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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번역이 될까요, 마침내

번역어의 오해·이해의 밀당으로 멜로스릴러를 쌓아가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등록 2022-06-26 14:25 수정 2022-06-27 01:41
<헤어질 결심>은 말의 번역·통역을 통해 오해와 이해의 밀당으로 멜로스릴러를 쌓아간다. 속마음도 모호하고 번역어도 모호하다. CJ ENM 제공

<헤어질 결심>은 말의 번역·통역을 통해 오해와 이해의 밀당으로 멜로스릴러를 쌓아간다. 속마음도 모호하고 번역어도 모호하다. CJ ENM 제공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의 놀라움을 감소시킬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뻔하게 시작한다. 장해준(박해일)은 성실함과 젠틀함을 갖춘 경찰이다. ‘잠복근무’를 마다하지 않는다. 후배 경찰 수완(고경표)의 말에 따르면 잠복근무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잠이 안 와서다. 추락사한 남자의 주검이 발견되고, 그의 중국인 아내 송서래(탕웨이)가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온다. 서래는 조사받으며 ‘킥킥거리는 웃음’을 들키고, 조사실을 거울유리 너머로 지켜보던 수완은 그가 범인이라고 밀어붙인다. 해준은 의심해서라기보다 성실하고 불면증이 있기에 서래의 방문요양보호 일을 지켜보고, 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근무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봐”

장르 클리셰들은 박찬욱 스타일로 선택된다. 누가 밀어서 떨어졌냐, 실수로 떨어졌냐 하는 추락의 역학은 낙하시 “여러 번 부딪쳤다”는 말과 동시에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안약을 넣듯 아무렇지 않게, 주검의 눈알 위로 걸어가는 개미를 비춘다. 창의적 카메라 워킹도 뚜렷하다. 눈알 위의 개미는, 개미가 지나는 눈의 시점 숏으로 이어진다. 불면증을 앓는 해준은 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쑥 들어간다. 관찰하는 절대적이고 평면적인 시점이 피관찰자와의 관계 숏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숏을 통해 해준의 감정적인 변화와 동요가 드러난다.

멜로스릴러라는 장르물을 만들면서 제작진은 멜로와 스릴러의 교차점에 공들였다. 박찬욱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형사가 용의자를 만나는 것이 이 영화에서는 연애의 과정”이라 말했고, 정서경 작가는 “‘범인이 누구일까?’보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할까?’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눈여겨볼 점은 번역어의 발화를 통해 오해와 이해의 밀당으로 멜로스릴러를 쌓아가는 것이다. 서래는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어 통역기에다가 뻔한 이야기를 한다. (영화의 앞쪽에서, 번역어의 음성 지원은 남성 말로 돼 있다.)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현명한 이는 물을 좋아한다는데 저는 어질지 않아서요.” 서래는 ‘번역어’처럼 이야기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봐.”

서래의 어색한 ‘마침내’는 프로이트식의 ‘말실수’일까, 번역의 문제일까. 원래 서래가 생각한 본래어는 ‘끝내’일까 ‘결국’일까 아니면 다른 말일까. 예를 들어 ‘끝내’의 번역어는 ‘구글 번역’에서 ‘完成的’이 되고 이 말은 다시 ‘완전한’이 되고 ‘완전한’은 ‘完全的’이 되고 ‘完全的’은 ‘충분히’가 되며 ‘충분히’는 ‘足够的’이 되고 이는 다시 ‘충분한’이 된다. 시간을 표현하는 부사는 관형사를 오가다 ‘완전함’에 이른다. ‘결국’은 번역앱 ‘파파고’에서 ‘终于, 最后, 最终’이 되고 이 단어를 거꾸로 번역하면 ‘마침내’가 된다. 완전한이든, 충분히든 무엇이든 들어갈 무수한 번역어의 세계에서 선택되어 발화된 단어는 해준에게 ‘마침내’ 스며든다. 그렇게 흔들리는 관계 속에서, 완벽하거나 충분할 수 있는 결혼관계는 종국에 이른 결혼관계로 고정된다.

가장 진심에 가까운 ‘한국어’와 한국 관객

첫 번째 반전도 번역의 문제에서 온다. 킥킥대고 웃어서 의심받은 서래는 한국말이 어색할 때 웃게 되노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반전도 번역의 문제다. 서래는 ‘붕괴’라는 단어 때문에 ‘헤어질 결심’을 한다. ‘붕괴’라는 단어를 들은 서래는 곧바로 사전을 찾는다. 단어는 ‘무너지고 깨어짐’이라고 해석돼 있다.

번역은 해석이다. 서래는 남편에게 ‘독한 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울지 않는 서래를 보는 이들의 마음속 말도 그렇다. 그 뒤 해준이 살인자로 몰릴 수밖에 없는 우연의 일치를 열거하며, 서래에게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냐”고 묻자 서래는 답한다. “불쌍한 여자.”

고전 스릴러에서 악녀는 사랑을 가장하고 순진한 형사는 그 덫에 걸리지만, <헤어질 결심>에서 사랑하는 형사에 의해 살인사건은 다르게 번역된다. 서래의 혼잣말을 녹음해 번역기로 돌리던 해준은 “심장을 가져오라”는 소리를 듣는다. 해준과 데이트에 나선 서래는 사랑을 속삭이고, ‘심장’이 아니라 ‘사랑’이었노라고 말한다. 해준은 서래의 집을 관찰하다가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숙인 서래를 보고 말한다. “우는구나, 마침내.” 눈에 보이는 대로 하는 이 말은 맞는 말일까.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제작보고회에서 “한국인만 이해할 점들이 많아 긴장된다”고 말했다. 번역의 세계에서 원본 텍스트는 가장 정확한 이해 방식의 하나일 것이다. 해준이 서래를 사랑한 이유는 한국어로 ‘꼿꼿함’이었다. 번역된 중국어가 프랑스어가 뭐든 한국어가 가장 ‘진심’에 가까운 단어다.

1970~1980년대 드라마 <수사반장>처럼 낡고 건조한 건물이 볼거리다. 하늘로 이어진 계단, 옥상이 연결된 건물을 카메라가 완벽한 동선으로 훑으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장면 전환의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예를 들어 탐문조사 중 여행객의 사진에 찍힌 서래는 팔을 직각으로 들고 있다. 사진을 본 경찰들은 저마다 그 동작을 하며 무슨 동작일지 짐작해본다. 다음은 해준이 집의 초인종을 누르며 팔을 직각으로 든 장면으로 이어진다.

뻔하게 시작된 스토리는 ‘부산’ 편을 지나 ‘이포’ 편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펼친다. 해준은 아내(이정현)의 직장(원자력발전소)이 있는 도시로 경감이 되어 부임한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단어가 부산 편과 이포 편을 이어주는 핵심 단어다. 이포는 안개가 유명한 도시로 나온다. 첫 번째 사건이 끝나서 정작 모든 것이 선명해진 상태에서 펼쳐지는 두 번째 국면에서 장르의 변주는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 노래 가사 같은 결말

박찬욱 감독에게 영화의 계기가 된 것이 안개다. 정훈희와 트윈폴리오의 노래 <안개>는 영화에 처음부터 쌓여왔다.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고 노래 가사 같은 결말 장면이 충격을 선사한다.

<헤어질 결심>은 2022년 제75회 칸영화제에서 공개돼 경쟁작 중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박쥐>로 제6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데 이어, 이 영화로 감독상을 받았다. 6월29일 개봉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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