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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

BTS의 다음 시즌이 그려낼 화양연화

멤버 개인의 정체성과 팀 활동 사이 고민하고 조율해온 9년늘 그랬듯 세상 기준에 구애받지 않는 그들만의 행보 기대

제1420호
등록 : 2022-07-03 00:31 수정 : 2022-07-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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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앨범 《프루프》(Proof) 콘셉트 사진. 빅히트뮤직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단체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해체’나 ‘활동 종료’로 오인받아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룹 활동을 당분간 중단하고 멤버 솔로 활동과 휴식 및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처음 알린 2022년 6월14일 ‘찐 방탄회식 #2022BTSFESTA’ 유튜브 영상에서 BTS 멤버들은 데뷔 이후 지난 9년을 ‘챕터1’ ‘시즌1’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로 미뤄볼 때도 단순한 휴지기보다는 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대목으로서 ‘활동 중단’이란 선택을 내린 듯하다. 데뷔 9주년을 맞아 지금까지의 대표곡을 망라한 ‘앤솔러지’ 음반 《프루프》(Proof)를 발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케이팝 산업이 문제라고 확대해석할 수 없어
멤버들이 설명하는 활동 중단의 첫 번째 이유는 일종의 번아웃(소진)이다. “방탄이 어떤 팀인지 모르겠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방향성을 잃었다” “생각할 틈이 없다”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를 케이팝(K-Pop) 산업의 병폐로 직결하는 일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슈퍼스타의 삶이 바쁘고 정신없는 것이 반드시 케이팝의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지쳤다고 말하기가 팬들에게 죄스럽다”는 말에서 케이팝 특유의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가 엿보이듯, 한국 또는 케이팝의 특징과 결부되는 영역도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팀의 대의를 위해 개인이 끊임없이 자신과 타협해야 하고 그것이 9년간 지속됐다는 점이 그렇다. 밴드의 세계와 달리 케이팝 아이돌에게 멤버 구성 변동은 가장 치명적이고 파멸적인 사건이다. 그만큼 팀에서 개인에게 지우는 책무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예 팀을 이탈할 결심을 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동안 BTS는 개인 멤버보다 팀을 유난히 강조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통일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함께 사용하는 점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경력과 지명도에 비해 솔로 활동의 빈도도 상당히 낮은 편이었고, 그마저도 ‘솔로 음반’보다는 ‘믹스테이프’(비정규 음반)로 분류했다. 케이팝 아이돌이 팀 활동 사이사이 솔로로서 커리어도 일궈나가는 것에 비해, BTS의 솔로 활동은 팀 활동의 곁가지임을 분명히 하려는 제스처로 보였다.

그런 기조의 장점도 분명했다. 팬덤은 아티스트와 더 강한 결속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공격적인 개인 팬이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개인보다는 팀을 지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팬덤 내 분쟁 요소를 줄이는 구실도 했다. 그러나 “나는 방탄이 아니고 방탄의 일부”라는 RM의 말에서 엿보이듯, 팀에서 크지 않은 운신 폭을 멤버들이 견뎌온 것도 분명해 보인다.

케이팝 시스템은 기획자가 아티스트를 결성하고 좌지우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개인이 팀의 일원으로서 겪는 갈등 이외에, 원치 않는 방향의 활동 강요도 흔히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BTS는 직접 곡을 쓰고 메시지를 담으며 활동해왔기에, 케이팝 산업의 기준에선 아티스트의 주체성과 자기결정권이 예외적으로 높다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반 《프루프》의 세 번째 장에 수록된 데모 버전 트랙들이 흥미롭다. 팝 시장에선 특별판 음반에 데모 버전을 수록하는 일이 흔히 있고, 이는 곡이 탄생한 맥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아티스트를 향한 친근감을 더해준다. 다만 모든 게 완벽한 최종 결과물로서 제시되는 케이팝 아이돌 산업에서는 좀처럼 전례를 찾기 어렵다. BTS가 공개한 데모 버전들은 멤버들이 각자 구상하고 해석하며 하나하나 쌓아 올린 음악적 벽돌들의 존재를 재확인해준다. 물론 지금의 BTS에게 그런 ‘증명’의 ‘필요’가 있다고 믿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말이다. 데모 트랙들이 아티스트로서의 자기결정권과 팀을 위한 최선의 선택 사이에서 화해를 시도하는 듯 들리기도 하는 이유다.

언론과 대중이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병역 이슈다. 멤버들의 연령상 입대 시기가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간 세계 속에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드높인 공로를 근거로 BTS의 병역특례가 몇 차례 거론됐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나오지 않았고,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이 주장을 재론하고 있다. 병역특례 가부를 논하는 건 이 지면에서의 일이 아닌데, 이는 특히 ‘찐 방탄회식’에서 병역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활동 중단이라는 어려운 결정의 배경으로 당사자들이 아티스트로서의 방향성과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발언했을 때, 거론하지도 않은 병역을 ‘결국 그거지?’라는 식으로 행간에 추가하고 핵심 사안으로 취급하는 일도 부적절하다.

BTS가 단체활동 중단 얘기를 하는 유튜브 영상.

‘찐 방탄회식’에서 병역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BTS의 활동 중단 기간을 전망하자면 실질적으로 다른 아이돌들의 병역으로 인한 활동 휴지와 비슷한 기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예체능 분야 전반에서 병역은 커리어의 무덤처럼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케이팝에서는 병역 이후에도 계약이 유지된 경우 ‘완전체’로 견실히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입대 시기 조정이나 계투성 활동 기획, 병역 이후의 이미지 전략 등에서 노하우가 쌓인다고 할 만하다. 군복무 중인 멤버만을 제외하고 유닛을 결성해 활동하는 것도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전에는 유닛에 독자적인 이름을 붙이는 게 보통이었으나, 최근에는 빠진 멤버가 있더라도 완전체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팬들도 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일이 많이 눈에 띈다. BTS의 유닛 활동을 함부로 점치기보다는, 팬들도 이 ‘특수 사정’을 고려하며 기다릴 의지를 보이는 추세라는 점을 주목한다.

특히 BTS는 동시대와 호흡하는 자신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큰 공감대를 얻어냈고, ‘중소돌’에서 출발한 아티스트로서의 성장 서사 역시 큰 흡인력으로 작용하는 그룹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종류의 스타덤 속에서 인간으로서 그들이 겪는 일을 궁금해하는 이도 무수히 많다. 그만큼, 충분한 휴식과 ‘숙성’을 거친 BTS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점칠 수 있다.

BTS의 활동 중단으로 케이팝 산업이 위축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 규모의 관점에선 지배적 1위의 빈자리가 작을 수 없겠고, 케이팝에 가볍게 관심을 둔 이들의 이목을 잃는 효과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팬덤의 관점에서 개별 아티스트가 ‘불이익’을 겪을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BTS가 갖는 독보적 위상 때문이다. 하나의 조류를 이끄는 이로서는 조금 특이하게도, 이들에게는 ‘라이벌’ ‘제2의 BTS’ ‘끼워팔기’라 부를 만한 아티스트를 꼽기 어렵다. 팬 중에도 BTS가 있는 한 다른 케이팝 대체재가 필요 없는 사람이 많다.

BTS의 미국 라스베이거스 공연 모습.

자아성찰과 인류애를 펼치고 막 내린 ‘챕터1’
세계 케이팝 시장에서 BTS는 누군가를 견인하기보다는, 케이팝에 관심을 갖는 계기로서 (팬덤 전쟁의 레토릭처럼) ‘길을 닦은’(“Paved the way”) 역할이 의미 있어 보인다. 특히 다양성 정치의 관점에서 이목을 끈 것은 BTS의 파장을 더욱 크게 한 요소이며, 이는 BTS의 활동 중단과도 무관하게 케이팝에 관심을 유지할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뻔한 말이지만 아티스트 고유의 매력을 소구하는 것이 미래를 결정지으리라 볼 만하다. 산업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 또한 이런 아티스트를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BTS의 빈자리에 대한 볼멘소리보다는 다소 지루할지라도 옳은 길이리라 생각한다.

지난 9년간 BTS는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한국 가수로서 북미 시장에서 유의미한 상업적 흥행을 이끌어냈고, 빌보드에서 세계 기록을 몇 차례나 갈아치웠으며, 통칭 미국 3대 음악상 석권의 문턱까지 갔다. 유엔과 미국 백악관에서 연설도 했다. 너무 거대해서 몽상하기에도 민망할 법한 성과였다.

그 이면에서, 국외에서는 사회참여와 선한 영향력의 대명사 같은 활동을 하면서 정작 국내의 실질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를테면 백악관에선 ‘아시아인 혐오를 멈추라’는 연설을 하지만 국내의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등의 지적이다. 어찌 보면 이 역시 BTS의 모든 것에 전례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온도차일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BTS의 성취는 소수자의 연대와 승리로 이해된 부분이 있고,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한 이들이 BTS 팬덤의 상당수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에 견줘 국내에서는 팬덤도 정치적 입장과 거의 무관하게 형성됐고, 무엇보다 대중스타의 사회적 발언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케이팝에 담기는 ‘사회비판’이 늘 최대한 피상적인 태도로 ‘사회적 메시지가 있다’는 명분을 챙기는 선에 만족해온 것에도 이유가 있다.

BTS는 여기에 청년 세대로서의 당사자성을 끌어들이고(‘화양연화’ 연작), 소수자와의 연대를 전면적 소재로 삼으며(<낫 투데이>(Not Today)), 이를 자아성찰과 인류애의 차원으로 연결해낸 바 있다. BTS는 케이팝과 사회적 메시지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길을 내는 자였다는 것이다. 비록 모든 이에게 속 시원히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BTS의 ‘챕터1’이 여기까지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는 없을 일이다. 그건 오랜 목표로 거론되던 그래미 수상과도 일견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끝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옛 투 컴>(Yet To Come)의 가사처럼 “이 세상의 기대”나 “최고란 기준”이 BTS의 의의일 수는 없고, ‘챕터1’의 결말이 그것에 예속될 수도 없는 일이다.

2022년 6월1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소극장에서 열린 BTS 팬클럽 ‘아미’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평화를 기원하며 손 하트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스로 길 닦아온 그들이 앞으로 펼칠 무대는
케이팝 산업에 연작 음반 포맷을 대대적으로 유행시키고 또한 가장 탄탄한 성과로 연결해낸 것이 BTS다. 이들은 정규 음반과 믹스테이프, 방송과 SNS 등 포맷과 플랫폼에 따른 최적의 콘텐츠를 차별적으로 구현하는 데 강점을 드러냈다. 그런 만큼 커리어의 어디까지가 하나의 장이어야 하며, 그다음 장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 누구보다 진지한 고민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BTS의 ‘단체활동 잠정 중단’에서 ‘끝’보다는 ‘새로운 시작’에 더 기대하는 이유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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