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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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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란 말인가, 익어가는 옥수수를

주말 농부가 주중에 내려가 딴 옥수수, 따서 넘기고 돈맛을 알게 됐는데…
등록 2022-08-23 14:57 수정 2022-08-30 08:49
진부 청과집에서 얻어온 자루에 옥수수를 담았다. 

진부 청과집에서 얻어온 자루에 옥수수를 담았다. 

우리가 올봄 옥수수를 심는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이 “옥수수 힘들 텐데~” 했다. “지난해 심어보니 쉽던데요?” 해맑게 답했던 게 몇 달 전. 밭의 절반만 심자던 게 심다보니 온 밭을 가득 채웠다. 옥수수는 심는 것도 기르는 것도 쉬웠다. 가물어도 비가 많이 와도 쑥쑥 자랐다.

옥수수 수확기가 왔다. 옥수수는 열매가 딱 맞게 여문 바로 그날 따야 한다. 같은 날 심었다고 한꺼번에 딸 수도 없다. 햇빛 받는 위치에 따라 한 밭에서도 옥수수 상태는 저마다 들쑥날쑥이다. 옥수수 수염이 전체적으로 황금색을 띠고 끝이 살짝 마르기 시작할 때, 옥수수통을 만져봐서 끝까지 알이 찬 것을 골라 따야 한다. 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누르면 말랑말랑하고, 손톱으로 누르면 즙이 터져 나오는 상태가 최상이다. 이때 따서 바로 소금 넣고 삶으면 달고 고소하고 향기롭다. 이보다 일찍 따면 알이 덜 차고, 늦으면 딱딱해진다.

그런데 그날을 어떻게 딱 맞추냐고! 주말 농부의 스케줄 따위 옥수수는 봐주지 않는다. 아랫집 아주머니께 우리 옥수수 언제 따면 될지 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주머니는 당신 농사도 바쁜데 매일 저녁 우리 밭에 가서 옥수수 상태를 보고 전화해주셨다. “내가 봤는데~ 강냉이가 주말까지 가면 너무 될 거 같고, 수요일쯤 와서 따야 될 거 같어. 휴가 내고 내려와서 따유. 진부에 강냉이 삶아 파는 집에서 한 접(100개)에 5만원 쳐준대. 거기 한번 알아봐유.”

서울·경기 지역에 115년 만의 폭우가 쏟아진 그 주 수요일 오후, 남편과 나는 생업을 접어두고 옥수수를 따러 갔다. 진부에서 옥수수를 매입해주기로 한 청과집에 들러 옥수수 담을 자루를 수십 장 얻었다. 목요일 새벽부터 수확을 시작했다. 옥수수잎이 날카로워 다칠 수 있어 긴소매 옷을 입고, 얼굴 가리는 망이 달린 모자를 쓰고 끝을 꼭꼭 여몄다. 옥수수통 끝을 잡고 툭 꺾으니 쉽게 따진다. 어깨에 장바구니를 메고 툭툭 꺾어 담아 툇마루로 날랐다. 청과집에서 한 자루에 53개씩 담아서 가져오라고 했다. 100개 5만원이라더니, 6개는 보험으로 더 받는 듯싶었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 서둘러 10자루를 만들어 점심때 청과집에 도착했다. 청과집 사장님은 자루를 몇 개 열어 옥수수를 까서 보시더니 곧장 5만원 지폐 5장을 건네주시며, “내일도 또 따서 일찍 갖고 와요” 하신다. 농사지어 처음 번 돈을 주머니에 넣고 가 장칼국수를 먹었다. 구수~하고 시원한 게 왠지 다른 날보다 더 맛있다.

금요일 새벽 6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지만 축축해진 일복을 입고 옥수수를 땄다. 돈맛을 봤더니 의욕이 솟아 오전 9시 조금 넘어 14자루를 만들었다. 청과집에서는 옥수수를 쪄서 팔기도 하지만 매입한 옥수수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주문받아 택배로 보낸다고 했다. 당일 수확 당일 배송이 원칙이라 전날 여유가 있다고 미리 따둘 수도 없다. 어제보다 10만원 더 벌 생각에 들떠 청과집에 갔더니 사장님 안 계신다고 옥수수 내려놓고 밥 먹고 오란다. 여유롭게 밥 먹고 갔더니, 도로 가져가라며 덜 여문 옥수수를 모아놓은 게 4자루다. 사장님은 어제처럼 5만원짜리 5장을 주시곤 1만원 더 얹어주며 “커피 사 마셔요” 하신다. 내일은 연휴 낀 주말이라 택배가 안 나가니 옥수수는 가져오지 말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옥수수는 익고 있는데, 저걸 다 어쩌란 말인가. “옥수수 힘들 텐데~” 하던 말이 이제야 곧이들린다. 세상에 쉬운 농사는 없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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