두 선 최초의 한국 선수도 됐다.

이상훈을 이상훈답게 한 것은 야구장 안팎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이었다. 이상훈은 경기 후반 구원투수로 등판할 때마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마운드까지 뛰어갔다. “팬에 대한 예의 때문”이라고 했다. 더그아웃에서의 기타 연주로 생긴 이순철 감독과의 마찰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로 트레이드됐을 때는 몇 경기 등판 뒤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LG) 선수들을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는 이유로 깜짝 은퇴를 발표했다. 옛 동지들을 적으로 돌릴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고액 연봉을 포기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이상훈은 야구팬들에게 ‘낭만 야구’의 한 상징으로 회자된다.

여러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상훈의 통산 성적은 다른 투수 레전드보다 다소 떨어진다. 308경기 출장, 71승40패98세이브 평균자책점 2.56. 통산 100승도, 100세이브도 달성하지 못했다. LG의 또 다른 레전드 투수인 ‘노송’ 김용수와 비교하면 그 차이점이 보인다. 김용수의 통산 성적은 613경기 출장, 126승89패227세이브 평균자책점 2.98이다.

100경기 이상 4할 타율을 유지한 이종범

레전드 톱4에 선정된 이종범의 경우도 통산 타율이 3할을 넘지 않는다. 그의 통산 성적은 타율 0.297(6060타수 1797안타) 194홈런 730타점 510도루. 이 때문에 이종범의 전성시대를 보지 못한 팬이라면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란 말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참고로 동시대를 뛰었던 양준혁의 경우 통산 성적이 타율 0.316(7332타수 2318안타), 351홈런 1389타점이다. 결과론적으로 이종범은 3위로 선정됐고 양준혁은 4위 안에 들지 못했다.

통산 성적만 놓고 보면 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만 이종범은 한국 야구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1994년 타율 0.393을 기록했고 196안타, 84도루를 기록했다. 타율만 놓고 보면 KBO리그 유일한 4할 타자인 백인천(80경기 타율 0.412) 다음으로 가장 높은 기록이다. 시즌 100경기 이상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한 선수는 40년 프로야구 역사상 이종범뿐이었다. 84도루도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공격과 수비, 주루 능력까지 탁월하던 그였다.

이종범은 콘택트 능력뿐만 아니라 장타력까지 있었는데 1997년에는 이승엽(32개)에 이어 홈런 공동 2위(30개)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약화한 해태 타선 탓에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최다 고의 사구(30개)를 기록했다. 야구 전문가들은 일본 진출 첫해(1998년) 가와지리 데쓰로(한신 타이거스)가 던진 공에 맞아 오른쪽 팔꿈치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이종범이 엄청난 성적을 냈을 것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이상훈, 이종범 외에 백인천, 박철순 등이 통산 기록과는 무관하게 강한 임팩트로 레전드 40명에 이름을 올렸다. 백인천의 4할 타율과 함께 박철순의 단일 시즌 22연승은 지금껏 정복되지 않는 대기록이다. 박철순의 통산 기록은 76승53패20세이브 평균자책점 2.95다.

레전드 40명은 야구 전문가와 팬의 투표를 일정 비율로 합산해서 선정됐다. 모든 투표가 그렇듯이 감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통산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같은 누적된 객관적 자료로만 레전드를 뽑았다면 아마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명단이 작성됐을 것이다. 하지만 3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되는 야구라는 스포츠는 팬들의 일상과 함께하고 순간의 임팩트는 기억 속에 짙게 각인된다. 단순 숫자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숫자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 있다. 20년, 30년이 더 흘러 기억이 사그라지고 ‘임팩트’가 희미해졌을 때는 레전드 명단이 또 달라져 있을 터다.

강렬할 것인가, 성실할 것인가

글 마무리에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의문. 인생은 임팩트일까, 꾸준함일까. 조금은 다르게 접근해 우리는 타인에게 강렬함으로 기억되기를 바랄까. 아니면 성실함으로 각인되기를 바랄까. 이도 저도 아닌 듯해 참 슬픈 현실 같기도 하다. 다만 무미건조한 투명인간이 아니기를. 혹은 아주 심심한 인생은 아니기를. 그저 숫자로만 평가되지는 않기를.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인생 뭐, 야구’ 시즌2를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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